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 파고(波高)를 넘기 위해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미국 루이지애나주 전기로 제철소 공동 투자를 공식화했다. 양사는 미국 정부의 통상 압박과 철강업계를 둘러싼 환경 규제 등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전기차 배터리용 소재 공급망까지 협력하기로 했다. 포스코그룹은 미국 판매망 확대, 현대차그룹은 미국 제철소 건립을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경쟁 관계인 양사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루이지애나 제철소 공동 투자 공식화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은 21일 서울 강남구 현대차 강남대로 사옥에서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 간의 철강, 이차전지 소재 분야 등 포괄적 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 체결로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핵심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을 통해 글로벌 주요 시장과 미래 신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포스코그룹은 북미 철강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목표다. 특히 양사는 고품질·고순도 자동차용 강판과 이차전지 소재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미국 루이지애나주 전기로 제철소 건립을 위한 공동 투자다. 현대차그룹은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루이지애나주에 연간 생산량 270만 t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짓기로 했다. 총 투자 규모는 58억 달러(약 8조2000억 원)이다. 전체 투자금의 절반을 외부에서 수혈해야 하는 현대제철 입장에선 포스코그룹이 든든한 우군이 되는 셈이다.
포스코그룹 입장에서도 이번 공동 투자로 미국 정부의 철강 관세 25%를 피해 미국과 멕시코 지역에 자동차용 강판 등 핵심 소재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포스코는 현재 멕시코 자동차 강판 공장을 비롯해 북미지역에 철강가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루이지애나 제철소 생산 물량 일부는 포스코가 직접 판매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포스코는 전기로를 통한 고순도 자동차용 강판 생산 시설을 이미 광양에 짓고 있고 이 부분이 양사 협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차전지 소재의 공급망 공동 구축도 이번 협력의 주된 내용이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과 양·음극재를 포스코로부터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로 했다. 포스코그룹 역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인한 시장 위축을 극복하고 핵심 판매처를 확보하게 된다. 이주태 포스코홀딩스 미래전략본부장은 “양사 시너지를 바탕으로 글로벌 통상 압박과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할 것”이라며 “철강과 이차전지 소재 분야 협력으로 양사는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美 관세 대응-철강 불황 파고 넘는다
철강업계 경쟁 관계인 양사의 협력을 두고 전문가들은 해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결과라고 평가한다. 그동안 기업 간 협력은 경쟁 기업의 소재를 일부 구매하거나 더 나아가 경쟁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식으로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이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함께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기도 했지만, 이는 다른 사업 영역 간의 공급망 협력 사례다. 중국의 철강 과잉 공급, 세계 주요국의 환경 규제, 미국의 통상 정책까지 대내외 불확실한 변수들이 결국 양사의 협력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양사의 협력이 MOU 단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어느 정도 구속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한쪽으로 이익이나 손해가 몰리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협약이 철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의 통상 문제 대응을 위한 협력을 넘어 국내 철강 시장에 직면한 글로벌 환경 규제, 중국의 공급 과잉 문제 등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극복할 수 있는 협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