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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르는 소리 그 공포의 속삭임

Posted July. 08, 2005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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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앨범까지 발매한 국내 3인조 여성 댄스그룹의 노래들을 사실은 댄스그룹의 일원이 아닌 다른 한 여성이 부른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흑인 듀오 밀리 바닐리도 자신들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한순간에 몰락했다. 이들 모두 립싱크를 한 것이다.

립싱크는 입을 제공하는 쪽과 목소리를 제공하는 쪽이 있어야 성립된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공생에 대한 믿음과 의존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 어느 한 쪽, 특히 목소리를 제공하는 쪽이 공생을 거부하고 혼자 주인공으로 나서려 하면 양쪽 모두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입을 벙긋거려 주는 사람이 없다면 목소리의 쓸모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역사에서 명실상부한 프랜차이즈 영화(전편이 존재하는 영화)로 자리 잡은 여고괴담 시리즈 4편 여고괴담4: 목소리(이하 목소리)는 온전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고자 하지만 누군가를 대신해야 하고 동경하며, 그래서 시기하는 삶에 갇힌 한 여고생의 불안과 공포를 목소리라는 소재에 버무렸다.

여고 2년생 영언(김옥빈)은 후두암 수술 후유증으로 노래를 못하게 된 음악선생 희연(김서형)을 대신해 음악시간에 노래를 부른다. 어느 날 저녁 홀로 음악실에서 노래 연습을 하던 영언은 또 다른 허밍 소리를 듣게 되고 겁에 질려 도망가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 악보에 목을 찔려 죽는다. 다음날 영언의 절친한 친구면서 그의 노래를 사랑하던 방송반 아나운서 선민(서지혜)은 죽은 영언의 목소리를 듣는다. 처음에는 그 목소리를 거부하던 선민은 차츰 귀신이 된 영언의 존재를 인정한다. 학교 내에 또 다른 목소리가 배회한다는 것을 알게 된 선민과 귀신 영언은 함께 그 실체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음악선생 희연이 자살한다.

목소리는 따돌림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동성애(물론 여고생과 여선생이라는 흔치 않은 관계이긴 하지만) 등 사춘기 여고생들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겪는 일상의 경험들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전편의 맥을 잇는다. 그러나 이것을 제외하면 목소리는 미국 영화 식스 센스(1999년)를 모태로 해서 약간 비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귀신이다. 영언은 영화 초반 살해당한 뒤 후반부까지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는 귀신으로 나온다. 귀신 영언의 시점으로 장면들이 묘사되고 설명된다. 심지어 귀신이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한다. 식스 센스에서 맬컴(브루스 윌리스)은 귀신이고 부인의 외도(?)에 질투를 느낀다. 다른 점이라면 영언은 맬컴과는 달리 자신이 죽었고 그래서 귀신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식스 센스에서의 알고 보니 내가 바로 귀신이었어라는 식의 기막힌 반전은 진작 반납한 셈이다.

그러나 목소리는 대사를 통해 의도적으로 식스 센스를 빌려온다. 선민 말고도 영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초아(차예련)는 나는 귀신의 소리가 들려라며 말하고, 귀신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라고 선민에게 경고한다. 식스 센스에서 여덟살 소년 콜(할리 조엘 오스먼트)이 나는 죽은 사람이 보여요., 귀신은 보고 싶은 것만 봐요라는 대사를 시각에서 청각으로 대체한 것이다.

식스 센스의 관객들이 콜의 대사를 들으며 숨겨진 반전을 어렴풋이 짐작했듯이 목소리도 초아의 대사를 통해 이 영화가 감추고 있는 비밀에 조금씩 접근해 간다. 그 반전은 귀신인 영언의 자각을 통해 드러나지만 기막힌 반전이라고 하기에는 긴장감과 설득력이 좀 부족해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귀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선민, 그 다음에는 초아, 알고 보니 생전의 영언도 귀신의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전교생이 듣고 만다. 이 정도면 누군가에게 잊혀지면 목소리도 존재도 없어져 버린다는 귀신이 이 학교에서 사라질 일은 없을 것 같다. 15일 개봉. 15세 이상.



민동용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