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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찾아온 남쪽 나를 맞은건 멸시와 주먹 (일)

죽음을 넘어 찾아온 남쪽 나를 맞은건 멸시와 주먹 (일)

Posted March. 05, 2012 08:07,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남한에 왔지만 기다린 것은 같은 반 친구들의 멸시와 따돌림, 폭력뿐이었어요.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43)와 함께 살고 있는 새터민 김명수(가명18) 군은 2일 새 학기가 시작된 뒤에도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 2006년 탈북한 뒤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귀가할 때까지 집에서 하루 종일 인터넷 게임만 하고 있다. 김 군은 지난해 겨울방학이 시작되며 새터민 청소년들이 다니는 경기도의 한 대안학교를 그만뒀다.

2008년 12월 어머니가 1000만 원을 주고 고용한 브로커와 함께 북한군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탈북한 김 군은 2009년 8월 인천의 한 중학교에 2학년으로 입학했다. 북한에서는 중학교 3학년에 다닐 나이였지만 배움이 적어 학년을 낮췄다.

처음에는 반 친구들도 김 군을 보통 전학생처럼 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달라졌다. 김 군은 친구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차 이상하게 바뀌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해 방학을 앞둔 12월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이 학교에 다니던 새터민 친구 3명이 김 군에게 고민을 토로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친구들은 일진 4명이 욕하고 괴롭혀 못 살겠다. 매일같이 때리고, 옷까지 빼앗아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호소했다. 의협심이 강했던 김 군은 이들과 함께 일진 4명을 만나 동급생끼리 사이좋게 지내자고 했지만 그들 중 한 명은 침을 뱉으며 조롱했다. 이어 180cm가 넘는 거구의 학생이 뒤에서 김 군을 팔로 휘감아 꼼짝 못하게 했고, 나머지 3명이 집단으로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소식을 듣고 체육교사가 뒤늦게 달려왔지만 김 군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3주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김 군은 가해 학생들에게 복수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몰매를 맞을 당시 재미있다는 듯 구경만 하고 아무도 말려주지 않았던 동급생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결국 탈북자인 내가 억울함을 말해봤자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에 체념했다. 또 힘들게 생계를 꾸려가는 어머니와 몸이 아파 북한에 남겨진 아버지(43), 여동생(15)의 얼굴도 떠올랐다. 이때부터 김 군은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미련을 놓아버렸다.

해가 바뀌어 김 군은 3학년이 됐지만 급우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죄를 지은 듯 남한 학생들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새터민 친구도 만나기 싫었다. 간혹 누가 먼저 시비를 걸라치면 아예 피해 다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인터넷 게임에만 몰두했다. 지난해 학교장 추천을 받아 인천의 한 실업계 고교에 입학했지만 결국 보름 만에 자퇴서를 냈다.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받는 학교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들어간 새터민 대안학교도 같은 해 12월 그만뒀다.

하지만 요즘 김 군에게는 자신의 고충을 들어줄 멘토가 생겼다. 새터민 청소년에 대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나선 인천 남동경찰서가 김 군의 사정을 듣고 보안과 최현권 경사(38)를 멘토로 지정해 준 것이다. 지난달 이 경찰서가 관할 새터민 청소년 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명이 무시나 따돌림, 욕설, 폭력, 금품 갈취 등에 시달렸다고 답변했다. 더 큰 문제는 새터민 고교생들이 정규교육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찰서가 관리하는 고교생 29명 가운데 20명이 정규 학교를 자퇴했거나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을 정도다.

지난달 28일 인터뷰를 위해 음식점에서 기자와 만난 김 군은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장래 희망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반짝거렸다. 북한에서 기계체조를 배웠기 때문에 텀블링이나 무술엔 자신이 있다며 액션배우가 되는 방법을 기자에게 물었다. 최 경사는 한국에서 무엇이든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골똘히 생각하며 고민하던 김 군은 5일부터 최 경사와 함께 새로운 대안학교를 알아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황금천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