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에는 세속적이고 육감적 여성을 그린 미인도가 유행했다. 혜원 신윤복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상을 담은 미인도도 인기를 얻었다. 이는 미인의 기준이 기존 외모 중심에서 재주를 겸비한 여인으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연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강사(한국미술사한문학 박사)는 최근 연구모임 문헌과 해석의 주례발표회에서 이재관이 그린 미인들: 19세기 미인의 조건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고 박사는 19세기에 활약한 소당 이재관(17831837)의 미인도 4점과 각 작품에 적힌 제시()를 분석해 작품 속 여인들의 정체를 밝혀냈다. 고 박사에 따르면 이재관의 미인도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중국의 역사나 소설 속 인물로, 모두 외모뿐 아니라 다양한 재주를 갖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림 미인사서의 여인은 여류시인이자 시 쓰는 종이를 잘 만들었던 당나라 미인 설도로 분석됐다. 설도는 시인 원진을 사모해 마음을 바친 것으로 유명하다. 또 선인에 등장하는 말 달리는 여성은 장군 이정을 따르기 위해 목숨 걸고 탈출을 시도했던 당나라 기생 홍불이다. 선인취생에서 생황을 부는 여인은 진나라 목공의 딸 농옥으로 남편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신선계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여협에서 칼춤을 추는 여인은 무협소설 홍선전의 주인공이다.
고 박사는 또 19세기 문헌에 여사()라는 호칭이 많이 등장한 것에 주목했다. 여사는 본디 중국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궁궐 안 여성의 일을 기록하는 여성 사가를 뜻했는데 이 시절에 와서 학덕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여성으로 변했다. 이는 학덕을 감추고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조선시대 사대부 여성을 높여 부르던 여사()와 차별되게 여성의 재주를 찬미하는 칭호였다. 고 박사는 이러한 여성관의 변화가 근대 이후 한국에서 전문적인 여성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데 문화사적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