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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저항의 도시' 팔루자

Posted November. 15, 200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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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침략군이 아니라 해방군으로 왔습니다. 1917년 3월 이라크 팔루자 땅에 선 영국의 스탠리 모드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1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이 지금의 이라크가 있는 오스만제국을 침공했을 때다. 지금까지 독재에 억눌려 재산을 뺏기고 고통에 신음했겠지만 영국 왕과 백성은 당신들이 번영하기를 바란다는 포고령도 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모드 장군은 그 성공의 제물이 됐다. 그해가 가기 전 거센 저항에 부닥친 상황에서 독이 든 우유를 먹고 숨진 것이다. 놀란 영국군은 물러서기 시작했다. 모드 장군은 지금 바그다드 한쪽 끝에 묻혀 있다.

팔루자는 고대 바빌론시대부터 존재하던 유서 깊은 도시다. 이라크 독립 이후 오일달러가 모여들면서 주요 도시로 성장했고 사담 후세인 치하에선 바트당 정권을 떠받치는 핵심 지역이 됐다. 팔루자 시민의 대부분인 수니파는 이라크 전체 인구의 20%에 불과한 소수파지만 오스만제국 때부터 지배계급의 지위를 누리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걸프전 때도 민간인 사상자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가 팔루자였다.

팔루자가 시리아어로 팔루그타, 즉 분할, 경계선, 차이라는 말에서 나왔기 때문일까. 민간인 시위와 죽음, 미군 군납업체 직원과 인질 참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저항세력의 테러가 이어지면서 팔루자는 이슬람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집권 2기 강경 외교노선을 선언하듯 팔루자 공격에 성공했다. 모스크의 도시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이슬람사원에선 결사항전을 촉구하는 확성기소리가 터졌다. 이에 맞서 미군은 요란한 헤비메탈음악을 틀어댔다고 BBC방송이 전했다.

이번 공격은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을 민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미국측 설명이다. 그러나 저항은 갈수록 번지고 있다. 바로 이게 미국의 전략이라는 제닌 시나리오가 떠돈다. 2002년 이스라엘이 제닌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캠프를 습격해 분노를 일으킨 것처럼, 저항이 중동에 번지게 함으로써 미국이 시리아와 이란까지 장악할 수 있다는 음모론이다. 미군도 맨 처음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침략군이 아니라 해방군으로 왔다고 했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