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출전은 아버지도 못해 본 ‘가문의 영광’이죠. 당연히 목표는 금메달입니다(웃음).”
다시 올림픽의 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올 7월로 1년 연기됐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23·키움)는 “내게는 ‘영웅’인 아버지(이종범 LG 코치)도 갖지 못한 게 올림픽 금메달이다. 13년 만에 기회가 온 만큼 꼭 출전해서 일본을 상대로 2019년 프리미어12 대회 패배도 설욕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7년 1차 지명으로 넥센(현 키움)에 지명돼 그해 타율 0.324, 179안타를 기록하며 2007년 임태훈(은퇴)에 이어 10년 만에 순수 고졸 신인왕에 오른 이정후는 이미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통산 타율이 0.336인 이정후는 2020년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단점으로 지적돼 온 장타력도 보완했다. 부상만 없다면 국가대표 유니폼은 따 놓은 당상으로 평가받는다.
이정후는 열 살 때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이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야구 스타의 꿈을 키웠다. 당시 국내에선 야구 붐이 일어나 이정후 또래의 많은 어린이가 엘리트 야구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야구는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선 사라졌다가 이번에 다시 정식 종목으로 치러진다. 운명처럼 올림픽에 야구가 부활한 듯한 느낌을 갖는 이정후는 “선수라고 해서 누구나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꼭 태극마크를 달고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젠 자신이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부푼 각오도 밝혔다. “한국이 잘하면 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거고 자연스럽게 많은 재능 있는 선수들이 글러브를 끼고 방망이를 잡을 거예요. 그러면 한국야구도 발전할 수 있죠. 제가 어린 시절 선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어린 친구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의 피트니스클럽들이 문을 닫아 선수들이 개인훈련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이정후는 하루도 안 거르고 팀 훈련장이 있는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2시간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이정후는 “지난 시즌 몸무게가 85kg으로 늘고 힘이 붙으며 고교 시절 때 했던 ‘어퍼스윙’도 잘됐다. 장타가 많아진 비결이다. 올겨울에도 이를 잘 유지해 다음 시즌에는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야구를 잘하고 싶은 이유를 말하다 이정후의 목소리가 잠시 잠겼다. 고교 시절 함께 야구를 하다 대학에 진학한 동기들이 최근 야구를 접었다는 얘기를 하면서였다. 이정후는 “대학에 진학했다면 나도 졸업을 앞뒀을 시기다. 고교 때 지명 받지 못하고 훗날을 기약하며 대학으로 향했던 친구들이 끝내 프로에 오지 못했다. 이제 나 하나 남았다. 그 친구들이 나를 보며 즐겁게 야구하던 시절을 오래 추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부상 없이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려울 때면 ‘바람의 아들’로 이름을 날리며 한국 야구의 전설이 된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할 만도 하지만 이정후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그는 “나의 ‘영웅’과는 절대 야구 얘기를 안 한다. 아버지도 ‘몸 관리 잘해라’ 정도의 말 외에는 별 얘기를 않는다. 코로나19가 심해지기 전에 아버지랑 처음 골프를 친 게 공을 갖고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한 것”이라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정후에게 ‘꿈’을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정후가 “괜찮아, 우리에게는 이정후가 있으니까”라고 혼잣말을 했다.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었다. 이정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야구팬들이 야구장에 있는 나를 보며 이 말을 하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전성기 때의 아버지가 그랬듯 팬들에게 믿음을, 상대 투수에게는 부담이 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달리겠다.”
김배중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