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기업들은 예술가의 작품을 허가 없이 수집, 학습하며 그에 대한 인정과 보상은 전혀 없다.”
최근 일러스트를 비롯해 시각 예술 영역에서도 AI의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창작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16일(현지 시간) 영국에선 저작권 단체인 DACS(Design and Artists Copyright Society)와 AOI(Association of Illustrators), AOP(Association of Photographers), PICSEL 등 4개 예술 단체가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함께 목소리를 냈다. 이번 성명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사진가 등 1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4개 단체가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사진가의 58%가 “AI 생성 이미지로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상당수 작가는 본인의 작업이 학습 데이터 목록에 포함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도 한다.
예술가들은 “창작물의 동의 없는 이용은 디지털 시대의 착취”라며 “정부가 AI 기업에 학습 데이터 공개 및 허가 보상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DACS는 “AI 발전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 창의성의 존중”이라며 “창작물은 어느 기업의 자산이 아닌 창작자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앞서 5월에 문학 미술 방송 사진 영화 음악 등 6개 분야 15개 창작자 단체(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등)가 연합해 ‘AI 시대, 창작자의 권리 수호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창작자 단체들은 올해 초 제정되고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에 AI의 창작물 무단 학습을 막을 규정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들은 “국내 주요 AI 기업이 영업비밀이란 명분으로 학습에 활용된 데이터를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생성형 AI가 학습하는 창작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창작자들의 이런 반발은 AI 시대의 기술 발달이 인간의 창의성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미술관과 박물관 등에서도 AI 시대 올바른 전시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관람객 데이터 분석이나 소장품 관리, 전시 연출 자동화 등에 AI를 도입한 결과 창의성보다는 기술 중심의 서사가 강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유럽에서 나왔다.
네덜란드 박물관협회는 7월 암스테르담대 등과 함께 발표한 학술 논문에서 “AI가 인간의 판단과 감성을 대체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조를 발표하고 ‘인간 중심 AI 거버넌스 모델’을 제안했다. 이는 AI의 윤리적 사용과 AI를 사용할 때 인간의 감독 보장, 기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전시 기획의 필요성 등을 강조했다. 전시 구성에서 AI가 중심이 돼선 안 되며, 인간의 창의성과 큐레이터의 비전을 보조하는 도구로 쓰여야 한다는 취지다.
기술적인 창작을 넘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슈퍼인텔리전스’의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지고 있다.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수전 라이스, AI 선구자인 요슈아 벤지오, 제프리 힌턴과 버진그룹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등 세계 전문가 800여 명은 최근 이런 우려를 담은 ‘슈퍼인텔리전스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은 “슈퍼인텔리전스가 심각한 사회적, 윤리적, 안보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연구를 일시 중단하고 광범위한 공공 합의, 과학적 검증을 거친 뒤 안전한 개발을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민 kimmi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