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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가]우린 한국의 사위들 장모사랑 넘치죠

[월드가]우린 한국의 사위들 장모사랑 넘치죠

Posted October. 07, 200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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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행정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담당했거나 현재 맡고 있는 전현직 직업외교관들 가운데 한국 여성과 결혼한 한국의 사위가 적지 않다. 7일 하와이에서 고 최창윤() 전 총무처장관의 장녀 윤희(38뉴저지 주 버건카운티 에버그린 소아과병원 원장) 씨와 결혼하는 찰스 카트먼(56) 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은 한국의 사위로는 최고위 인사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대 박사 출신으로 국무부에 특채된 케네스 키노네스 전 북한담당관은 한국 여성과 결혼한 첫 미국 외교관이다. 1960년대 한국어 특기자로 서울에서 군 복무를 할 때 영어교사와 학생으로 만났다. 당시 부인은 한국은행에 근무 중이었다.

전남 목포에서 평화봉사단(Peace Corps) 활동을 했던 리처드 크리스텐슨 아프가니스탄 주재 정무공사 역시 초창기 사위군()에 속한다.

한미 간 결혼동맹은 1980년대에 집중됐다. 키노네스 박사의 사회로 서울에서 결혼한 에릭 존 국무부 부차관보를 필두로 19821986년에 4, 5명이 결혼했다. 존 부차관보는 서울 근무 당시 조계사에서 열린 한국문화 강좌를 듣다가 배우자를 만났다.

그러나 주종을 이룬 것은 대사관 내부의 사내 결혼이었다. 한국의 신부들은 대개 대사관에 채용된 고학력 여성들이었다. 당시 미국 외교관이 외국인과 결혼하려면 엄격한 신원조회를 거쳐야 했던 만큼 몰래 데이트도 많았다.

몇 년 전 작고한 리처드 워커 당시 주한 미국대사(19811986년)는 사석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요원들을 침투시키기 위해 일부러 멋쟁이 여성을 대사관에 보낸 것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직업외교관이 25명 안팎이던 그 시절에 한국의 사위가 최고 7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사정이 좀 달라졌다. 1994년 1차 북한 핵 위기를 거치며 주한 미국대사관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총각 외교관과 한국인 여성 직원의 수가 늘어났지만 결혼 동맹은 크게 줄었다. 가장 큰 이유는 기혼 여성의 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위들은 한미 외교채널 사이의 상호 이해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물론 사위들이 있다고 중요한 한미동맹 현안에 대한 한국이나 미국 정부의 판단이 달라질 리는 없지만.



김승련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