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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전차 녹인 회오리슛

Posted December. 20, 200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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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막을 수 없는 볼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지구상 어떤 골키퍼도 막지 못할 슈팅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최우수 골키퍼로 뽑혔던 독일의 철벽 수문장 올리버 칸(35). 그런 그가 혀를 내두른 기막힌 골. 20일 한국-독일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에서 후반 26분 터진 이동국의 결승골을 놓고 화제가 만발하고 있다.

박규선이 독일 진영 오른쪽에서 높게 올린 크로스가 독일 수비수 오모옐라의 머리를 맞고 골지역 왼쪽으로 떨어진 순간 골문을 등지고 있던 이동국은 한번 바운드된 공을 몸을 뒤틀며 오른발로 찼고 강한 회전이 걸린 볼은 독일 골문 오른쪽 상단을 꿰뚫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이 골이 터지자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칸도 멍하니 보고만 있어야 했던 이 골은 우연히 나온 것일까.

경기 후 이동국은 나도 모르는 순간에 나온 슈팅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꼭 해내야겠다는 정신력이 없었더라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조영증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장은 이동국이 넘어질 듯하다가 일어나 절묘한 슈팅을 날린 것은 반드시 골을 넣겠다는 집념의 결과다. 예전에는 이동국의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본프레레 감독 취임 이후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1988년과 1991년 프로축구 득점왕인 이기근 양평 개군중 감독은 공이 바운드된 순간 이동국의 위치 선정이 좋았고 120도 정도 몸을 틀며 인프런트로 찬 공이 회전이 걸리면서 골키퍼로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위치로 날아갔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슛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골키퍼가 예측할 수 없는 슈팅을 하겠다는 자세가 없으면 이런 동작은 나오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또 조긍연 선문대 감독은 동국이와 함께 포항팀에서 뛸 때 연습 중 비슷한 골을 터뜨린 것을 몇 번 봤다. 하지만 실전에서 역동작으로 날린 슛이 들어가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월드컵 사상 최고의 골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브라질-스웨덴의 결승전서 당시 18세이던 펠레가 발로 볼을 살짝 차올려 스웨덴 수비수 머리를 넘긴 뒤 땅에 떨어지기 전 슈팅한 것. 1997년엔 브라질의 왼발의 명수 호베르투 카를루스(레알 마드리드)가 프랑스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찬 왼발 프리킥이 스크럼을 U턴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슛엔 UFO(미확인비행물체) 슛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올해 한국축구에서는 10월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신영록(수원)이 상대 수비수 틈을 비집고 전광석화처럼 터뜨린 오버헤드킥 결승골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이동국의 슛은 그보다 훨씬 고난도의 슛이다.

평발이었던 박지성(아인트호벤)은 나를 믿어주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발이 엄청나게 아픈데도 열심히 뛰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동국의 슛은 2002 한일월드컵 주전에서 탈락했다가 본프레레호 출범 이후 주전으로 다시 발탁돼 공격의 핵으로 자리 잡은 데 대한 보은의 슈팅이 아니었을까.



권순일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