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공유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성처럼, 내게 영화는 함께 보아도 다 각자 보는 행사였다. 영화에 미친 한 후배는 심지어 극장 안에서만은 누구와 함께 앉거나 팝콘을 먹는 것조차 거부했는데, 그때만큼은 평소 구부정하던 그 아이의 등도 빳빳하게 서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떠받치고 있었다.
부산 영화제에서 난 철저하게 거꾸로 돌아다닌다. 영화평론가라는 업()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영화는 공짜로 보는 횡재를 하지만, 일단 입소문이 나서 표를 구하기 힘든 작품일수록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바람을 크게 탄 영화일수록 거품은 컸고 극장내 게스트석은 대부분 아는 사람들로 채워지기 때문에 마치 노천 변에서 치러지는 동네 행사에 참석한 느낌을 받곤 했다. 또 그런 영화일수록 전국 개봉을 앞둔 덩치 큰 것들이 대부분인데, 나중에 보아도 그만이었다.
하나비 4월 이야기 등 일본 영화 개방 금지라는 족쇄에 묶이는 바람에 오히려 거품이 컸던 영화들은 허상의 너울로 나를 미혹했다. 그런 영화들을 영화제에서 보는 건 마치 화장발이 억센 여자와 잔 뒤 아침에 깨어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부산영화제에서 나는 늘 진수성찬의 식탁만 받는 임금이 된다. 마음먹으면 하루에 서너편을 폭식해도 되고 그것들을 안주삼아 지인들과 바닷가의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품평회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영화를 만나면 난 그럴 수가 없다. 마음은 정처없이 해변의 바람을 거슬러 떠돌아다니고 영화에 내 준 몸은 내가 어디 있는지를 잊게 한다.
비디오로 눌린 듯한 화면이 아니라 필름으로 영접한 아비정전을 보았을 때. 청자의 어두움과 에메랄드의 투명함이 서로 몸을 섞은 고단한 빛깔의 녹색 위로 발 없는 새가 날고, 장궈룽은 러닝 셔츠 한 장만 입고 거울 앞에서 혼자 맘보춤을 추었다. 그후 난 가끔 도시의 하늘을 가르는 발 없는 새를 보곤 한다. 후샤오셴의 동년왕사가 주었던 슬픔, 서구 영화와의 속도전을 완벽히 거절한 작가는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주인공들의 영혼을 말없이 길어 올리고 있었다.
이런 영화를 보다가 다시 축제처럼 흥겨워지고 싶을 때면 하루에 한 편은 코미디나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맞이하며 관객들과 어깨 춤을 추었다.
문득 여성 감독 클라라 로를 광복동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손잡고 걷고 있었는데 둘은 마치 한 쌍의 비둘기 같았다. 이전에 여성 감독과의 모임에서 한 무더기의 감독들과 만났던 터였는데도, 지금도 내 기억에는 하늘이 한없이 넓었던 1967년 시트로앵의 화면과 평온하면서도 진정성을 가진 인간 관계를 살짝 보여주었던 그녀가 겹쳐져 기억되고 있다. 클라라 로를 보고, 빔 벤더스와 함께 빔 벤더스의 밀리언 달러 호텔을 보는 것. 그것도 부산만이 내게 준 선물이다.
아마도 중요한 것은 하루에 본 영화 편수도, 부산이 틀어 주는 영화의 편수도 아닐 것이다. 유럽이든 아시아이든 코미디든 판타스틱이든 영화제의 본질은 제각각 원하는 주제의, 보고 싶은 영화를 틀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면 되니까.
그러니 올해 부산에서 기타노 다케시나 차이밍량 감독을 만나더라도 놀라지 마시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하나되는 것이 또한 영화제니까. 부산에서 나는 부산의 늦가을과 바다와 영화 한 편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마치 그 누군가를 만나 행복했듯 그 수많은 영화들 중 나를 사로잡는 영화 한 편만을 만난다 해도 말이다.
순결했던 영화 청년들의 밤이, 하늘이 한 뼘 더 낮아지고 바다는 한 뼘 더 좁아지게 만들던 그 많던 아이들이 이제 부산의 해변으로 다시 몰려 올 것이다. 부산을 진정 가을의 초입부터 겨울까지 내내 영화제로 남게 만드는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쉬리나 송어의 밤 등 웬 물고기의 밤이 그렇게 많았는지, 술을 물처럼 들이켜다 학생들이 선물로 준 지갑을 잃어버린 채 바닷가에 앉아 엉엉 운 그 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작년 이맘 때, 아이를 가지는 바람에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의 호호 할아버지 김동호 위원장의 술을 끝내 받아 마시지 못한 한도 이번에는 확 풀어 버리리라. 반바지에 휘파람 휘휘 불며 슬리퍼 끌고, 주머니에 손 넣고 동네 산책하듯 그렇게 가자. 아마도 부산영화제의 가장 좋은 관람법은 기억의 책갈피에 부산을 끼워 넣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한껏 들뜨는 일은 아니던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