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마을 선생님 비 내리는 호남선 마포종점 등 1960년대 이후 숱한 애창곡을 발표한 원로 작곡가 박춘석 씨가 14일 오전 6시 별세했다. 향년 80세.
1954년 가수 백일희가 부른 황혼의 엘레지로 작곡 인생을 시작한 고인은 1994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질 때까지 2700여 곡을 작곡하며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를 만들었다. 음악과 결혼했다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병상에 누워있던 16년간 거동과 의사표현을 못했다.
박 씨는 196070년대에 가수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하춘화 정훈희 등의 노래를 작곡하면서 이들을 잇따라 톱 가수 반열에 올려놓아 국내 가요계의 스승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슴 아프게(남진) 공항의 이별(문주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곽순옥) 비 내리는 호남선(손인호) 초우(패티김) 물레방아 도는데(나훈아) 마포종점(은방울자매) 하동포구아가씨(하춘화)등의 명곡이 모두 고인의 작품이다.
고인은 이미자가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얻도록 이끈 스승이었다. 그는 1965년부터 30여 년간 이 씨와 함께 명콤비로 불렸다.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황혼의 블루스 아네모네 떠나도 마음만은 삼백리 한려수도 타국에서 노래는 나의 인생을 비롯해 그가 이 씨를 위해 작곡한 노래가 무려 700여 곡이 된다.
14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찾은 이미자 씨는 박 선생님과 는 작곡가와 가수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과도 같은 사이였다. 내 아들이 어릴 때는 내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있는 동안 아이가 박 선생님의 무릎에 앉아 놀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박 선생님이 작곡을 하면서 담배를 많이 피우셔서 피아노 건반이 담뱃불에 다 타 있기에 제가 담배 좀 그만 피우시라고 말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하춘화 씨는 제가 11살 때 박 선생님을 처음 뵀는데 좀 더 크면 같이 일하자고 하시더니 17살 때 연포아가씨와 하동포구아가씨를 주셨다면서 1991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저의 노래 인생 30주년 기념 공연을 할 때 악단 지휘를 맡아주셨던 게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하춘화가 음악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의 절반 이상은 박 선생님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1930년 5월 8일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박 씨는 네 살 때부터 풍금에 재주를 보였고 봉래소학교와 경기중학교를 거치며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독파했다. 1949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했으며 이듬해 신흥대학(경희대) 영문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경기중 4학년 시절 명동의 나이트클럽인 황금클럽에서 피아니스트 활동을 시작해 1954년부터 작곡가로 활동했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 발인은 18일 오전 8시. 유족으로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동생 박금석 씨(77)가 있다.
신성미 savoring@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