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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北, 美본토 타격 가능한 3대 국가 인정해야” 북핵 인정 논란

정동영 “北, 美본토 타격 가능한 3대 국가 인정해야” 북핵 인정 논란

Posted October. 01, 2025 09:02,   

Updated October. 01, 2025 09:02


정동영 통일부 장관(사진)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 중 하나가 돼 버렸다”며 “냉정하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은 이미 현실적 두 국가”라며 북한의 두 국가론에 동조한 듯 발언한지 닷새만에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8월 방미 중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이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평가한 바 있어 잇따른 북핵 능력 인정 메시지를 발신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미 간의 대화가 임박했기 때문이라는 관측과 동시에 정부 내 대북, 대미 정책을 둘러싼 노선 갈등이 돌출 발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동영 “하노이서 스몰딜 했더라면”

독일을 방문 중인 정 장관은 이날 베를린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전략적 위치가 달라졌다”면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3대 국가 중 하나가 됐다고 했다. 세 국가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이어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을 놓고 “스몰딜이 성사됐더라면 핵 문제 전개 과정은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정상회담 결렬 직후 심야 기자회견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부상이 ‘미국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발언한 것을 상기하며 “그 말이 불행하게도 맞았다”고 덧붙였다.

정 장관은 취임 후 여러 계기에 북한의 대외 기조를 옹호하고 핵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취임 직후 7월 기자간담회에선 한미연합군사훈련 연기를 제안했으며, 이달 들어 연설과 간담회 등에서 남북 관계를 평화적이고 현실적인 두 국가로 보자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대통령도 최근 북핵 능력에 대해 관대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밝힌 ‘END 이니셔티브’로 비핵화(Denuclearization)보다는 북한과의 교류(Exchange)와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가 전면에 나선 로드맵을 공개했다. 뉴욕증권거래소를 방문해 투자자들을 만난 행사에선 대북제재를 풀자는 제안에 이어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핵무기를 이미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8월 25일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선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재진입 기술에서 마지막 단계만 남겨둔 상태”라며 “매년 10∼20개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도 했다.

정부가 북핵 보유를 공식 인정한 것이냐는 문제 제기 속에도 정상까지 나서 북핵 능력 고도화를 언급하는 건 미북 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앞선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31일 경북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등에서 회동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북미대화 촉매제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 장관도 이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보고 빨리 북한과 협상하라, 북미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도 풀어가겠다는 명백한 목표로 같은 메시지를 내놓는 것”이라며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고 미 본토 타격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핵군축 협상을 하자고 대신 말해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전직 외교 고위관계자는 “아예 북한 비핵화 기조를 포기한 건지, 미국과 핵 보유 인정이라는 리스크를 수용하면서까지 대화를 추동할 만한 명분이 있다고 공감대나 공조는 이뤄진 건지 따져볼 문제”라고 짚었다.

●대북 노선 투쟁 심화에 우려도

문제는 정부 출범 후 북핵 문제 관점을 두고 노선 투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로 분류되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최근 행보를 살펴보면 대북 긴장완화와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자주파’식 발언들을 수습하느라 바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위 실장은 지난달 30일 국내 통신사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의 북 핵무기 확보 발언에 “꼭 북핵을 인정한다는 취지라기보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걸 강조한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정 장관의 현실적 두 국가 발언에 대해서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남북은 특수관계라고 규정돼 있고 역대 정부도 이 개념을 이어왔다”며 “‘특수관계’라는 개념에서 손을 떼면 북한 문제에 있어 우리가 얘기를 꺼낼 입지가 너무 줄어든다”고 정책연속성을 강조했다. 다만, 위 실장은 “제가 ‘무슨 파’ 이렇게 돼 있는데 무엇이 최적의 국익이냐만 생각한다”며 이같은 계파 구분에 선을 그었다.

이 같은 안보라인에서의 불협화음은 북한에 좋은 공격 빌미를 제공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우리의 국법이고 국책이며 주권이고 생존권이 핵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며 핵 포기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한반도의 비핵화는 한미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일관된 목표”라며 반박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