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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일은 1905년 11월 17일 아닌 18일 (일

을사늑약 체결일은 1905년 11월 17일 아닌 18일 (일

Posted November. 19, 201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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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년 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이끄는 군대가 이곳 중명전을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조약문을 수정하고 외부대신의 직인을 강제 날인해 (다음 날인) 18일 오전 1시 반, 이 자리에서 늑약이 이뤄졌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을사늑약 강제일 특별강연. 기조연설을 맡은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일본 측이 작성한 문서에는 17일로 적혔지만 실제 늑약이 이뤄진 시간이나, 고종도 헤이그 특사를 보낼 때 18일로 표현한 점을 볼 때 을사늑약일은 18일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날 강연은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을사늑약 105주년을 맞아 을사늑약의 불법성과 전개과정을 되짚어보기 위해 개최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측은 을사늑약이 이뤄진 날과 장소에 맞춰 강제병합 100주년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을사늑약은 물론 헤이그특사 파견까지 이뤄졌던 중명전은 우리 근대사의 질곡을 모두 지닌 비운의 장소라고 평가했다.

120여 명이 모인 강연에서 이태진 국사편장위원장은 일본의 조약강제와 중명전이라는 제목으로 1905년 11월 9일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도착한 뒤 17일까지 일어난 일을 시간 순으로 설명하고 관련 자료들을 소개했다.

이어 강연에 나선 이상찬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을사조약의 불성립론 재검토를 제목으로 한 발표에서 을사조약은 진행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체결 과정에서 일어난 외부대신의 인장 탈취 등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지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