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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튀지 말라 초선들에 당부

Posted May. 30, 2004 22:40,   

튀지 말고 할 말은 천천히 하라.

노무현()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만찬에서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에게 뼈있는 조언을 했다.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이었지만 잇따른 튀는 발언과 행보를 보여 온 초선 의원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당 일각에서는 튀는 언행의 원조격인 노 대통령이 거대 여당을 이끄는 관리자가 된 이후에 달라졌다는 평가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참석자들의 노래가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는 맺음말을 하는 순서에서 초선 의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한 충고를 시작했다.

그는 우선 계속 당선이 됐다면 이해찬() 의원처럼 5선이 됐을 것이라고 말문을 연 뒤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허삼수() 후보와 맞붙었던 당시를 회고하며 할 말은 천천히 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노 대통령은 당시 부산지역 당선자 모임에서 선배 정치인들에게 허삼수씨가 강자인데 피했다고 야유를 보낸 일이 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 같고 두고두고 후회한다며 1년 뒤에 삭여도 뼈가 남아 있을 말은 그때 가서 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할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튄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손해라면서 재치, 술수, 조급증 이런 것들만 잘 극복하면 중간 정도는 될 것이고 나아가 정직하고 용기 있게 솔직할 수 있다면 지도자의 꿈을 꿔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노 대통령은 진실한 것 이상으로 더 훌륭한 전략은 없고 명분과 실리를 존중하되 둘 중 하나를 택하고 잘 모르겠으면 손해나는 쪽을 택하라고 조언했다.

대통령의 충고에 대해 일부 의원은 한마디 한마디가 정치를 막 시작하는 초선 의원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덕담이었다고 평가했다. 일부는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거나 언론플레이를 하다가 망한 일부 의원을 빗댄 표현 같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말미에 그동안 용기 있게 몸을 던지면서 저항하는 정치가 높은 점수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대안과 창조의 정치, 생산성의 정치가 높은 평가를 받는 시대라면서 운동권 출신의 초선 의원들을 겨냥했다. 그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예로 들면서 투쟁적 용기보다는 역량이 평가받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 역설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바른말과 쓴소리는 꼭 필요하지만 그것은 보수정치의 시대, 언로가 막혀 있던 당 구조, 그 시절의 이야기라면서 비판적 이야기는 언제든지 내부에서 먼저 이야기하라고 꼬집었다. 초선 의원들의 소신을 내세운 돌출적인 언행을 빗댄 듯했다.

이어 그는 때로 의견이 다르면 따로 갈 수도 있지만 이런 때는 따로 해야 되는 근거가 무엇인지 잘 따져서 결단을 해야 할 때면 충분한 이유와 그에 따른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며 당의 단합과 결속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여러분 모두가 주의 깊게, 아주 사려 깊게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당부로 조언을 마쳤다.

한 참석자는 말씀을 하시는 동안 여러 차례 박수가 터져 나왔고 시종 진지하고 숙연한 분위기였다며 초선 의원에 대한 경고라기보다는 돌출적이고 튀는 행동 자체가 끊임없이 견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대통령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였다고 평가했다.



이 훈 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