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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오프 살인범 4년만에 잡았다 (일)

Posted November. 07, 2012 06:50,   

2008년 9월 9일 오후 11시경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극장 앞.

해남십계파 조직원 박모 씨(40)가 돈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던 무등산파 김모 씨(당시 41)를 칼로 찔러 죽이고 달아났다. 경찰은 강남 한복판에서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른 그를 중요지명피의자종합수배 명단 1번에 올리고 뒤쫓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고 경찰이라는 강남 경찰의 자존심도 걸린 일이었다.

경찰 귀에는 무성한 소문이 들려왔다. 베트남으로 도피했다 강남 성형외과에서 전신성형 받았다 등 확인되지 않은 루머였다. 세간에서는 그를 두고 두 주인공이 얼굴을 맞바꾸는 영화 페이스오프에서 ###착안해 페이스오프 수배범이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3년 동안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던 박 씨가 경찰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은 1년 전. 전남 해남경찰서는 박 씨가 고향인 해남과 광주 일대 조직폭력배들과 만나고 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박 씨는 검은 유리로 된 차량만 타고 다니며 절대 걸어서 이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은 그와 접촉한다는 조직폭력배의 신상을 파악하고 1년 동안 그들의 동선을 밟았다. 이런 노력 끝에 경찰은 5일 오후 5시경 광주 동구 대인동의 한 백화점 앞에서 그를 찾아냈다.

하지만 다가간 경찰은 그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얼굴이 지명수배 명단에 실린 사진과 180도 다른 것이다. 박 씨는 경찰에서 도피 후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해남경찰서 최종국 수사과장은 과거 박 씨의 얼굴과 완전히 달라졌다며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도 알아 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그가 보톡스 시술 등 다른 성형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체중까지 대폭 줄여 수배명단에 적힌 특징인 건장한 체격 날카로운 눈매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공소시효 만료를 노리고 도망 중인 수배자들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성형을 택하고 있다. 성형기술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어디서든 간단한 시술로 얼굴을 바꿀 수 있어 페이스 오프를 원하는 범죄자들에겐 최적의 환경이라는 평가다.

부도낸 삼부파이낸스 양재혁 회장은 올해 7월 돈을 맡겨둔 옛 부하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가 실종 자작극을 벌였다. 자신이 실종된 것처럼 보이면 경찰이 이 부하를 용의자로 보고 잡아올 것으로 판단한 것. 양 회장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해 경찰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2002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성폭행 행각을 벌이던 허모 씨(46)는 2007년 경찰이 지명수배하자 충북 청주의 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하고 얼굴에 보톡스 시술을 받는 수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2010년 지인이 신고하고서야 경찰에 검거됐다. 허 씨는 박 씨와는 반대로 10kg가량 체중을 불리고 퍼머도 했다. 2002년 충남에서 골프동호회에서 만난 여성회원을 살해하고 도피 중인 신모 씨(49)도 보톡스 성형으로 얼굴을 바꾸고 도망을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요지명수배자 전단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배자 검거를 위해서는 수배자를 알아본 일반 시민의 제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사건 당시 사진과 간단한 특징만 실어 성형한 수배자의 모습을 알아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건 직후 수배를 내릴 때는 성형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변장한 사진을 함께 싣기도 한다며 ###중요지명수배자 경우에는 실제 사진만 게재하는 것이 원칙이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에선 시민이 지명수배자 목록을 보고 해당 수배자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자세히 적고 있다. 2012년 미연방수사국(FBI)이 발표한 10대 지명수배자(Ten Most Wanted) 명단에서는 범죄자의 성형가능성 뿐만 아니라 성격, 직업, 자세한 혐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헤로인이나 코카인 등 마약유통과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수배자의 수배 내용에는 얼굴 성형수술 가능성이 있으며 지문 변경 가능성까지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성형을 했을 경우라도 판별할 수 있도록 문신 형태와 위치, 흉터자국 등 쉽게 없어지지 않는 신체적 특징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성형수술이 활발한 실정을 고려해 성형수술로 변형된 얼굴을 예측해 수배자 목록에 싣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훈상 김태웅 tigermask@donga.com pi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