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Posted August. 19, 2009 08:45,   

日本語

한국 현대정치사의 핵심 주역으로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폐렴에 따른 급성호흡곤란증후군, 혈전으로 폐혈관이 막히는 폐색전증 등으로 인해 인공호흡기로 산소 공급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오후 1시 43분 숨졌다.

박창일 연세대 의료원장은 폐렴으로 입원했지만 마지막에는 (신장 간 폐 등의 기능이 나빠지는) 다발성장기부전으로 인해 심장이 멎었다면서 생명연장 가능성이 없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족 측과 협의를 거쳐 장례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큰 정치 지도자를 잃었다며 민주화와 민족화해를 향한 고인의 열망과 업적은 국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 대통령은 또 김 전 대통령의 생전의 뜻이 남북화해와 국민통합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도 일제히 논평을 내고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은 그 자체가 굴곡진 한국 정치의 축소판이었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신군부 정권에 이르는 동안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른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라는 정파를 형성하며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독재에 맞서 싸우다 몇 차례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일본 망명 중이던 1973년 8월에는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돼 생사의 기로에 처했다가 살아 돌아왔다. 닷새 전인 13일은 그의 생환 3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517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미국 정부의 교섭으로 가까스로 석방된 뒤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런 고난을 이겨낸 그는 종종 인동초()에 비유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함께 이른바 3김 시대를 주도했다. 대통령선거에 4번째 도전한 1997년 정적 관계이던 김 전 총재와의 DJP 연합을 통해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루며 정치인생의 정점을 맞이했다. 대선 직전 발생한 외환위기 사태를 1년 만에 극복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대북 유화정책을 펼치면서 김 전 총재와 결별한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평양을 직접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갖는 등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한 공로로 그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초반 정상회담 대가로 거액의 돈을 북한에 건넸다는 대북송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정용관 이진한 yongari@donga.com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