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정부 각 부처 기자실을 통폐합하고 기자들의 사무실출입을 제한하는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의 국무회의 의결에 앞서 선의()를 갖고 하는 일인 만큼 (정부와 언론이) 불편이 따르더라도 감수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제도와 관행을 세계적인 보편적 관행과 일치시켜 가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세계 어떤 민주정부도 한 적 없는 언론 목 죄기의 폭거()를 세계적 관행이라고 우기는 강심장이 놀랍다.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위헌적 조치에 선진화라는 이름을 붙인 것부터 구호와 반대로 달려온 정권의 자기기만적, 위선적() 속성을 드러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주 5.18 기념사에서 민주세력 무능론을 정면비판하면서 3만 달러 시대, 자유와 창의가 꽃피는 사회 등이 민주세력이 이룬 성취라고 자랑했다. 이처럼 민주화를 훈장처럼 자랑해온 만큼 정권이름도 참여정부라고 붙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지난 4년간 보여준 국정운영은 참여와 분권의 구호와 거꾸로 소통()부재와 배제, 그리고 독선과 오만의 리더십이었다. 기자실 통폐합조치는 바로 이런 반()민주적 DNA의 극치다. 그런데도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김성호 법무부장관, 김종민 문광부 장관 등 관계 국무위원 누구도 문제제기를 않은 채 맞습니다, 맞고요를 합창했다고 한다. 그 대통령에 그 각료다. 국민들은 이번 조치를 주도한 김창호 국정홍보처장, 윤승용 청와대 대변인,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등 3인과 함께 이들 각료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이날 조치는 연초 노 대통령이 기자실에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기사담합을 한다며 외국실태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결과다. 정권 출범 후 4년 동안 이틀에 한번 꼴로 언론중재를 신청해 언론의 비판기능을 위축시킨 것도 바로 오보()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시스템 위에 코드, 코드 위에 대통령 말씀으로 압축되는 정권의 운용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은 국민의 신하()라고 말하면서도 독선적 행태에 관한 한 군사정권 시절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다. 박정희 때리기를 하다보니 닮아가는 모양이다. 그나마 군사정권은 언론을 탄압하면서도 정통성부족 때문에 여론 향배에 신경썼지만 현 정권은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 때문에 아예 민의에 귀를 닫았다. 노 대통령 자신부터 민심을 수용하고 추종하는 것만이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고 민의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고 법의 집행이나 해석에 이견이 있으면 선출된 권력이 우위에 있다고 선출된 권력론을 강조했다. 정권관계자들이 헌법재판소가 자신들의 입맛에 안 맞는 판결을 내리자 폐지론까지 들고 나선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노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국민 혈세()로 운영된다. 현 정권 임기 5년 동안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기금 등 정부운영을 위해 국민이 낸 세금은 모두 1000조원으로 1인당 2200만원 꼴이다. 언론은 이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견(watchdog)의 역할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론매체(media)는 국민과 정부간에 쌍방형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그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것은 결국 여론에 귀 막은 채 내 멋대로 국정을 끌고 가겠다는 독선에 다름 아니다. 오죽하면 공무원 사회에서조차 이번 조치에 대해 정부정책홍보를 포기하라는 것이라는 반발이 나오겠는가.
현 정권이 오늘 부딪치고 있는 모럴 해저드(기강해이)와 정부시스템의 작동불능도 따지고 보면 공직사회 전체가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코드에 맞으면 정의요 안 맞으면 불의라는 식의 정신적 강압에 시달린 끝에 집단사고(groupthink)에 빠진 탓이다. 노 대통령은 독재()와 독선()을 군사정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민의에 등 돌리고 누가 뭐래든 내 식대로 하겠다는 행태가 바로 독재요, 독선이다. 무능하고 철지난 좌파() 포퓰리즘을 허울 좋은 민주의 가면()으로 감추고 언론 목 죄기에 나선 현 정권은 이제 민주의 간판을 내릴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