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차 세계식물원교육총회에서 만난 윌리엄 네드 프리드먼 미국 하버드대 아놀드수목원장은 수목원을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지구적 협력의 무대’라고 표현했다. 9일 국립수목원과 식물유전자원 중복 보전 협력 의향서에 서명한 그는 120년 전 한국에서 수집된 식물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1872년 설립된 아놀드수목원은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 수목원이다. 이 수목원이 보유한 식물 2100여 종(種) 가운데 200여 종(600여 개체)이 한국 자생식물이다. 프리드먼 원장은 “1905∼1919년 한국에서 수집한 식물을 보존하고 있는 아놀드수목원에 최근 한국 국립수목원이 유전자 자원을 요청해 기꺼이 보내기로 했다”며 “식물 유전자를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 다시 되돌려줄 수 있는 중복 보전이야말로 전 세계 식물원이 함께해야 할 핵심 역할”이라고 말했다.
“만약 어떤 종이 한국에서 사라지더라도, 우리가 가진 유전자 자원을 기반으로 복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미국 내 위기종이 사라질 경우, 한국에서 되살려줄 수도 있겠죠. 이건 일종의 지구적 보험입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온 식물들 자손이 지금은 보스턴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 유전자를 한국에 보내는 건 단순한 과학적 행위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국립수목원과 아놀드수목원은 유전자 자원의 공동 보존 및 교환, 공동 연구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프리드먼 원장은 “각 식물은 고유한 이야기와 역사를 품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의 뿌리를 통해 과거를 배우고 미래를 위한 책임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아놀드수목원에 있던 한국 식물이 돌아오면 국립수목원은 온실 재배를 거쳐 올해 대한민국 광복 80주년 기념 행사 때 전시식물로 활용한 뒤 증식시킨다는 계획이다.
프리드먼 원장은 이번 방한 기간 창덕궁 비원과 리움을 방문했다. 그는 휴대전화로 찍은 비원의 백송 사진을 보여줬다. “나무의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리움의 청자와 기와에 새겨진 식물 문양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작품 출처를 표기하듯, 수목원에서는 각 식물을 언제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수집했는지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수목원은 기억을 품은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그는 “한국 수목원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친구가 됐다”며 “식물 외교는 결국 사람 외교”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후 위기 시대에 지식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한 그루 나무를 사랑하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김선미 kimsunmi@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