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 굴레를 벗어난 이란이 중동에서 시아파 맹주라는 옛 지위 회복에 나서고 있다. 이는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미국 등 서방과 핵협상을 타결한 뒤 주변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 정비에 나서면서 본격화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5일과 8일 이라크의 누리 알말리키 총리,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잇따라 만나 상호 협력과 지원을 약속했다. 아프간-이란-이라크-시리아로 이어지는 시아파의 횡축()을 다지는 데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프간과 협력미군 철수 염두
8일 로하니 대통령은 카르자이 대통령과 테헤란에서 만나 양국 간 장기우호조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조약에는 지역 내 평화와 안전보장 구축이 이란과 아프간의 장기적 이익이라는 내용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회담에서 아프간을 비롯한 중동과 걸프 만 지역 전체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아프간에 주둔 중인 미군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아프간과 약 650km에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은 턱밑 아프간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비록 미군이 극단주의 수니파인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긴 했지만 카르자이 대통령 역시 미군의 장기 주둔에 대해서는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시아파인 카르자이 대통령과 유대를 강화하는 것은 같은 시아파 정권의 안정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미군에 대한 철수 압박도 가하는 일석이조 전략인 셈이다.
이라크-시리아에서도 영향력 강화
이란은 약 1500km 국경을 맞댄 이라크와의 접촉도 늘려가고 있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5일 테헤란에서 이라크의 알말리키 총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하메네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증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하메네이는 최근 빈발하는 이라크 내 각종 폭력 사태를 진정시키고 국가를 재건하려는 알말리키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라크는 소수인 시아파가 정권을 장악해 다수인 수니파와의 무장 투쟁이 심각하다. 올 8월 한 달 동안에만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1000명이 넘었다. 사회 불안이 극심한 상태에서 내년 총선이 예정돼 있다. 알말리키 총리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란의 경제군사적 지원이 절실하다. 시아파의 맹주로 부상하려는 이란으로서는 좋은 기회를 얻은 셈이다.
시리아 내전에도 적극 개입 태세
이란은 중동의 최대 난제인 시리아 내전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도 적극 개입할 태세다. 이란은 시아파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화학무기 사용 응징을 위해 미국이 시리아 공습을 논의할 때도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아사드 대통령을 옹호했다.
이란은 핵협상이 타결된 직후인 지난달 28일 우리는 어떠한 전제 조건도 없이 협상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란의 회담 참여는 시리아 위기 해소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 주도로 열리는 회담은 내년 1월 22일 열릴 예정이다.
이란이 이 회담에 참여하면 시리아에서 시아파 정권 유지, 중동의 시아파 횡축 완성 등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이란의 회담 참여를 승인하지 않는 등 견제에 나설 수도 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