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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은 했지만 못해요

Posted September. 22, 2005 07:44,   

日本語

한국의 골수 기증 서약자 5명보다 일본의 골수 기증자 1명이 더 고맙죠.

이정표(11) 군의 어머니 김순규(39) 씨는 요즘 아침마다 집에서 감사기도를 드린다. 9월 초 일본골수이식추진재단에서 아들에게 골수를 기증해 줄 일본인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

3월 말 갑자기 코피를 쏟고 병원을 찾은 이 군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골수이식을 해야 할 처지였다. 가족의 골수 유전자가 아들과 일치하지 않아 고민하던 김 씨는 4월 말 한국조혈모세포은행과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에서 유전자가 일치하는 5명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들 5명은 정밀검사를 앞두고 모두 기증을 거부했다.

두 번 죽는 기분이었어요. 남자 4명은 부모가 반대해 기증할 수 없다고 했고, 여자 1명은 한 달 동안 고민하다 결국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1명만 결심해도 내 아들을 살릴 수 있는데. 미칠 것 같았죠.

뜻밖에 골수를 기증하겠다고 연락한 사람은 46세의 일본인 남자였다. 40세까지만 골수기증을 허락하는 한국 기준으로는 이식이 불가능한 나이였지만 일본에서는 가능하다. 일본의 골수 기증비와 수술비는 한국에 비해 3배(약 6800만 원)나 많긴 하지만 이는 이 군 가족의 유일한 희망이다.

지난해 말부터 방송과 시민단체들의 캠페인에 이어 11일 입적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법구(시신) 기증 사실이 알려지자 장기 기증 서약자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장기 기증자는 오히려 줄고 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등록한 장기 기증 등록자는 3만296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691명에 비해 12배 이상으로 늘었다. 반면 살아 있는 사람이 골수를 포함해 장기이식을 한 경우는 올해 들어 8월까지 모두 109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69명에 비해 줄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와 장기 기증자 모집 단체의 기증자에 대한 사후관리가 소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1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의 장기이식정보시스템에 등록된 골수 기증 희망자 2500명에게 연락한 결과 29%가 연락처가 바뀌어 접촉이 되지 않았다. 또 응답자 가운데 58%는 서약 이후 한 번도 관련 단체에서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연희()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골수 기증 희망자에 대한 관리 비용으로 1년간 1만4000원을 지원하는 데 그쳐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골수 기증 서약자 대부분이 불안감이나 가족의 반대로 마음이 바뀌기 때문에 이들을 잘 관리하고 설득해야 실제 기증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최승주() 사무국장은 유럽에선 장기 기증자 이름으로 나무를 심어 가꾸고 캐나다는 총리가 매년 기증자를 초청해 격려하지만 한국의 경우엔 실제 기증 후 남는 건 뿌듯함뿐이라며 기증자들이 사회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정민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