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3시 반, 서울대 인문대 304호.
영원히 아름다운 이름이 남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4년 전 후두암에 걸려 후두를 들어낸 정석규(77)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은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건립 기금 약정식에서 대독되는 소감을 들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인문대 이태진 학장은 30여 년 만에 문과대학이 새 건물을 가질 수 있게 됐다며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감사패를 증정했다.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 이사장은 서울대 역사상 최다 개인 기부자. 서울대 동문 가운데 정 이사장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은 많지만 학교 기부는 그가 최고다.
후두암과 위암으로 투병하면서도 30여 차례에 걸쳐 재산을 털어 기부한 돈이 7월 말로 총 100억 원을 넘었다.
이번에 인문대에 제2신양학술정보관 건립비로 약정한 금액은 30억 원.
정 이사장은 1967년 태성고무화학을 세워 2001년 매각할 때까지 고무제품 전문경영인으로 일했으며 1998년 신양문화재단을 세웠다. 신양은 그의 호.
본격적인 기부에 나선 것은 1999년 미국 하버드대를 방문해 동문의 기부로 건립된 수십 개의 도서관을 보고 나서였다.
정 이사장은 학생들이 학문적인 분위기에서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할 수 있는 도서관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공대에 도서관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기업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는 신념에 따라 2001년 초 망설임 없이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매각하고 전자도서관인 신양학술정보관을 세워 학교에 기증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서울대 공대는 신양학술정보관 4층에 정 이사장의 사무실을 마련해줬다.
그의 검소한 생활은 학교 내외에 정평이 나 있다.
공대 김도연 학장은 3년 전 매년 500만 원을 장학금으로 받는 중국 대학원생과 감사의 뜻을 전하러 찾아갔더니 대신 4000원짜리 칼국수를 사 달라고 하셔서 같이 먹었다며 웃었다.
조선해양공학과 성우제 교수는 봄에 중국 음식점에서 열린 만찬에서 남은 음식이 아깝다고 보온 도시락에 싸가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요즘에도 매일 오전 사무실에 나온다.
점심때면 인근 기숙사 식당으로 걸어가 그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라고 부르는 2500원짜리 밥을 사먹는다. 매년 명절에는 집에 안 가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지방 학생들을 위해 빵과 우유를 사다 나눠 주며 공부하는 지방 학생들을 격려한다.
정 이사장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내가 옳은 결단을 내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그는 수십 년 전부터 가족에게 최소한의 재산만 남기겠다고 공약해 왔다.
지난해에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된 후 자녀들 앞에서 자식에게 거액을 상속하는 건 독약을 주는 것과 같다는 소감을 말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장남은 3년 전부터 소뇌위축증이라는 불치병을 가진 1급 장애인.
하지만 정 이사장은 거액을 상속하는 대신 우리 가족 치료보다 난치병으로 희망을 잃은 환자들의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 데 번 돈이 쓰이는 게 훨씬 의미 있을 것이라며 10억 원의 난치병연구기금을 5월 서울대병원에 기부했다.
서울대 이장무 총장은 정 이사장의 기부는 서울대 동문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감동을 준다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앞으로 부동산을 정리하는 대로 더 많은 돈을 기부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정 이사장은 광복 직후 폐허 속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공학도로서 한국을 일으키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며 요즘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또 서울대 발전기금은 하버드대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며 사회가 대학을 도와주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했다.
장원재 peacechaos@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