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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울에 온 고구려

Posted April. 26, 200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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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동북아 중심을 최초로 실현한 나라다. 광개토왕과 장수왕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이끌었던 5세기의 고구려는 명실상부한 동북아시아 최강국이었다. 장수왕 때의 일이었다. 중국 북부를 통일한 북위에서 새해 축하 연회가 열렸다. 고구려 사신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중국 남부를 차지한 제나라는 북위에 거세게 항의했다. 고구려 사신들을 왜 자신들과 같은 서열에 놓느냐는 것이었다. 북위의 답변은 간단했다. 고구려가 강성한 나라라서 어쩔 수 없다.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차지한 힘을 바탕으로 균형자 역할을 확실히 했다. 중국 대륙의 남북을 나눠 가진 남조와 북위의 대립 관계를 적절히 이용해 고구려를 넘보지 못하게 했다. 남쪽에서 백제가 가야 및 일본과 동맹을 맺자 고구려는 신라와 손잡았다. 고구려가 지방정권에 불과했다는 중국의 주장은 역사에 대한 억지와 무지를 동시에 자백하는 것이다. 고구려가 자랑스러운 또 다른 점은 동북아 중심에 걸맞은 경제 수준, 문화 수준이다.

장수왕이 대동강변에 건설한 안학궁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궁궐이었다. 장안성(현재의 평양)은 20만 호에 100만 명이 사는 거대 도시였다고 한다. 고구려 하면 먼저 떠오르는 벽화는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다. 고구려 벽화는 무덤 안에 회반죽을 바르고 그 위에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 기법을 택했다.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고도의 회화 수준과 건축기술이 요구되므로 국가 수준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북한이 갖고 있는 고구려 유물 60점이 서울 나들이를 했다. 5월 7일 고려대에서 개막되는 고려대 개교 100주년 기념 고구려 특별전에 선보인다. 남한에는 고구려 유적이 거의 없으므로 고구려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드물고 소중한 기회다. 유물이 밝히는 고구려 문화의 찬란한 광채뿐 아니라, 고구려인이 이뤄 냈던 번영과 영광의 비결까지 함께 읽어 내는 행사가 되기를 바란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