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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랜선여행”... ‘칙릿’의 부활

Posted November. 05, 2020 08:55,   

Updated November. 05, 202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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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오랫동안 파리로 이사 가는 걸 꿈꿨어. 그들 대통령은 젊고, 섹시하고, 학교 선생이랑 결혼했잖아.”

 미국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시카고 본사의 여자 상사는 파리 지사로 발령 난 주인공 에밀리를 이처럼 부러워한다. 에밀리에게는 파리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일과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이 드라마는 지난달 2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직후 한국에서 인기 콘텐츠 3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20, 30대 직장 여성의 일과 사랑을 가볍게 다루는 ‘칙릿’이 되살아나고 있다.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을 합친 칙릿은 1999년 영국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시초로 본다. 2000년대 한국에서도 ‘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 ‘달콤한 나의 도시’(2006년)처럼 평범한 노처녀 이야기로 생산됐지만 2010년대 들어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년) ‘섹스 앤 더 시티’(2008년) 같은 옛 칙릿 작품을 보고 감상을 공유하는 현상이 일고 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온갖 클리셰가 다 들어 있다”는 일부 평론가의 혹평에도 오드리 헵번처럼 차려입은 에밀리의 옷과 장신구가 인기를 끈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남자 주인공 루커스 브라보는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00만이 넘는 섹시스타로 떠올랐다. 시즌2에 대한 요구도 거세다.

 칙릿의 ‘부흥’에는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시청자들이 작품들의 배경인 파리 뉴욕 등을 ‘방구석 랜선 여행’으로 대리만족한다는 얘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층은 이국적인 배경의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소비한다”며 “예전에 방문했던 여행지를 그리워하는 현상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상대적으로 어렵고 진지한 작품이 많은 데 대한 반작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 여성들이 ‘예쁜 쓰레기’라는 자조적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퇴근 후에는 칙릿을 소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끈 청춘드라마 ‘스타트업’ ‘청춘기록’ 등 여성 주인공이 활약하는 작품을 칙릿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젊은 여성이 일과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는 주제 의식은 청춘물과 칙릿의 공통점이다.

 20, 30대뿐만 아니라 10대 여성까지도 칙릿에 맛을 들이고 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칙릿에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주는 도발적인 서사의 매력이 있다”며 “10대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웹드라마도 칙릿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