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합의한 것이 불과 5일 전인 17일이다.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46만일만, 새 정부 출범 후 21일만의 늑장 합의였지만 그래도 심한 진통 끝에 타협을 이뤄냈기에 국민은 환영했다. 새누리당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라고 했고, 민주당은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켰다고 자평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여야가 당초 본회의 통과를 약속한 20일에도, 하루를 넘긴 21일에도 처리되지 않았다. 여야 합의와 약속이 무슨 장난인가.
이번 파행은 소관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야 위원들이 합의문에 명시되지 않은 사안을 두고 새로운 시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당초 논란이 됐던 종합유선방송(SO) 등 뉴미디어의 관할권 문제를 해결하자 이번엔 문방위 여야 위원들이 지상파 방송의 허가권을 방통위 또는 미래창조과학부 중 어디에 둘 것인지와 SO 의 일반허가가 아닌 변경허가에 대해서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전동의제를 적용할지를 놓고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 그대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여야 원내지도부가 구체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지 못한 책임이 크다. 그러나 설사 세부적인 내용까지 챙기지 못했더라도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으면 실무 차원에서는 합의문 내용에 충실하게 구체적 합의를 이뤄나가는 게 정상이다. 합의문에 명시되지 않는 사안을 놓고 시비를 벌이는 것도 월권이다. 여야 모두 원내 지도부가 합의를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합의 자체를 무산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합의하면서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창조경제 추진의 명분을, 민주당은 방송공정성 담보라는 실리를 챙기는 다른 여러 가지 부수 합의도 이뤘다. 서로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그 정도의 합의를 이뤘으면 나중에 따질 것은 따지더라도 이제 새 정부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게는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새 정부가 출범한지 거의 한 달이 다 돼가도록 박 대통령은 아직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 요청안을 국회에 제출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에 맞춰 21일 열려던 국무회의도 취소했다. 안보 비상시국인데도 여태 국가안보 사령탑이나 다를 바 없는 국가안보실장을 임명하지 못한 상태다. 신설 부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업무 변경 부서도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정부조직법과는 무관하지만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 자리도 아직 채우지 못한 상태다. 여야는 이런 총체적인 국정 마비 상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셈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