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2일

‘개조’라고 쓰고 ‘독립’이라고 읽는다

공유하기 닫기
원본보기
1910년대 말에서 1920년대 초 지구촌을 사로잡았던 단어는 다름 아닌 ‘개조(改造)’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인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 새로운 세계로 성큼 나아가는 방법이 바로 ‘개조’였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도 1919년 3·1운동 때 이미 개조의 물결은 넘실거렸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세계개조의 대기운’이라는 구절이 나오고 1년 뒤 동아일보 창간사도 ‘각 방면에 해방과 개조의 운동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1919년 일본에서 잡지 ‘개조’가, 이듬해 한국에서는 잡지 ‘개벽’이 각각 창간됐죠.

김명식의 기명 칼럼 ‘대세와 개조’는 이런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역사를 볼 때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개조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종교와 학문 사회 경제 인권 정치 국제 등 각 분야의 역사적 사례를 종횡무진 열거해 자신이 알고 있는 동서고금의 지식을 뽐내면서 개조의 당위성을 역설하죠. 또 그는 사회는 변화하며 변화의 방향이 진보라는 사실을 볼 때 개조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개조로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이비 개조’가 많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김명식은 강조합니다. 이상적이고 내면적이며 전체적으로 개조가 이뤄져야 하는데 과거의 개조는 권력이 주도하거나 피상적이거나 일부분에 그친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구미 각국은 개조가 필요한 약육강식의 무대였다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제1차 대전이 끝나고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14개조를 제창하고 전후 처리를 논의하는 파리평화회의가 열렸을 때만 해도 그 결과로 나타나는 개조는 과거와는 다른 ‘진짜 개조’가 될 것으로 누구나 기대했습니다. 김명식은 칼럼에서 ‘독립’이라는 단어는 ‘필리핀의 독립’을 말할 때 한 번만 사용했지만 내심 한반도의 개조는 일제로부터의 독립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파리평화회의 결과 국제연맹이 창설됐지만 그 내용은 기대에 못미쳤습니다. 식민지 독립도 전쟁에서 패배한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에만 적용되는 수준에서 끝이 납니다. 김명식은 이 불만스런 결과의 책임을 이탈리아 오를란도 총리와 프랑스 클레망소 총리, 영국 로이드 조지 수상 등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렇지만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부실한 국제연맹이나마 이상을 향해 오르는 계단이 됐다고 자위하죠. 이는 개조를 향해가는 세계의 대세가 아직 꺾어지지 않았다고 낙관하기 때문입니다.

제주 출신인 김명식은 당시 동아일보 논설반 기자였습니다. 지금의 논설위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논설반을 이끈 장덕수 주간과는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서 만났습니다. 김명식이 장 주간보다 네 살 많았으니 그때 30세였습니다. 유학 시절인 1916년 일본에서 한국 중국 청년 40여 명이 일제를 타파할 목적으로 결성된 ‘신아동맹단’에 두 사람이 함께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동아일보 논설반에 합류하게 됐다고 합니다.

김명식은 장 주간보다 나이도 많았지만 정열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글을 빨리 쓰는 속필인 것도 이런 성격이 반영된 듯합니다. 당시 사설을 장 주간과 사실상 번갈아 쓰는 상황에서 장 주간이 자기 글을 싣지 못하게 할라치면 “너같이 못생긴 자나 그것을 못 싣는다지, 누가 뭐라 할 것이냐”고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까지 가세하면 전쟁판이나 다름없었고 사설이 제때 나오지 않아 신문 발행이 늦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하죠. 김명식은 창간 초기에 필화를 겪기도 합니다. 이 내용은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大勢(대세)와 改造(개조) - 金明植(김명식)···1920년4월2일3면

釋迦牟尼(석가모니)가 『파라문』의 階級(계급) 宗敎(종교)를 打破(타파)하고 大慈大悲(대자대비)의 大平等(대평등)을 唱(창)하며 耶蘇(야소)가 『파리새』의 儀式(의식) 宗敎(종교)를 驅逐(구축)하고 四海同胞(사해동포)의 博愛(박애)를 叫(규)함은 宗敎上(종교상)의 改造(개조)이오. 天動說(천동설)을 否認(부인)하고 地動說(지동설)을 是認(시인)하며 唯物論(유물론)을 排斥(배척)하고 唯心論(유심론)을 肯定(긍정)하며 大權神授說(대권신수설)을 國家目的說(국가목적설)을 捨(사)하고 大權委托說(대권위탁설)을 國家機關說(국가기관설)을 取(취)함은 學說上(학설상)의 改造(개조)이오. 家族制(가족제)를 打破(타파)하고 個人思想(개인사상)을 喚起(환기)하며 個人主義(개인주의)를 制限(제한)하야 社會思想(사회사상)을 促進(촉진)하며 社會主義(사회주의)를 善化(선화)하야 個人人格主義(개인인격주의)가 發生(발생)함은 社會上(사회상)의 改造(개조)이오. 經濟組織(경제조직)이 家族的(가족적)으로 部落的(부락적)으로 國家的(국가적)으로 또다시 世界的(세계적)으로 變(변)하며 生産方法(생산방법)이 家內(가내)에서 工場(공장)으로 手工(수공)에서 機械(기계)로 職人(직인) 勞力制(노력제)에서 勞動者(노동자) 勞役制(노역제)로 變(변)하며 資本萬能(자본만능)이 勞動萬能(노동만능)으로 生産集中主義(생산집중주의)가 分配公平主義(분배공평주의)로 變(변)함은 經濟上(경제상)의 改造(개조)이오. 制限(제한)하던 選擧權(선거권)을 普通制(보통제)로 一般制(일반제)로 制限(제한)하던 參政權(참정권)을 男女無差別(남녀무차별)로 變(변)하며 또 移住(이주)에 營業(영업)에 結婚(결혼)에 結社(결사)에 集會(집회)에 言論(언론)에 制限(제한)하던 모든 墻壁(장벽)을 撤廢(철폐)하고 自由(자유)에 放任(방임)함은 人權(인권)의 改造(개조)이오. 保護貿易(보호무역)을 自由貿易(자유무역)으로 武斷主義(무단주의)를 文治主義(문치주의)로 官僚貴族主義(관료귀족주의)를 民衆平民主義(민중평민주의)로 變(변)함은 政治上(정치상)의 改造(개조)이오. 侵略主義(침략주의)를 協調主義(협조주의)로 軍國主義(군국주의)를 平和主義(평화주의)로 閉關獨守主義(폐관독수주의)를 門戶開放主義(문호개방주의)로 利權獨占主義(이권독점주의)를 機會均等主義(기회균등주의)로 外交(외교) 秘密主義(비밀주의)를 公開主義(공개주의)로 權謀術策主義(권모술책주의)를 正義人道主義(정의인도주의)로 變(변)함은 國際上(국제상)의 改造(개조)이라. 故(고)로 歷史(역사)를 按(안)하야 觀察(관찰)하건대 何(하) 時代(시대) 何(하) 社會(사회) 何(하) 國家(국가)를 莫論(막론)하고 改造(개조)가 無(무)한 者(자)는 無(무)하니라.

雖然(수연)이나 歷史上(역사상) 過去(과거)의 改造(개조)는 實質(실질)의 改造(개조)가 아니오 形式(형식)의 改造(개조)이며 民衆(민중)의 改造(개조)가 아니오 少數(소수)의 改造(개조)이며 根本(근본)의 改造(개조)가 아니오 局部(국부)의 改造(개조)이며 事實(사실)의 改造(개조)가 아니오 議論(의론)의 改造(개조)이라. 져 唐(당)을 改造(개조)한 宋(송)이나 宋(송)을 改造(개조)한 元(원)이나 元(원)을 改造(개조)한 明(명)이나 軍閥官僚(군벌관료)를 代表(대표)하엿던 寺內內閣(사내내각)을 改造(개조)한 政黨(정당)의 原內閣(원내각)이나 歐米諸國(구미제국)의 所謂(소위) 右黨(우당)을 敗(패)한 左黨(좌당)이나 保守黨(보수당)을 敗(패)한 自由黨(자유당)이나 自由黨(자유당)을 敗(패)한 民主黨(민주당)이나 都是(도시)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의 差(차)가 有(유)할 뿐이오 그 內容(내용)에 實質(실질)에 根本(근본)에는 少許(소허)도 改造(개조)한 바이 無(무)하야 依然(의연)히 在來式(재래식) 階級的(계급적)이며 少數的(소수적)이며 爲己的(위기적)이며 排他的(배타적)일 뿐이니라.

그럼으로 改造(개조)하는 者(자)는 民衆(민중)이 아니요 少數(소수)이며 理想(이상)이 아니오 權力(권력)이라. 在來(재래)의 權力家(권력가)가 無道(무도)로 否運(비운)으로 因(인)하야 그 權力(권력)이 頹廢(퇴폐)한 때에 新權力家(신권력가)가 出來(출래)하야 前者(전자)를 除去(제거)하고 그 權力(권력)을 引繼(인계)하얏슬 뿐이오. 過去(과거)의 思想(사상)과 組織(조직)과 制度(제도)와 文物(문물)에 對(대)하야 伏在(복재)한 바 無數(무수)한 缺陷(결함)을 除去(제거)하고 이에 新鮮(신선)한 新基礎(신기초) 우에 新建設(신건설)을 企圖(기도)하야 본 者(자)― 殆(태)히 無(무)하니라. 져 桀紂(걸주)의 暴惡(포악)으로 民衆(민중)이 起(기)하야 根本的(근본적) 改造(개조)를 覺(각)하얏스나 드대여 殷湯周武(은탕주무)의게 利用(이용)을 當(당)하얏슬 뿐이며 『류이』 十六世(십육세)의 無道(무도)로 佛蘭斯(불란사) 民衆(민중)이 起(기)하야 實質上(실질상) 改造(개조)를 行(행)하얏스나 맛참내 露獨墺(노독오) 三帝王(삼제왕)의 所謂(소위) 神聖同盟(신성동맹)의게 蹂躪(유린)을 遭(조)하얏슬 뿐이며 또 哲人(철인)이나 傑士(걸사)들이 比比(비비)히 改造(개조)를 主唱(주창)한 者(자)가 無(무)치 아니하나 背後(배후)의 權力(권력)이 無(무)함으로 또 因襲的(인습적) 權力(권력)이 强大(강대)함으로 民衆(민중)이 改造(개조)에 對(대)하야 徹廢(철폐)한 自覺(자각)이 無(무)하얏슴으로 이에 그 主張(주장)한 바이 事實(사실)로 化(화)치 못하고 다만 學說(학설)에 理想(이상)에 止(지)하얏슬 뿐이니라.

然則(연즉) 改造(개조)는 可(가)한 것인가 否(부)한 것인가. 可(가)하면 可能(가능)한 것인가 不可能(불가능)한 것인가. 그런대 이 問題(문제)를 論(논)하기 前(전)에 몬져 社會(사회)는 流動體(유동체)인가 固定體(고정체)인가. 流動體(유동체)이면 進步的(진보적)인가 退步的(퇴보적)인가를 論(논)함이 必要(필요)할지니 이를 歷史(역사)로써 觀(관)하면 漁獵牧畜(어엽목축)의 野獸時代(야수시대)로 漸次(점차) 文化時代(문화시대)에 進步(진보)하얏스니 進步(진보)하엿는지라. 故(고)로 社會(사회)는 變遷的(변천적) 流動體(유동체)이니라. 그럼으로 變遷(변천)은 改造(개조)의 可能(가능)함을 示(시)함이며 進步(진보)는 改造(개조)의 可(가)함을 說明(설명)하는 것이니라. 그런대 만일 改造(개조)가 可能(가능)치 못하얏스면 土耳其(토이기)의 暴政下(폭정하)에 『보류네우쓰』가 잇지 못할 것이오. 羅馬敎(라마교)의 專制下(전제하)에 『류―터』가 잇지 못하얏슬 것이오. 英吉利(영길리)의 苛斂下(가렴하)에 『와신톤』이 잇지 못하얏슬 것이며 또 改造(개조)가 可(가)치 아니하얏더면 明治(명치)의 維新(유신)도 支那(지나)의 革命(혁명)도 『링칸』의 黑奴解放(흑노해방)도 잇지 아니하얏슬 것이라.

그런대 支那(지나)에 孫文(손문)의 改造(개조)가 업섯스면 少數(소수)의 滿族政府(만족정부)가 顚覆(전복)이 되얏슬 것은 勿論(물론)이오. 四百州(사백주)의 所有(소유)가 誰(수)의게 歸(귀)하엿슬는지 또 四億萬(사억만)의 民衆(민중)이 誰(수)의게 奴隷(노예) 되얏슬는지 英(영)일넌지 佛(불)일는지 日(일)일넌지 獨(독)일넌지 米(미)일넌지 露(로)일넌지 未知(미지)이오. 領事裁判權(영사재판권)의 撤廢(철폐)를, 工務局(공무국)에 議員(의원) 參加(참가)를 主唱(주창)하며 學生(학생)들이 大同團結(대동단결)을 商民(상민)들이 『뽀이꼬트』를 行(행)하며 新聞(신문)이 雜誌(잡지)가 學校(학교)가 會社(회사)가 雨後竹筍(우후죽순)과 如(여)히 發生(발생)하며 또 前無(전무)한 巴里大會(파리대회) 議席上(의석상)에서 靑年(청년) 顧維均(고유균)이가 獅子吼(사자후)를 演(연)하는 等(등) 事(사)는 夢想(몽상)에도 覺(각)치 못할 事實(사실)이며 日本(일본)이 浦賀(포하)의 關門(관문)을 閉鎖(폐쇄)하고 『페리』의 上陸(상륙)을 拒絶(거절)하얏스면 換言(환언)면 守舊派(수구파)의 攘夷論(양이론)을 取(취)하고 開化派(개화파)의 開放主義(개방주의)를 捨(사)하얏스면 立憲(입헌)이니 政黨(정당)이니 日淸(일청) 日露(일로) 日獨(일독) 戰勝(전승)이니 하는 月桂冠(월계관)을 冠(관)함은 姑捨(고사)하고 도리혀 印度(인도)와 緬甸(면전)과 安南(안남)과 갓치 悲慘(비참)한 地境(지경)에 陷(함)하얏슬는지 未可知(미가지)이며 『링칸』의 黑奴解放(흑노해방)이 업선스면 人身賣買(인신매매)하는 野蠻的(야만적) 行動(행동)은 世界(세계)에 汎濫(범람)하고 勞動者(노동자)를 禽獸(금수)와 同一視(동일시)하야 黃金(황금)의 暴君(폭군)이 宇宙(우주)를 專橫(전횡)하얏슬 것이오 米國(미국)의 人道主義(인도주의) 『윌손』의 十四個條(십사개조)는 春夢(춘몽)에 南柯(남가)를 遊覽(유람)함이 되얏슬지니라.

그런즉 改造(개조)의 可(가)함은 勿論(물론)이오 改造(개조)의 可能(가능)함도 確(확)히 信(신)할지니 故(고)로 可(가)한 改造(개조)를 맛당히 行(행)할 것이오 可能(가능)한 改造(개조)를 맛당히 爲(위)할 것이라. 이에 力(힘)을 渴(갈)하며 血(혈)을 盡(진)하며 汗(한)을 流(류)하야 奮鬪(분투)할 바이오 努力(노력)할 바이로다.

그러나 過去(과거)의 改造(개조)는 以上(이상)의 述(술)함과 如(여)히 權力(권력)을 改造(개조)이오 理想的(이상적) 改造(개조)가 아니며 皮想的(피상적) 改造(개조)이오 內面的(내면적) 改造(개조)가 아니며 局部的(국부적) 改造(개조)이오 全體的(전체적) 改造(개조)가 아니라. 엇지 爭奪(쟁탈)이 殺伐(살벌)이 止(지)하며 猜疑(시의)가 侵略(침략)이 休(휴)하리오. 依然(의연)히 權謀(권모)로써 正義(정의)를 삼고 暴力(폭력)으로써 人道(인도)를 삼앗슬 뿐이라. 이를 大戰(대전)이 勃發(발발)하기 前(전) 歐米各國(구미각국)의 狀態(상태)로써 觀(관)하면 巴爾幹諸邦(파이간제방)이 서로 角逐(각축)하야 寧日(영일)이 無(무)한 것은 勿論(물론)이오 列强大國(열강대국)들도 서로 反目(반목)하고 서로 敵視(적시)하야 或(혹)은 經濟問題(경제문제)로 或(혹)은 殖民問題(식민문제)로 或(혹)은 海上權問題(해상권문제)로 或(혹)은 歷史上(역사상) 感情(감정)으로 甲(갑)은 乙(을)을 乙(을)은 丙(병)을 丙(병)은 丁(정)을 嫉妬(질투)하며 排斥(배척)하야 機會(기회)만 有(유)하면 能力(능력)만 及(급)하면 我(아)는 彼(피)를 食(식)하겟다 彼(피)는 我(아)를 呑(탄)하겟다 하야 서로 이에 對(대)한 準備(준비)를 懈(해)치 아니함으로 産業(산업)도 武裝的(무장적)으로 貿易(무역)도 武裝的(무장적)으로 敎育(교육)도 軍隊式(군대식)으로 租稅(조세)도 軍費(군비) 따문에 思想(사상)도 軍國的(군국적)으로 萬般(만반)이 軍國化(군국화)하얏슬 뿐이라. 故(고)로 他(타)를 征服(정복)함은 正義(정의)이오 我(아)를 肥大(비대)함은 人道(인도)이라. 安寧(안녕)은 警察(경찰)에만 잇고 秩序(질서)는 軍隊(군대)에만 잇고 平和(평화)는 武裝(무장)에만 잇섯도다. 民家(민가)는 悲慘(비참)한 奴役(노역)을 하던지 苛酷(가혹)한 犧牲(희생)을 하던지 無依無食(무의무식)에 道路(도로)에 呼哭(호곡)하던지 無學無職(무학무직)에 歸向(귀향)할 곳이 無(무)하던지 都是(도시) 不問(불문)에 付(부)하고 다만 少數(소수)의 特權階級(특권계급)이 虛榮(허영)과 野慾(야욕)만 充滿(충만)하면 이여 欣喜(흔희)가 잇섯고 이에 快樂(쾌락)이 잇섯고 이에 幸福(행복)이 잇섯나니라. 이 엇지 改造(개조)치 아니할 事實(사실)이며 改造(개조)치 아니할 時機(시기)리오. 亂(란)이 極(극)하면 治(치)를 思(사)하고 否(부)가 極(극)하면 害(해)가 回(회)함은 眞理(진리)의 이라. 今番(금번) 國際聯盟(국제연맹)이 엇지 遇(우)오 然(연)한 事實(사실)이리.

大雨(대우)가 降(강)하랴면 雷電(뇌전)이 有(유)하고 大風(대풍)이 起(기)하랴면 陰雨(음우)가 下(하)하나니 엇지 人類(인류)의게 새 生命(생명)을 與(여)할 國際聯盟(국제연맹)이 出來(출래)할 때에 大風雲(대풍운)이 無(무)하리오. 武裝(무장)으로 生産(생산)한 財貨(재화)와 武裝(무장)으로 長成(장성)한 人物(인물)은 淸淨(청정)하게 掃除(소제)하고 愛(애)에서 産出(산출)하는 財(재)와 愛(애)에서 動作(동작)하는 人(인)을 做出(주출)하야써 新鮮(신선)한 基礎(기초) 우에 神聖(신성)한 新文化(신문화)를 建設(건설)하랴고 大戰(대전)이 發生(발생)한 것이 아인가. 大戰(대전)을 經(경)한 後(후)에 交戰各國(교전각국)의 統計(통계)(數字(수자)는 略(약)함)를 觀(관)하면 杜甫(두보)의 兵車行(병차행)과 李華(이화)의 吊戰場文(적전장문)을 唱(창)치 아니치 못할지로다. 觀(관)할지어다. 華麗(화려)하던 市街(시가)에 秋草(추초)가 生(생)하고 壯嚴(장엄)하던 堂宇(당우)에 灰燼(회신)이 飛(비)하니 子(자)를 失(실)하고 痛(통)하는 者(자)며 父(부)를 亡(망)하고 哭(곡)하는 者(자)며 子(자)도 父(부)도 妻(처)도 夫(부)도 無(무)하야 哭(곡)할 者(자)도 痛(통)할 者(자)도 無(무)한 者(자)가 그 數(수)를 難計(난계)이니 愁愁(수수)한 鬼哭聲(귀곡성)이 엇지 神(신)을 動(동)치 아니하얏스리오.

이때를 當(당)하야 米國(미국) 大統領(대통령) 『윌손』 氏(씨)가 十四個條(십사개조)를 提(제)하고 巴里(파리)에 着(착)하야 市民(시민)의 熱狂的(열광적) 歡迎(환영)을 受(수)하고 自己(자기)의 使命(사명)은 『米國(미국) 政府(정부)의 代表(대표)가 아니오 人類(인류)의 代表(대표)라』고 豪言(호언)을 吐(토)하며 列國代表(열국대표)의게 十四個條(십사개조)의 聯盟案(연맹안)을 提出(제출)하고 團匪(단비) 倍償金(배상금)을 還給(환급)하며 非率賓(비율빈) 獨立(독립)을 操縱(조종)하며 巴里幹(파리간) 委任統治(위임통치)를 拒絶(거절)하고 公正(공정)한 立脚地(입각지)에서 國際聯盟(국제연맹)의 精神(정신)과 經綸(경륜)을 諄諄(순순)히 說明(설명)하엿스나 그러나 無合倂無倍償(무합병무배상)에 頑强(완강)한 『구레만손』 『오류란드』의 反對(반대)를 民族自決(민족자결) 海洋自由(해양자유)에 巧詐(교사)한 『노이드 쪼지』의 阻害(조해)를 軍備制限(군비제한)에 戰勝列國(전승열국)의 異議(이의)를 遭(조)하고 맛침내 國際聯盟(국제연맹)의 骨子(골자)가 蹂躪(유린)을 當(당)하야 草偶人(초우인) 갓흔 聯盟組織(연맹조직)이 出來(출래)하엿나니. 故(고)로 宇(우) 氏(씨)의 努力(노력)과 熱辯(열변)은 오즉 高利貸金者(고리대금자)의게 對(대)하야 福音傳道(복음전도)가 되얏슬 뿐이라. 이 엇지 人類(인류)를 爲(위)하야 또 宇(우) 氏(씨)를 爲(위)하야 憾(감)이 無(무)하며 嘆(탄)이 無(무)할 바이리오.

그러나 宇(우) 氏(씨)의 精神(정신)은 滅(멸)치 아니하고 儼然(엄연)히 存在(존재)하엿스며 또 人類(인류)들이 聯盟(연맹)에 對(대)하야 覺醒(각성)이 날노 增大(증대)하야 大勢(대세)의 趨向(추향)이 임의 判定(판정)이 되얏거니와 宇(우) 氏(씨)가 聯盟規約(연맹규약)을 提出(제출)한 時期(시기)와 이를 討議(토의)한 各國代表(각국대표)들을 觀(관)하건대 十四個條(십사개조)가 徹底(철저)히 通過(통과)치 못할 것은 當然(당연)한 事實(사실)이로다. 聯盟規約(연맹규약)을 提出(제출)한 時期(시기)는 비록 休戰(휴전)은 하엿슬지라도 戰爭(전쟁)의 氣分(기분)은 交戰時(교전시)보다도 旺盛(왕성)하야 萬歲聲(만세성) 凱旋歌(개선가)에 民衆(민중)이 熱中(열중)하야 戰功(전공)을 相矜(상긍)할새 敵愾心(적개심)이 渤渤(발발)하얏고 出馬(출마)한 代表(대표)들은 戰勳(전훈)으로 立身(입신)하고 戰功(전공)으로 揚名(양명)하야 特派(특파)의 榮位(영위)를 圖得(도득)한 者(자)이라 그럼으로 民衆(민중)이 聯盟(연맹)에 對(대)하야 冷情(냉정)하얏고 代表(대표)들이 聯盟(연맹)에 對(대)하야 理解(이해)(或(혹) 理解(이해)하엿슬지라도 自己(자기)의 地位(지위) 따문에 聯盟(연맹)을 贊同(찬동)치 아니하엿나니라)가 無(무)하엿슴으로 孤獨(고독)한 宇(우) 氏(씨)의 盡力(진력)이 自己(자기) 理想(이상)을 徹底(철저)히 表現(표현)치 못하얏도다.

그러나 一千九百十九年(일천구백십구년)은 임의 過去(과거)이라. 凱旋門(개선문)에 고흔 곳도 업서지고 空中(공중)에 고흔 火花(화화)도 업서지고 熱狂的(열광적) 萬歲(만세)소리도 敵愾的(적개적) 凱旋(개선)노래도 모다 업서지고 寂寞空堂(적막공당)에 孑孑(혈혈)히 獨坐(독좌)하야 形影(형영)이 相看(상간)하며 悠悠(유유)히 默想(묵상)하는 一千九百二十年(1920년)이 來(래)하엿도다. 아―乃父(내부)는 乃兄(내형)은 乃妻(내처)는 乃子(내자)는 何處(하처) 去(거)하며 乃族(내족)은 乃戚(내척)은 乃朋(내붕)은 何處(하처) 在(재)하고 談話(담화)에 相對(상대)가 無(무)하고 疾病(질병)에 慰問(위문)이 無(무)하고 散步(산보)에 同伴(동반)이 無(무)하고 尋訪(심방)에 主人(주인)이 無(무)하고 論議(논의)에 同志(동지)가 無(무)하고 취손에 助役(조역)이 無(무)하다. 父(부)를 爲(위)하야 魂(혼)을 招(초)하고 妻(처)를 戀(연)하야 山(산)에 哭(곡)하나 다만 猩猩(성성)이 和唱(화창)할 뿐이오 問(문)할 곳이 杳然(묘연)하고나. 噫(희)라. 此何故此何故(차하고차하고)오. 唯唯(유유)라. 始可知始可知(시가지시가지)로다······.

이에 『오류란드』를 排斥(배척)하고 『구레만손』의 大統領(대통령)을 反對(반대)하고 『에볘르트』가 重出(중출)하고 『레인』 政府(정부)를 認定(인정)하고 『골짝크』를 陷落(함락)하고 『사조노후』를 放逐(방축)하고 『노이드 쪼지』를 攻擊(공격)하며 國際聯盟(국제연맹)의 精神(정신)을 讚美(찬미)하고 宇(우) 氏(씨)의 先見明(선견명)을 欽敬(흠경)하게 되얏나니라. 그러나 國際聯盟(국제연맹)이 人類(인류) 最高理想(최고이상)은 아니오 不完全(불완전)한 現狀(현상)으로부터 그 理想域(이상역)으로 向(향)하는 큰 楷段(해단)이니라.

孔子(공자) 가로사대 德(덕)의 依行(의행)함은 郵(우)를 置(치)하야 命(명)을 傳(전)함보다도 速(속)하다 하시니 國家絶對思想(국가절대사상)에 的淪(적륜)하야 侵略的(침략적) 帝國主義(제국주의)로 人道的(인도적) 民主主義(민주주의)를 排斥(배척)하고 武裝的(무장적) 外交(외교)、資本的(자본적) 産業軍隊式(산업군대식) 敎育(교육)을 讚美(찬미)하며 正義的(정의적) 外交(외교) 勞動的(노동적) 産業文化的(산업문화적) 敎育(교육)을 無視(무시)하던 結果(결과) 大戰(대전)의 森嚴(삼엄)한 洗禮(세례)를 受(수)한 人類(인류)들이 비로소 平和(평화)를 攪亂(교란)하는 物質文明(물질문명)의 大缺陷(대결함)을 發現(발현)하고 이에 平和(평화)를 保障(보장)할 精神文明(정신문명)으로 入(입)하야 自覺的(자각적) 改造(개조)를 經營(경영)하는 大勢(대세)의 趨向(추향)은 實(실)로 可觀(가관)이로다.
대세와 개조 - 김명식


석가모니가 ‘바라문’의 계급과 종교를 타파하고 대자대비의 대평등을 주장하며 예수가 ‘바리새인’의 의식과 종교를 몰아내고 전 인류의 박애를 부르짖은 것은 종교상의 개조이다. 천동설을 틀렸다 하고 지동설이 옳다 하며 유물론을 물리치고 유심론을 인정하며 대권신수설을, 국가목적설을 버리고 대권위탁설을, 국가기관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학설상의 개조이다. 가족제를 깨뜨리고 개인사상을 불러일으키며 개인주의를 제한해 사회사상을 촉진하며 사회주의를 바르게 이끌어 개인인격주의가 일어남은 사회상의 개조이다. 경제조직이 가족적으로, 부락적으로, 국가적으로 나아가 세계적으로 변하며 생산방법이 가내에서 공장으로, 수공업에서 기계제로, 직인들의 수공업에서 노동자들의 근로제로 바뀌며 자본만능이 노동만능으로, 생산집중주의가 분배공평주의로 변하는 것은 경제상의 개조이다. 제한하던 선거권을 보통제 일반제로, 제한하던 참정권을 남녀차별 없게 바꾸며 또 이주를, 영업을, 결혼을, 결사를, 집회를, 언론을 묶었던 모든 장벽을 없애고 자유롭게 하는 것은 인권의 개조이다. 보호무역을 자유무역으로, 무단주의를 문치주의로, 관료귀족주의를 민중평민주의로 바꾸는 것은 정치상의 개조이다. 침략주의를 협조주의로, 군국주의를 평화주의로, 쇄국주의를 문호개방주의로, 이권독점주의를 기회균등주의로, 외교의 비밀주의를 공개주의로, 권모술책주의를 정의인도주의로 바꾸는 것은 국제상의 개조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살펴볼 때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개조하지 못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역사상 과거의 개조는 실질의 개조가 아니라 형식의 개조이며 민중의 개조가 아니라 소수의 개조이며 근본의 개조가 아니라 일부의 개조이며 사실의 개조가 아니라 말의 개조였다. 옛 중국의 당을 개조한 송이나, 송을 개조한 원이나, 원을 개조한 명이나, 군벌관료를 대표했던 일본 데라우치 내각을 개조한 정당 중심의 하라 내각이나, 구미제국의 이른바 우파 정당을 무너뜨린 좌파 정당이나, 보수당을 패배시킨 자유당이나, 자유당을 누른 민주당이나, 모두 50보 100보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내용과 실질, 근본에는 조금도 개조한 것이 없어 원래 있던 기존의 계급적이고 소수적이며 자기만을 위하며 배타적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개조하는 자는 민중이 아니라 소수이며 이상이 아니라 권력이다. 기존 권력가가 도리에 어긋나고 운이 막혔던 탓에 권력이 약해졌을 때 새로운 권력가가 나타나 옛 권력가를 제거하고 그 권력을 넘겨받았을 뿐이다. 과거 사상과 조직, 제도, 문물에 숨겨져 있는 많은 결함을 없애고 신선한 기초 위에 새로운 건설을 꾀해 본 자는 거의 없다. 고대 중국의 걸왕과 주왕이 포악을 부리자 민중이 들고 일어나 근본적인 개조를 알게 하였으나 결국 은의 탕왕과 주의 무왕에게 이용당하였을 뿐이며 루이 16세가 도리를 벗어나자 프랑스 민중이 일어나 실질적인 개조를 했으나 마침내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 세 황제의 이른바 신성동맹에 유린당하였을 뿐이며 또 사리에 밝고 뛰어난 인사들이 자주 개조를 외친 일이 없지 않지만 배후에 권력이 없어서 또는 기존 권력이 강한 탓에 민중이 개조할 때를 맞아도 옛 것을 철폐한다는 자각이 없었기에 그 주장한 내용이 현실로 되지 못하고 단지 학설이나 이상에 그쳤을 뿐이다.

그러니까 개조는 옳은가 옳지 않은가? 옳다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그런데 이 문제를 따지기 전에 먼저 사회는 유동체인가 고정체인가? 유동체라면 진보적인가 퇴보적인가를 논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이를 역사를 통해 보면 수렵목축의 야수시대에서 차츰 문화시대로 나아갔으니 진보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변해가는 유동체이다. 그러므로 변천은 개조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며 진보는 개조가 옳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개조가 가능하지 못했다면 터키의 폭정 아래 ‘보류네우쓰’(편집자주-사람 이름으로 보이나 확인되지 않음)가 있지 못했을 것이고 로마가톨릭교의 전제 아래 ‘마틴 루터’가 있지 못했을 것이며 영국의 가혹한 징세 아래 ‘조지 워싱턴’이 있지 못했을 것이며 또 개조가 옳지 않았더라면 메이지 유신도, 중국의 혁명도, ‘에이브러햄 링컨’의 흑인노예 해방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손문의 개조가 없었다면 소수의 만주족 정부가 전복되었을 것은 물론이고 400주의 소유가 누구에게 돌아갔을 것인가. 또 4억만의 민중은 누구의 노예가 되었을 것인가. 영국일까, 프랑스일까, 일본일까, 독일일까, 미국일까, 러시아일까 알 수 없을 것이다. 영사재판권의 철폐를, 공무국에 의원 참가를 내세우며 학생들이 대동단결을, 상인들이 “보이콧”을 단행하며 신문이, 잡지가, 학교가,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또 전에 없이 파리강화회의 의석상에서 중국의 청년 외교관 구웨이준(顧維均)이 사자후를 토하는 등의 사태는 꿈도 꾸지 못할 사실이며 일본이 우라가(浦賀)의 관문을 닫아걸고 ‘페리’ 제독의 상륙을 거절하였다면, 바꿔 말하면 수구파의 양이론을 택하고 개화파의 개방주의를 버렸다면 입헌이니 정당이니 청일전쟁 러일전쟁 독일전쟁의 전승이니 하는 월계관을 쓰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인도와 미얀마, 베트남 같이 비참한 상태에 빠졌을른지 알 수 없으며 ‘링컨’의 흑인노예 해방이 없었다면 인신매매하는 야만적인 행동은 세계에 차고 넘치고 노동자를 짐승과 마찬가지로 여기는 황금의 폭군이 우주를 쥐고 흔들었을 것이며 미국의 인도주의를 외친 ‘윌슨 대통령’의 14개조는 봄철의 꿈처럼 덧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개조가 옳음은 물론이고 개조가 가능함도 굳게 믿을 것이니 따라서 옳은 개조를 마땅히 수행할 것이오 가능한 개조를 당연히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이에 힘을 다하며 피를 말리며 땀을 흘려 분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개조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권력이 개조한 것이지 이상적인 개조가 아니며 피상적인 개조이고 내면적인 개조가 아니며 일부의 개조일 뿐 전체적인 개조가 아니다. 어떻게 쟁탈과 살벌함이 멈추고 시기가, 침략이 그칠 것인가. 전과 다름없이 남을 속임으로써 정의를 삼고 폭력으로 인도를 삼았을 뿐이다. 이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구미각국의 상태로 살펴보면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가 서로 각축해 편한 날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열강대국들도 서로 반목하고 서로 적대시해 혹은 경제문제로, 혹은 식민지문제로, 혹은 해상권문제로, 혹은 역사상의 감정으로 갑은 을을, 을은 병을, 병은 정을 질투하고 배척해 기회만 있으면, 능력만 갖추면 나는 너를 먹겠다, 너는 나를 삼키겠다 하면서 서로 이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아 산업도 무장을 위해, 무역도 무장을 위해, 교육도 군대식으로, 조세도 군비 때문에, 사상도 군국적으로 모든 일이 군국화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남을 정복하는 것이 정의이고 나를 살찌우는 것이 인도(人道)였다. 안녕은 경찰에만 있고 질서는 군대에만 있으며 평화는 무장에만 있었다. 국민은 비참한 노역을 하든지, 가혹한 희생을 하든지,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없이 길에서 소리 높여 울든지, 배움도 직업도 없이 돌아갈 고향도 없든지 전혀 묻지 않고 다만 소수 특권계급이 허영과 야욕만 가득하면 기쁨이 있었고 쾌락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다. 이 어찌 개조하지 않을 사실이며 개조하지 않을 때인 것인가. 어지러움이 극심하면 바로잡음을 생각하고 막힘이 지나치면 해로움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진리의 이치이다. 이번에 국제연맹이 어떻게 우연하게 생겼겠는가.

큰 비가 내리려면 천둥과 번개가 치고 큰 바람이 불려고 하면 음산한 비가 내리는 법인데 어떻게 인류에게 새 생명을 줄 국제연맹이 출현할 때 큰 바람과 구름이 없을 것인가. 무력으로 생산한 재화와 무력으로 성장한 인물은 말끔하게 치우고 사랑으로 산출한 재물과 사랑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만듦으로써 산뜻한 토대 위에 신성한 새 문화를 건설하기 위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제1차 세계대전을 지낸 뒤에 서로 싸운 각국의 통계(숫자는 생략)를 보면 중국 두보의 병차행(兵車行)과 이화의 적전장문(吊戰場文)을 읊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라. 화려하던 거리에 시든 풀이 나 있고 장엄하던 저택에 잿가루가 날리니 자식을 잃고 아파하는 사람이며 아비가 죽어 우는 사람이며 자식도 아비도 아내도 남편도 없어 소리 내 울 사람도 아파할 사람도 없는 사람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우니 서러운 귀신의 울음소리가 어찌 신을 움직이지 않았겠는가.

이때를 맞아 미국 대통령 ‘윌슨’ 씨가 14개조를 내놓고 파리에 도착해 시민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고 자기의 사명은 “미국 정부의 대표가 아니고 인류의 대표이다”라고 큰소리치며 열국 대표에게 14개조의 연맹안을 제출하고 의화단 사건의 배상금을 되돌려주며 필리핀의 독립을 다루고 발칸의 위임통치를 거부하고 공정한 입지에서 국제연맹의 정신과 경륜을 간곡하게 설명했지만 그러나 무합병 무배상에 대한 프랑스 클레망소 총리-이탈리아 오를란도 총리의 완강한 반대와 군비제한에 대한 전승국들의 이의에 맞닥뜨려 마침내 국제연맹의 핵심이 뭉개져 허수아비 같은 연맹조직이 생겨났던 것이니 따라서 윌슨 씨의 노력과 열변은 오직 고리대금업자에게 복음전도가 되었을 뿐이다. 이 어찌 인류를 위해 또 윌슨 씨를 위해 근심과 탄식이 없겠는가.

그러나 윌슨 씨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고 엄연히 존재했으며 또 인류가 국제연맹에 대한 깨달음이 날로 커져 대세의 방향은 이미 결판났거니와 윌슨 씨가 국제연맹의 규약을 제출한 시기와 이를 토의한 각국 대표들을 보건대 14개조가 철저하게 통과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국제연맹 규약을 제출한 때는 비록 휴전은 했더라도 전쟁의 분위기는 교전할 때보다도 왕성해 만세소리와 개선가에 민중이 열렬히 반응하고 전쟁의 공로를 서로 자랑하니 적개심이 커지고 회의에 나온 대표들은 전쟁 공훈으로 입신하고 전공으로 이름을 날려 특별히 영예로운 지위를 얻은 이들이었다. 그러므로 민중이 국제연맹에 대해 냉담했고 대표들이 연맹에 대한 이해(또는 이해했더라도 자기의 지위 때문에 연맹에 찬동하지 않았다)가 없었으므로 고독한 윌슨 대통령은 힘을 다했으나 자신의 이상을 철저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1919년은 이미 과거이다. 개선문에 고왔던 곳도 없어지고 하늘에 빛나던 불꽃도 없어지고 열광적인 만세소리도, 적을 향한 개선의 노래도 모두 없어지고, 쓸쓸히 텅 빈 저택에 외롭게 홀로 앉아 그림자를 바라보며 유유하게 묵상하는 1920년이 왔다. 아― 그 사람의 아비는, 그 이의 형은, 그 이의 아내는, 그 이의 자식은 어디로 갔으며 그 가족은, 그 친척은, 그 친구는 어디에 있어 얘기할 상대가 없고 아파도 위문이 없고 산보할 동료가 없고 찾아가도 주인이 없고 의논할 동지가 없고 저녁밥 짓는데 도움 줄 이가 없다. 아비를 위해 혼을 부르고 아내가 그리워 산에서 소리 내 울지만 다만 개 짖는 소리가 함께 할 뿐이고 어디에 물어볼지 아득하다. 아! 이게 무엇 때문인가, 무엇 때문인가. 그래, 그래.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

이에 ‘오를란도’ 총리를 내치고 ‘클레망소’ 총리의 대통령에 반대하고 독일 ‘에베르트’ 대통령이 거듭 나오게 하고 ‘레닌’의 소련 정부를 인정하고 옛 러시아 ‘콜차크’ 임시정부 수반을 무너뜨리고 옛 러시아의 ‘사조노프’ 장관을 내쫓고 영국 ‘로이드 조지’ 수상을 공격하며 국제연맹의 정신을 찬미하고 윌슨 씨의 선견지명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제연맹이 인류의 최고이상은 아니고 불완전한 현상으로부터 그 이상적 영역으로 향하는 큰 계단이다.

공자가 말씀하시되 덕이 유행되는 것이 파발마로 명을 전달하는 것보다 빠르다고 하시니 국가절대사상에 빠져들어 침략적 제국주의로 인도적 민주주의를 배척하고 군사를 앞세운 외교에, 자본과 산업군대식 교육을 찬미하며 정의의 외교와 노동 그리고 산업문화적 교육을 무시한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의 삼엄한 세례를 받은 인류가 비로소 평화를 교란하는 물질문명의 큰 결함을 발견하고 이에 평화를 보장할 정신문명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깨우치는 개조를 이끌어가는 대세의 흐름은 실로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