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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애도

Posted May. 04, 2022 08:47,   

Updated May. 04, 2022 08:47

日本語

 “당신도 우리처럼 어리석었습니다.” 어떤 시인이 동료 시인을 애도하며 쓴 말이다. 애도의 말치고는 무척 낯설다. 더욱이 마흔 살 넘게 차이가 나는 거장을 향한 말치고는 무례하기까지 하다. ‘W. B. 예이츠를 추모하며’라는 W. H. 오든의 시에 나오는 말이다.

 오든이 이 시를 쓴 것은 예이츠가 세상을 떠나고 몇 달 지나서였다. 오든은 예이츠를 존경하면서도 그의 현실 참여에는 회의적이었다. 예이츠는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었다. 영국 식민주의로부터 정치적, 문화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현실은 그대로였다.

 사실 그 시는 오든 자신에 관한 성찰이었다. 그가 누구인가. 대단히 정치적인 시인이었다. 사회적 정의에 민감한 좌파적인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가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도구여야 한다는 생각에는 회의적이었다. 그가 보기에 시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나중에 한 말에 따르면 시는 2차 세계대전 중 단 한 명의 유대인도 살리지 못했다. 사실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시는, 아니 예술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든은 이렇게 선언한다. “시는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영문학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시구 중 하나가 되었다.

 인정하기 싫어도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절망만 해야 하는가. 불의와 폭력이 판을 쳐도 손을 놓고 있으라는 말인가. 아니다. 역사를 바꿀 힘은 시인에게 있는 게 아니니 시의 본령에 충실하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든이 생각하는 시의 본령은 무엇일까. “얼어붙은 연민의 바다”를 깨고 “마음의 사막 속에서/치유의 샘이 시작되게” 하는 것이다. 역사와 현실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언어의 힘으로 위로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자 한계요, 한계이자 힘이다. 그는 위대한 시인 예이츠의 죽음을 애도하며 바로 이러한 역설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