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탁신 포퓰리즘

14일 방콕 전역이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탁신 치나왓 전 태국 총리 지지자 10만 여명이 이른바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 주도 아래 붉은 셔츠를 입고 반()탁신파인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의 퇴진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2008년 푸미폰 국왕을 지지하는 왕당파로 구성된 노란셔츠 시위대가 방콕 공항을 점거하며 탁신 지지파인 사막 순다라벳 총리의 사임을 요구한지 2년 만에 정치적 반대파가 똑같은 양상의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탁신 전 총리의 재산 23억 달러 가운데 권력남용을 통해 조성된 14억 달러를 몰수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시위를 촉발했다. 태국 최대 재벌인 치나왓 그룹 소유자인 탁신은 2006년 미국 방문 중에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영국 중국 등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지만 호화판이다. 그는 태국경제를 살린 기업 최고경영자(CEO)형 정치가이면서 부패와 독재의 상징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외환위기 때 빌린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을 2년 앞당겨 갚았을 정도로 경제를 일으켰지만 자신이 설립한 이동통신회사를 팔면서 거액을 탈세했다.

탁신이 축출된 지 4년이 흘렀지만 그가 씨를 뿌렸던 포퓰리즘 정책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지금도 태국 국민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재임시절 그는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해 우리 돈 1000원 정도면 누구나 병원에 갈 수 있게 했고, 농가부채 원리금 상환을 유예시켜 240만 가구에 혜택을 줬다. 그런가하면 고향인 치앙마이를 비롯한 낙후된 북부지역을 우대한 반면 남부지역을 홀대해 지역감정을 일으켰고 언론을 통제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시혜적 혜택을 누려본 사람은 그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큰 차를 타던 사람은 작은 차로 바꾸어 타기 어렵고, 막대사탕을 뺏기는 아이는 우는 법이다. 농민과 빈곤층이 탁신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 시절의 넉넉한 분배가 그립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62 지방선거를 맞아 학교 무상급식, 유치원비 무상지원 등 포퓰리즘 공약이 판치고 있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지만 공짜점심은 없다.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좋지만 후일 누군가가 반드시 밥값을 치르게 돼있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