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의도적 왜곡 및 오역 논란을 불러 온 PD수첩-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와 관련해 지난달 하순부터 여러 차례 대책회의를 열고 방송 내용에 대한 섣부른 잘못 인정이나 사과는 법원 재판, 검찰 수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지켜보자는 대책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MBC는 최근 PD수첩 상황실을 설치한 뒤 PD수첩 책임 PD인 조능희 PD를 비롯해 기획 대외 보도 홍보 등 해당 분야 팀장급 10여명이 참여해 대책을 논의했으며 이 자리에는 PD수첩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변호사도 참석했다. 대책 회의 결과는 엄기영 사장 등 경영진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PD수첩은 법원 재판(농림수산식품부가 제기한 정정 및 반론보도 신청), 검찰 수사(농림부가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를 비롯해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9일 MBC가 PD수첩 제작진의 의견진술 절차를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이를 16일 오후로 연기했다.
잘못 인정 말고 시간 끌자=MBC는 지난달 29일 열린 PD수첩 상황실 제2차 회의에서 MBC가 번역 또는 오역의 문제점을 방송하는 순간 이를 선의로 받아들이기 보단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PD수첩 내용에 작은 실수가 있었다고 경영진이 인정하는 순간 국민들은 MBC가 정말 잘못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며 MBC에 대한 실망과 공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의에서는 우리 패를 먼저 보여주기 보다는 검찰의 패를 보고 난 뒤 대응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PD수첩에 대한 내부 심의와 관련해 방송내용에 대한 심의에 착수하거나 착수한다고 발표하는 것 자체가 PD수첩의 보도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의견이 나왔다.
27일 열린 1차 회의에서도 잘못 인정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최대한 시간을 끄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대응 방안으로 나왔다.
이 자리에서는 검찰 조사 요청에 한 두번 정도 응하지 않고 시간을 끌 수 있는 명분을 찾는다. 법원 재판도 6월 30일 첫 변론준비기일을 앞두고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시간을 끈다는 전략이 나왔다.
잘못 인정하고 털자는 소수 의견=오역의 잘못을 인정하고 털고 가는 게 필요하다는 것도 소수 의견도 제시됐다. 29일 회의에선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검찰이 계속 (PD수첩의 방송내용이) 의도가 있었다고 흘리고 이것이 언론보도로 나타날 때 MBC가 어쩔 수 없이 시인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며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다 당하느니 MBC가 먼저 털어버리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또다른 소수의견으로는 이런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MBC 사장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거나 심의 기능은 작동하고 있는가 라는 비판 등 외부에서 보기엔 회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정부와 정면 대결해 끝까지 가는 방안도 고려할 순 있지만 그 경우 민영화와의 상관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다.
방송통신심의위, 검찰, 법원에 대한 대책 수립=6월 30일 회의에서는 방통심의위와 관련해 회사의 대응보다는 PD연합회나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외부단체를 활용하자는 안이 나왔다. 특히 이달 1일 열리는 심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피케팅을 하는가도 심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PD연합회가 주축이 돼 기자회견 및 피케팅을 한다는 점을 적시했다.
이들은 심의결과 주의가 나올 때에는 노조나 협회의 유감 표명으로 대응하고, 경고 이상이 나오면 재심 신청 및 행정소송으로 대응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선 명예훼손으로 걸기는 어렵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지만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문 등에 나타난 수사방향 등을 분석해 검찰 입장에서 질의 응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방송 내용 중 미국 쇠고기 리콜이 2등급이었다는 점을 왜 삭제했는지, 아레사 빈슨의 사인 중 감염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 삭제 시 어떤 전문가의 의견을 구했는지 등에 대해 치밀한 질의 응답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MBC 의사 결정이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는 회의=PD수첩 상황실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정보를 공유하는 회의인데다 회의가 열린 시점은 검찰 수사나 심의 일정도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여서 우리가 먼저 대응하기 힘들다는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검찰이 최근 PD수첩이 왜곡한 흔적이 있다고 밝혔으나 이에 대해 반박할 자료를 충분히 갖고 있다며 이달 15일이나 22일 방영될 PD수첩에서 그동안의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방송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PD수첩 상황실 문건이 알려지면서 MBC가 (PD수첩의) 잘못은 알고 있으나 시간을 끌어 버틴다는 인상을 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MBC 대응이 대책 회의의 논의대로 이뤄지고 있어 PD수첩 상황실이 주요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중견 PD는 회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회사 구성원들이 충격에 빠졌다며 경영진이 중심을 잡고 가야 하는데 PD수첩 등의 의견만 듣고 가다가 사태를 진화하는데 기회를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정보 신석호 suhchoi@donga.com kyle@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