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11일 “의원총회에서 당정대 간 바늘구멍만 한 빈틈도 없이 의견이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 사법개혁안에 대해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 간 이견이 없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9일 이재명 대통령은 정 대표, 김병기 원내대표와 ‘번개 만찬 회동’을 가졌다. 사법개혁을 두고 불거진 이견을 정리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회동 뒤 “개혁 입법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처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대표 측은 만찬 회동에 대해 “당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해석한다. ‘1인 1표제’ 부결에 이어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이른바 ‘명청 대전’(이 대통령과 정 대표 간의 갈등) 논란을 진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핵심 논리로 내세우는 것이 이른바 ‘역할 분담론’이다. 법제사법위원회가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더 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을 추진해 지지층의 효능감을 높이고, 대통령실이 중도층의 우려를 반영해 합리적 대안을 주문하면 이 과정에서 당 지도부는 강성 당원과 내부 엘리트, 반대 진영의 비판을 대신 받아내 저항을 줄이고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강경파가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이면 대통령실이 제동을 걸어 이후 나오는 수정안이 온건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겨냥한 일종의 계산된 혼선이라는 취지다. 정청래식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론인 셈이다.
하지만 페이스메이커 전략이 성공하려면 일치된 목표와 긴밀한 호흡이 필수다. 이른바 사법개혁을 두고 대통령실은 당과의 소통 문제를 지적한다. 당과 사전에 조율한 방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 내란전담재판부 문제 역시 고위 당정 협의를 통해 항소심부터 설치하자고 조율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석방 가능성 등을 주장하는 강성 지지층의 불안을 파고든 법사위의 단독 플레이에 당 지도부가 호응하면서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강경 지지층만 바라본 당 지도부와 법사위의 사법개혁 드라이브는 당내 역풍과 소모적인 극단 대치로 이어졌다. 8일 의원총회에선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지면 민주당에 이득이 될 게 뭐가 있느냐”는 등 우려가 쏟아졌다. 국민의힘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을 묶은 이른바 ‘8대 악법’ 철회를 요구하며 모든 민생법안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발동했다. 내란전담재판부를 막겠다며 민생법안 표결마저 막아선 국민의힘의 무리수는 ‘의제 외 발언’을 이유로 국회의장이 61년 만에 직권으로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는 또 다른 무리수로 이어졌다.
이쯤 되면 역할 분담의 손익을 다시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갈등과 혼란이 커질수록 강성 지지층과 그들의 목소리에 호응한 당 지도부 및 법사위 강경파의 결속은 강해진다. 상대 진영도 수혜자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내홍이 커지던 국민의힘은 이른바 ‘8대 악법’ 저지를 명분으로 무제한 필리버스터와 천막농성에 들어가며 당내 리더십으로 향한 시선을 당 밖으로 돌리고 있다. 연말까지 이어질 입법 전쟁으로 정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커진 대통령실의 부담은 커졌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민생법안 처리 지연과 퇴행적 정치를 지켜봐야 할 국민이다.
‘당원 주권주의’를 내건 정 대표 측에선 대통령실과의 불협화음이 ‘자기 정치’로 해석되는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내비친다. 하지만 불협화음이 건강한 수평적 견제 관계가 아닌 민생을 희생한 권력 갈등으로 비치는 건 권력을 위해 불필요한 대립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페이스메이커가 자기 욕심을 앞세우면 레이스를 망치는 법이다.
アクセスランキン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