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관련 각종 금융지표가 일제히 곤두박질치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용 자금 수요가 줄었을 뿐 아니라 소비의 바로미터인 신용카드 사용액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경기전망을 보여 주는 장기금리는 하락세이며 시중자금의 단기화 성향은 뚜렷해지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1일 월례조회에서 연초 경기회복에 대한 가계와 기업의 기대감이 빠르게 호전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회복세가 더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권석() 기업은행장도 이날 환율, 유가 등 해외 변수들이 불안해 경기가 조기에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설비투자용 대출 감소세로
지난달 기업들이 설비투자용으로 산업은행에서 빌린 시설자금은 6000억 원(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달(6320억 원)에 비해 5% 줄었다.
시설자금 대출 규모는 1월 6770억 원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63.9% 증가한 데 이어 3월 433.7%, 4월 134.9% 늘었다. 설 연휴가 낀 2월만 41.5% 줄었다.
올해 들어 시설자금 대출이 급증하자 설비투자가 본격적으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신청했던 자금이 연초에 집행된 것일 뿐 실질적인 설비투자 증가로 보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산은이 조사한 올해 국내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가율(계획 기준)은 작년 대비 14.4%로 2004년 증가율(29.7%실적 기준)의 절반 수준이다.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도 주춤
삼성 현대 롯데 신한 LG 비씨 등 6개 전업카드 회사와 외환카드에 따르면 4월 신용카드 결제금액(현금서비스 제외)은 11조9502억 원으로 작년 같은 달(10조5933억 원)보다 12.8% 늘었다. 그러나 한 달 전인 3월(12조8124억 원)에 비해서는 7.3% 줄었다.
경기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내수 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지표다.
여신금융협회 이보우() 수석연구위원은 소비심리가 다시 위축돼 경기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올해 전체 신용카드 사용액은 지난해보다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단기자금 비중 50% 돌파
경기가 부진하면 시중자금이 단기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권의 만기 6개월 미만 자금은 3월 812조 원(평균 잔액 기준)으로 전체의 50.5%에 이른다.
한은이 1997년 시중자금의 장기 및 단기 성향을 조사한 이후 단기자금 비중이 50%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적 단기자금인 머니마켓펀드(MMF)는 1월 60조7000억 원에서 4월에는 69조4000억 원으로 14.3% 증가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연구위원은 경기가 나빠지면 장기투자를 이끌 유인이 부족해 시중자금이 단기화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금리는 떨어지고
한때 급등세를 보였던 장기금리도 떨어지는 추세다. 장기금리 하락은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뜻이다.
지난달 31일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은 3.67%로 전날보다 0.03%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따라 단기금리인 콜금리(3.26%)와의 격차가 0.41%포인트로 좁혀졌다.
장기금리는 1월 평균 3.65%에서 2월 4.19%로 크게 올랐다가 3월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연초 장기금리 상승은 새해 들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데다 정부가 우회적으로 금리 인상을 시사한 데 따른 것이었다.
고기정 김선우 koh@donga.com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