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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이후 감사는 더 깊어졌고 사랑은 더 애틋해졌고 기도는 더 간절해졌

투병 이후 감사는 더 깊어졌고 사랑은 더 애틋해졌고 기도는 더 간절해졌

Posted December. 27, 2012 04:29,   

부산 광안리 해변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등에 지고 큰길을 건너자마자 성 베네딕도 수녀회로 들어가는 큰 골목이 나왔다. 나이든 남자가 수녀원 입구 경비실에서 뛰쳐나와 용건을 물었다. 이해인 수녀님 인터뷰요?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해인 수녀(67)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해 왔다. 자신이 암 투병중이기도 하지만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몹시 꺼렸다. 동아일보에 5개월 동안 매주 삶과 죽음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선뜻 오케이를 하지 않았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주는 위로가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을까. 얼마 전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만 합시다라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그로서는 오랜만의 신문 인터뷰였다.

이해인 수녀가 약속 장소인 피정의 집 카페에 조그마한 꽃 한 송이를 들고 나타났다. 검은 수녀복 차림의 밝은 표정이었다. 수녀는 산다화라고 말했다. 나는 달콤한 꽃향기를 맡으며 그가 사무실로 쓰고 있는 민들레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민들레라는 꽃 이름을 많이 쓰시는군요.

희망의 씨앗이지요. 바람이 불면 그 씨앗이 여기저기로 날아가잖아요. 제 시()가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어요.(그의 첫 시집이 민들레의 영토이다.)

독자들에게 뿌린 씨앗이 많지 않습니까.

그동안 시집, 산문집, 번역집이 20여 권 정도 되니 많은 생각을 뿌린 셈이지요. 그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도 받았고요. 연말연시를 맞아 나도 모르게 해이해진 건 없나 하고 돌아보면서 수도생활 초기에 가졌던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생활하는 수도자이지요. 지금도 간간이 스며드는 암 환자로서의 무력증이나 우울함과도 잘 싸워야겠지요. 그동안 멀리서 가까이서 기도해 준 많은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김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choicj114@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