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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난 산길 바람만 마셔도 든든

Posted May. 01, 2002 10:12,   

1959년인가 그 이듬해인가 태백산 정암사에 간 일이 있다. 당시 공군사관학교 국사교관으로 있었는데, 정암사는 청정한 도량이고 그곳에 있는 신라의 탑이 훌륭하다고 들었다.

지도 한 장 없이 카메라를 메고 선배 한분과 길을 나섰다. 청량리에서 시꺼먼 연기를 뿜어대는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 정선에 내린 것은 이른 아침. 거기서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태백산 밑까지 가니 벌써 낮 12시. 거기서도 길도 차도 없는 곳을 오십리는 가야한단다.

한참 탄길을 따라 오르는데 석탄트럭이 올라오고 있었다. 차를 세워 사연을 말하니 운전기사가 이 차는 정암사 근처까지는 아니 가도 탄광본부에 가면 또다른 탄차가 정암사 근처를 지나니 타라고 했다. 한시간쯤 덜컹거리며 오르막 내리막 수백번에 그 탄광본부에 다달았다.

그곳에서 다시 탄차의 운전석 옆에 떡하니 타고 또 한시간쯤 가서 정암사 아래서 내렸다. 기사분이 친절하게 산사에 이르는 길을 일러준다.

정암사에 도착한 것은 저녁해가 뉘엿뉘엿 지려는 시각이었다. 심산유곡을 바라볼 겨를도 없이 저희가 절도 보고 탑도 보러 왔습니다고 했다.

그 때 정암사는 강원()이 있는 그야말로 청정 비구만 수도하는 곳이라 일절 바깥사람을 재우지 않는다고 했지만 해는 이미 서산을 넘고 말았다. 스님네가 도리없이 정갈한 절방 하나를 내어준다. 스님네는 어린아이같이 맑고 깨끗해 신선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밥 한 그릇 된장 조금, 시래기 짜게 절인 것이 전부였지만 바람만 마셔도 배가 불렀다. 원장스님은 그 때 법명이 석호스님이었는데 깡마르고 깐깐해 보였지만 우리를 대하는 모습은 인자했다.

탑은 적멸보궁 뒤편의 가파른 언덕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모셨다. 높이가 9m 되는 수마노석으로 된 모전석탑으로 여러 가지 발색도 신비롭지만 그 산중에 어떻게 저렇게 거룩한 탑을 조성해 모셨는가 하고 자못 흥분됐다.

탑머리에 청동상륜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탑의 각층 추녀에는 풍탁이 달려있어 그 장엄하고 수려함이 다른 곳 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침 공양 일찍하고 떠나려 하니 스님네가 내려가는 길은 수월하니 점심공양 들고 가라고 간곡하게 말한다. 점심공양은 과연 탁탁한 진미였다. 몇가지 잡곡이 섞인 윤이 자르르 흐르는 찰밥에 들깨를 갈아 볶은 나물이 찬이었다.

석호스님은 나중에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법호 서옹이시고 지금은 백양사 방장으로 계신다고 들었다. 서옹스님과 그때 청정무구한 스님네의 성불하심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