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는 북한 주체사상을 이론화, 체계화한 주체사상의 대부였다. 1923년 평안남도 강동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주오()대 야간 전문부 법학과를 다녔으며 1946년 노동당에 입당한 뒤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625전쟁 중에 옛 소련 모스크바국립대에서 유학했던 그는 1954년 1월 김일성종합대 철학강좌장으로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58년 1월 김일성 노동당 총비서의 서기실에서 일을 시작했고 1965년 김일성종합대 총장을 지낸 뒤 1972년 12월부터 11년간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맡았다. 1997년 망명 당시 그는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이었다.
주체사상 체계화에 전력했던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74년 주체사상을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 논리인 혁명적 수령관에 결부시키고 독재의 도구로 전락시킨 뒤 사상적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초에는 옛 소련과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주체사상 자체에도 이론적 오류와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특히 1990년대 경제난으로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 등을 돌렸다. 그는 나중에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사망한 뒤 실권을 장악한 김정일이 주민들의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전쟁 준비와 주민 탄압에 앞장서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황 전 비서는 1996년 2월 모스크바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 주체사상에 대한 선전을 소홀히 했다는 당 간부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같은 해 5월 김정일로부터 책임을 추궁 받고 실망과 환멸을 느낀 뒤 북한 지도부에 전쟁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하라고 촉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할 생각마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97년 4월 한국에 들어온 뒤 김정일의 독재전횡과 전쟁준비 상황을 세계만방에 폭로하고 조국통일에 일조하겠다는 신념 아래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망명 당시 평양에는 유학시절에 만났던 처 박승옥 씨와 1남 3녀를 두고 있었다.
김영식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