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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 부스럼?

Posted July. 28, 2008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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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제기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업고 풀어보려던 정부의 시도가 오히려 한국의 외교력 미숙만을 부각시키고 말았다.

당초 목적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이례적인 의장성명 수정으로 외교적 망신살만 뻗쳤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 등 관련 부처들에 내재한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유명환 외교부 장관 사퇴 등 인적 쇄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여론 막기 급급, 북한 대비 가능성 몰라=금강산 사건 해결을 위해 3박4일 동안 방북했던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이 15일 오후 빈손으로 돌아온 상황에서 국제 공조는 화난 국내 여론을 달래고 북한을 압박하는 카드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방안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15일 통일부 당국자가 브리핑에서 국제공조라든가 (중략) 그런 문제도 검토를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외교부 당국자는 국제공조 문제를 왜 통일부가 이야기하느냐고 반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음날인 16일 ARF에서 금강산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음을 공식 언급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제 공조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풍기는 공격적인 제스처를 취할 계획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장 성명 초안이 만들어지던 24일 정부 고위 당국자는 유명환 장관이 (싱가포르에) 가서 국제 공조를 하고 그런 것이 아니고, 많은 대화를 하다보면 그런 얘기가 나오고 그러면 저절로 얘기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제 공조 압박이라는 부풀려진 패가 미리 알려지는 바람에 북한이 104선언이라는 맞대응을 치밀하게 준비할 가능성을 정부가 사전에 고려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ASEAN 비중을 낮게 봤다=정부가 아세안(ASEAN) 국가인 싱가포르가 다자외교를 주도하면서 복잡한 한반도 문제를 정치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간과한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랄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남북 관계에 대해 보수 정권(노태우 정부)의 성과인 남북기본합의서 등과 진보 정권(김대중 및 노무현)의 결실인 615 및 104 정상선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원칙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27일 한국의 정권 교체를 싱가포르가 고려했다면 104 선언만을 인용하며 남북 대화를 촉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부 현지대표단이 싱가포르의 이해 부족에 대비해 충실한 사전설명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문제는 이번 회의를 아세안 지역 외교를 다루는 외교부 남아시아대양주국이나 다자외교를 다루는 다자외교조약실 보다는 북한과 미국 이슈를 다루는 북미국 라인이 주도하면서 증폭됐다는 분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고려대의 한 교수는 북한이 싱가포르 주도로 아세안과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 때가 24일 밤이라며 북한이 ASEAN 회의에 큰 비중을 두고 참가했다는 사실이 초래할 변수를 외교부가 예방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계 드러낸 외교안보라인 문책론=정부 여당 내에서도 정부 외교력의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야당은 망신 외교라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사퇴를 일제히 촉구했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27일 의장 성명을 뒤늦게 고쳐 외교 무대에서 결례를 하고 별다른 소득도 없었다. 한 마디로 긁어 부스럼이 된 격이라며 정부 외교라인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유 장관은 사건의 사실 관계를 국민 앞에 명확히 해명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정부가 최우선 과제인 금강산 문제까지 (결과적으로) 삭제하게 한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