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7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새로운 경제 질서가 턴베리에서 확고해졌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스코틀랜드 소도시 턴베리에서 타결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관세협상을 기점으로 글로벌 무역질서가 근본적인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미국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양자협약을 맺는 새 체제가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으로 30년간 이어져온 다자 무역체제를 완전히 대체할 거란 선언이기도 하다.
무역질서 급변으로 한국 수출기업들의 한미 합작 움직임도 빨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 대표 기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발빠른 움직임은 주목할 만 하다. 삼성전자는 6일 미국 애플의 차세대 아이폰에 들어갈 첨단 반도체칩 생산을 수주했다. 삼성전자가 애플에 공급하기로 한 반도체는 고성능 ‘이미지센서’다. 빛을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스마트폰의 눈’으로 불리는 칩이다. 지금까진 해당 분야 세계 1위인 일본 소니가 독점 납품해 왔다.
지난달에 삼성전자는 미 전기차업체 테슬라와도 165억 달러(약 22조9000억 원) 규모의 인공지능(AI)칩 생산계약을 맺었다. 테슬라에 공급할 차세대 자율주행 시스템반도체 ‘AI6’는 자율주행차와 로봇의 두뇌역할을 하는 칩으로, 지금은 대만의 TSMC가 생산한다.
이런 성과는 삼성전자의 높은 반도체 설계·생산 능력과 함께 한 발 앞서 미국에 갖춰놓은 생산시설 때문에 가능했다. 애플 칩은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삼성전자 공장에서, 테슬라 칩은 텍사스 테일러에 짓고 있는 공장에서 생산된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자국 제조업 부활 기조에 맞춰 미국 내 생산비중을 늘려야 하는 애플, 미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많이 써야 하는 테슬라가 현지공급 능력을 갖춘 삼성전자를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미 제너럴모터스(GM)와 북미·중남미 시장에서 판매할 차량 5종의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관세 때문에 수익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두 회사가 차의 뼈대인 플랫폼을 공동으로 개발해 생산하면 많은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된다. 현대차로선 미국에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그동안 적극 공략하지 못했던 픽업트럭 사업을 확장하고, GM은 뒤처진 하이브리드차 기술을 보강하는 시너지도 기대된다.
트럼프 정부 주도로 탄생한 ‘턴베리 체제’ 속에서 ‘세계 6위 수출 대국’의 위상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더 많은 우리 기업인들이 시야를 전 세계로 넓히고, 기존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으로 새 질서에 맞게 과감한 도전과 투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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