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으로 EU라는 세계 최대 시장의 관세장벽이 무너짐에 따라 국내 산업계와 소비자들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유럽산 고급 자동차와 와인 가격 하락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 폭은 넓어졌지만 관련 업계의 생존 경쟁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 5억 명의 EU 시장이 열린 만큼 한국산 가전제품은 높아진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EU 수출에 박차를 가하겠지만 의약품이나 화장품처럼 유럽산 제품이 기술 우위를 갖고 있는 분야에서는 국내시장 잠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최대 시장 문 열려
한-EU FTA가 우리 사회에 가져 올 영향이 막대한 이유는 EU의 경제규모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EU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16조4000억 달러에 달해 미국(14조3000억 달러), 일본(5조 달러), 중국(4조9841억 달러)을 넘어서는 세계 1위의 단일 경제권이다. 이는 전 세계 GDP의 3분의 1, 한국의 20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또 한국과 EU의 교역액은 중국과의 교역액 1409억 달러(약 158조9352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지난해 EU와의 교역액은 788억 달러(약 88조8864억 원)로 전체 교역액 6866억 달러(약 774조4848억 원)의 11.5%를 차지했다.
정부는 무엇보다 수출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3.5%)보다 높은 EU의 관세율(5.6%)이 사라지면 그만큼의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 업체들이 대()EU 수출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재 한국의 수출 주력품인 자동차는 관세율이 10%, TV는 14%, 섬유와 신발의 관세율은 최고 1217%에 이른다.
정여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원장은 수출 증대 등으로 한국의 실질 GDP는 2020년까지 최대 5.6%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EU와 FTA를 체결한 선점효과까지 감안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산 자동차 최대 1990만 원 싸져
유럽산 제품의 국내 시장 공략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분야는 자동차다. 8%의 관세 장벽 아래에서도 20%의 점유율을 지니는 수입차 시장에서 무려 65%를 차지하는 유럽산 자동차의 공세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EU FTA로 배기량 1.5L 초과 승용차는 3년 내, 1.5L 이하 차량은 5년 내에 관세가 철폐되며 개별소비세와 취득등록세를 감안한 유럽산 자동차의 가격 인하 예상 폭은 7.4% 정도다. 현재 국내에 판매되는 유럽산 자동차 대부분이 1.5L를 초과하는 점을 감안하면 2014년부터 본격적인 경쟁이 불붙을 수 있다.
1.5L 초과 EU 자동차 중 국내 판매가가 1억2590만2억6900만 원인 메르세데스-벤츠S클래스는 930만1990만 원, 국내 판매가가 6790만 원인 BMW 528i는 500만 원 정도 가격이 내린다. 9130만 원인 폴크스바겐의 페이톤 3.0 모델은 670여만 원, 아우디는 320만470만 원 정도의 가격 인하 여력이 생긴다.
15%의 관세가 사라지는 포도주도 가격 인하가 예상된다. 현재 금양인터내셔널, 롯데주류BG, LG상사 트윈와인 등 와인수입업체들은 평균 13% 정도 수입품의 가격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의류에 붙는 813% 관세와 화장품에 붙은 8%의 관세가 철폐되면 명품 의류와 화장품의 가격도 그만큼 싸질 것으로 보인다. 또 EU산 돼지고기에 붙는 관세 25%가 없어지면 현재 국내산의 86,6% 수준인 가격이 국내산의 72.1%로 낮아지고 치즈 등 유제품도 관세율 36%에 해당하는 가격 인하가 예상된다.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법안 등 걸림돌
한-EU FTA는 마지막 의회 비준이라는 관문을 남겨놓고 있다. 6일 양측의 공식서명으로 한-EU FTA 발효를 위한 행정부 차원의 공식 절차는 끝났지만 발효를 위해선 아직 한국과 EU 의회의 비준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관건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의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관련 부분이다. 이 두 법은 현재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협정(GATS)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계류 중인 유통법안이 통과하면 앞으로 전통시장과 전통상점이 있는 곳에서 500m 이내는 전통상업 보존구역으로 정해져 사실상 신규 SSM의 출점이 제한된다. 상생법은 대기업의 초기 투자비가 51% 이상인 SSM 프랜차이즈도 사업조정신청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 삼성과 합작해 홈플러스를 운영하고 있는 영국 테스코 등 EU의 다국적 유통기업은 WTO 협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진출하는 기업을 이중으로 규제하는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의 대형마트, SSM 출점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거의 허가제나 다름없는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이 때문에 유럽 유통업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EU 회원국들이 자국 의회를 통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혜진 주성원 hyejin@donga.com swon@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