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1월 17일

권총강도?…안중근 본받으려던 임시정부 특무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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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동소문파출소 앞에서 권총이 불을 뿜었습니다. 경계근무 중이던 일본인 순사가 쓰러졌죠. 죽을힘을 다해 파출소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순사에게 총탄 6발이 더 쏟아졌습니다. 이때가 1926년 7월이었죠. 2개월 뒤 경기도 안성군의 이름난 부자 박승륙 집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박승륙의 맏아들이 총에 맞아 숨졌죠. 한 달 뒤에는 경기도 이천군 주재소와 면사무소가 습격당해 면서기 한 명이 사살됐습니다. 같은 달에 경성 수은동, 현재 묘동의 한 전당포에서 주인의 친형이 총상을 입어 즉사했죠. 3개월 사이에 4건의 총격사건이 연이어 일어난 겁니다. 공통점은 범인이 청년 같고 귀신같이 사라진 점이었죠. 경성과 경기도 일대가 발칵 뒤집혔고 무장경찰이 경계에 나서 마치 계엄령이 내려진 듯했습니다.

①일제 경찰에 붙잡힌 이수흥 ②6촌 형의 밀고로 붙잡힌 뒤 담요가 씌워진 채 압송되는 이수흥 ③경성 수운동 전당포를 습격한 유택수 ④이수흥의 친구로 독립운동의 뜻을 함께한 유남수


청년은 이천 출신의 스물한 살 이수흥이었습니다. 신분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만(駐滿)참의부 제2중대 특무정사였죠. 이 무렵 만주의 독립군 단체들은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 등으로 나뉘어 있었고 이중 참의부는 과거 의병계열이 주축이었습니다. 이수흥은 일찍이 일제의 심한 민족차별에 분개해 19세 때 혼자 만주로 가서 독립군에 합류했죠. 우연인지 그곳에서 예전 의병계열 의군부의 총장을 지낸 채상덕을 만나 그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채상덕은 이수흥의 아버지 이일영과 면암 최익현 휘하의 의병으로 인연을 맺었더랬죠. 이일영은 58세 때 늦둥이 이수흥을 낳았고요. 이수흥은 채상덕을 부친처럼 따랐고 채상덕은 이수흥을 신명무관중학교에 보내 독립군이 되도록 키웠습니다.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죠.

①이수흥이 1926년 7월 경성에 잠입한 뒤 일본인 순사에게 총격을 가한 동소문파출소 ②유택수가 습격한 경성 수운동 전당포에서 현지 조사를 하고 있는 일제 검경


1925년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쳤습니다. 참의부 최고지휘관을 비롯한 대원 60명이 만주 지안현 고마령에서 군사회의를 열었죠. 이수흥도 참석했죠. 첩보로 이를 파악한 일제가 급습해 이수흥 등 3명을 제외한 전원이 몰살당하는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이수흥도 다리에 부상을 입었죠.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이수흥에게 보고를 받은 채상덕은 이수흥이 완쾌되자 “안중근을 본받으라”며 권총 2정을 갖게 해줍니다. 훈련부족과 배신자 속출로 단체행동은 틀렸으니 개인행동을 하란 뜻이었죠. 채상덕 자신은 ‘내 부하가 다 죽었으니 나 혼자 무슨 면목으로 살겠느냐’며 기어이 음독 순국했고요. 스승이자 아버지 같던 채상덕의 피맺힌 유언에 따라 이수흥은 일제 고관 암살과 군자금 확보를 위해 만주를 떠납니다.

①일제 경찰이 경기도 이천군에서 체포한 이수흥 일행을 자동차에 태운 채로 나룻배에 실어 한강을 건너 경성으로 압송하고 있다. ②이수흥이 탄 차를 동아일보 사진기자 차량이 추격하며 사진을 찍었다. 동아일보는 총독부가 4대 총격사건의 보도를 금지한 상황에서도 지국망을 총동원해 취재를 해놓은 덕분에 보도금지가 풀린 1926년 11월 17일에 2개면 호외를 낼 수 있었다.


일단 이수흥은 조선총독부 급사로 일한다는 먼 친적이자 고향 친구인 유남수와 함께 암살을 실행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경성에 와보니 유남수는 이천으로 돌아갔다고 했죠. 허탈해진 이수흥은 그래도 고향에서 유남수를 만나고 그 형 유택수와 의기투합해 군자금 확보에 나섰습니다. 1926년 경기 일대의 4대 총격사건은 이들이 주도했죠. 전당포사건은 유택수가 맡았고 나머지는 이수흥이 앞장섰다고 일제는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 신출귀몰했던 거사는 6촌 형의 밀고로 끝이 나고 말았죠. 은신하던 이천의 6촌 형 집에서 붙잡혀 경성으로 압송되던 이수흥은 자신이 탄 차량을 따라붙는 동아일보 사진기자의 차를 보더니 빙긋 웃고는 머리를 끄덕여 인사했답니다. 그의 배포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겠죠.

①이수흥이 얼굴을 가린 용수를 쓴 채 1928년 6월 28일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②법정에 선 피고 중 맨 앞이 이수흥, 가운데가 유남수, 뒤가 유택수로 보인다. ③이수흥 일행의 재판을 보기 위해 방청권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④방청권을 받고 법정으로 들어가는 데도 줄을 서야 했다.


2년 뒤 재판에서 이수흥은 모든 일은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했습니다. 변호사에게 ‘택수, 남수 두 형제가 공연히 욕을 당하는 것이 실로 민망하’다며 적극 변호해 달랬죠. 하지만 이수흥 유택수는 사형, 유남수는 징역 2년형이었죠. 이수흥은 일체 상소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형선고에도 상소하지 않은 이는 허위 강우규 이수흥 3명뿐이라고 했죠. 결국 1929년 이수흥는 형장의 이슬이 됐죠. 다만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이수흥은 독립운동이나 자선을 많이 한 부잣집에도 군자금을 요구했죠. 사람을 해치기도 했고요. 앞길을 가로지른 일본 여인에게도 총을 쐈죠. 큰일 하려는데 불길하다면서요. 부친이 숨지자 열일 제쳐놓고 초상을 치렀습니다. 이성을 앞선 혈기와 유교적 세계관 탓이었다고 짐작해 봅니다.

기사입력일 : 2021년 12월 24일
畿內(기내)를 中心(중심)으로 續發(속발)한 拳銃事件(권총사건) 眞相(진상)
戒嚴狀態(계엄상태)의 三個月間(3개월간)
四大事件(4대사건)은 同根異枝(동근이지)
東小門(동소문)·安城(안성)·利川(이천)은 主犯(주범)이 專行(전행)
鐵甕城中(철옹성중)의 授恩洞(수은동)은 共犯(공범)이 獨行(독행)
만주로부터 평양을 것처 입경 즉시로 위선 동소문
경성을 떠나 안성 리천 등디로 제집 가치 돌아다녀
失色(실색)한 警察(경찰)과 總動員(총동원)의 裡面史(이면사)

事(사) 件(건) 當(당) 時(시)
로 부 터
解(해) 禁(금)
十七日(17일) 午前(오전)
揭(게) 載(재) 禁(금) 止(지)

지난 칠월 십일에 시내 동소문파출소(東小門派出所)를 습격한 사건이 잇슨 후부터는 시내를 중심으로 근긔디방(近畿地方) 일대(一帶)에 총소리가 끈칠 새 업시 이곳저곳에서 중대한 사건이 뒤를 이어 발생되야 일반은 젼젼긍긍하는 샹태로 지내는 한편으로 경찰당국에서는 귀신가치 출몰하는 범인이 누구인지 이런 사건이 발생된 때마다 팔방으로 활동을 하다가 얼마 젼에 범인의 단서를 어든 뒤로 즉시 경무당국으로부터 이 사건의 신문긔사 게재를 금지하고 활동을 하던 즁 사건의 진범인이 잡히게 되쟈 비로소 해금이 되엿슴으로 그동안 본사에서 됴사한 것을 종합하야 즁대사건의 젼말을 대강 보도하노라.

駐滿(주만) 參議部(참의부) 第二中隊(제2중대)
二十二歲(22세)의 李壽興(이수흥)
═授恩洞事件(수은동사건)은 利川(이천) 出生(출생)의 柳澤秀(유택수)═
◇지난 칠일부로 본보가 진작 보도한 범인◇
判明(판명)된 前後事件(전후사건)의 主犯(주범) 共犯(공범)

지난 칠월 십일 밤 열시반경에 경성시내 동소문(東小門)파출소를 습격하야 덕영(德永)순사를 저격한 것을 비롯하야 뒤를 이어 게속 발생하든 안성(安城)사건이며 리천사건이며 경성 수은동사건은 물샐 틈업시 느려 노흔 경게망을 이리 뚤코 저리 뚤으며 귀신가치 출몰하야 경긔도 내 이삼천 명의 경관이 잠을 자지 못하고 수색을 하며 조곰만 수상하거나 밤이 느저서 길을 가는 사람이 잇스면 게엄령을 실시한 것가치 엄중히 취조하엿스나 범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안코 복잡한 정보와 공연한 밀뎡의 보고만 꼬리가 달려 통의부원이니 정의단이니 해외 잇는 무슨 단톄이니 하야 조곰만 혐의가 잇스면 붓잡어다가 몃칠식 잠을 재우고 가택수색을 하야 경성에서만도 근 백명의 혐의자를 취조하엿섯스나 진범인은 그림자도 못 보든 중 본보가 지난 칠일부(七日附)로 진작 보도한 바와 가치 지난 륙일 오전에 리천경찰서에서 잡은 범인 세 명이 경긔 일대를 놀라게 하든 여러 가지 사건의 진범인인 것이 판명되엿는데 그 범인들의 주소 성명 직업은 아래와 갓더라.
▲本籍(본적) 京畿道(경기도) 利川郡(이천군) 邑內面(읍내면) 倉前里(창전리) 二二四(224)
▲現住(현주) 未定(미정) 大韓臨時政府(대한임시정부) 駐滿(주만) 參議部(참의부) 第二中隊(제2중대) 特務正士(특무정사)
李壽興(이수흥)(二二‧22)
一名(일명) 成檀(성단)、佐聖(좌성)
▲本籍(본적) 京城府(경성부) 靑葉町(청엽정) 二丁目(2정목)
▲現住(현주) 京畿道(경기도) 利川郡(이천군) 邑內面(읍내면) 中里(중리) 二三七(237)
柳(류) 澤(택) 秀(수)(二六‧26)
▲本籍(본적) 同上(동상)
▲現住(현주) 同上(동상)
無職(무직)(前‧전 朝鮮日報‧조선일보 利川支局‧이천지국 記者‧기자)
柳(류) 南(남) 秀(수)(二二‧22)

이와 가튼데 리수흥은 주범으로 대한림시정부 주만 참의부 뎨이중대 특무정사로 그곳 수령의 명령으로 『모젤』권총과 『부로우닁』식 권총 두 자루와 탄환 구백팔십발을 가지고 지난 오월에 국경을 넘어 리천에 드러와 류택수 류남수의 원조를 힘닙어 경긔일대의 권총사건 전부를 범행하엿는데 수은동 뎐당국 사건만은 류택수가 직접 한 것이 경찰의 취조로 판명되엿더라.

水陸警戒中(수륙경계중) 連發(연발)한 四大事件(4대사건) 梗槪(경개)
東小門事件(동소문사건)
□七月(7월) 十日(10일)□

이 사건은 지난 칠월 십일 밤 열시 오십분 경에 시내 동소문(東小門) 안 헤화동(惠化洞)에 권총 가진 청년 한명이 나타나서 동소문파출소(東小門派出所)를 습격하야 그 파출소 압헤서 감시를 하고 잇든 일본인 순사 덕영승차(德永勝次)(三五‧35)가 파출소로 쫏겨 들어가는 것을 추격하야 권총을 여덜 발이나 발사하야 여섯 군데의 중상을 당케 하고 경게 엄중한 틈을 타서 교묘히 자취를 감추어 버리여 한참 동안 경성 안이 뒤집히여진 사건이며

安城郡事件(안성군사건)
□九月(9월) 九日(9일)□

이 사건은 전긔 동소문파출소 습격사건이 돌발한지 꼭 두 달이고 하로가 더 되던 지난 구월 십일 밤 여덜시 경에 경긔도(京畿道) 안성군(安城郡) 읍내면(邑內面) 동리(東里) 사백팔십오번디 부호(富豪) 박승륙(朴承六)(七○‧70)의 집에 권총 가진 청년 두 명이 나타나 그 집 주인의 맛아들 박태병(朴泰秉)(五二‧52)에게 면회를 청하고 『군자금』을 청구하다가 응치 아니한다고 권총으로 전긔 박태병을 쏘아 죽이고 그와 동시에 그 집에서 일을 보는 김춘명(金春明)(四二‧42)까지 쏘아 중상을 식힌 후 그 청년들도 역시 어데로인지 귀신가치 자최를 감추어버려 한참 동안 잠잠하던 경긔 일대는 다시금 소란하게 되엿섯던 사건이며

利川郡事件(이천군사건)
□十月(10월) 二十日(20일)□

이 사건은 전긔 안성 부호 사살사건이 발생된 지 꼭 한달 열하로가 된 지난 십월 이십일 오후 세시 삼십분인 대나제(白晝‧백주)에 경긔도(京畿道) 리천군(利川郡) 백사면(柏沙面) 현방리(玄方里)에 권총을 가진 청년 한명이 나타나 먼저 그 동리에 잇는 현방리(玄方里) 경찰관주재소(警察官駐在所)를 습격하여 일본인 삼송순사부댱(森松巡査部長)을 밧그로 쪼고 그 다음으로 그 겻헤 잇는 현방리(玄方里)공립보통학교댱(公普校長‧공보교장) 정상(井上)의 처 화혜(花惠)(二九‧29)를 쏘아 중상을 당케한 후 그 길로 즉시 그 동리에 잇는 백사면사무소(柏沙面事務所)를 습격하야 사무소 안에 잇는 사람들을 쫏고 마츰 변소(便所)로부터 나오는 그 면서긔 송텬의(宋天義)(三四‧34)를 쏘아 한방에 즉사케 한 후 또 역시 그 청년도 귀신가치 자최를 감추어 버리여 근긔디방 일대는 물끌틋 야단을 하엿섯고 경긔 각 경찰은 수륙 각디에 경계망을 느리고 야단을 치든 사건이며

授恩洞事件(수은동사건)
□十月(10월) 卄五日(25일)□

이 사건은 전긔 리천군 현방리주재소와 면소를 습격한 사건이 돌발되자 근긔일대는 계엄상태(戒嚴狀態)로 텰옹성 가튼 경계망에 물샐 틈 업시 엄중한 경계 속에 겨우 닷새밧게 아니된 지난 십월 이십오일 저녁 일곱시 이십분 경에 시내에서도 가장 눈띄이는 수은동(授恩洞) 대로변(大路邊)에 권총 가진 청년 한명이 나타나 길가에 잇는 수은동(授恩洞) 일백오십구번디 뎐당포(典當舖) 대성호(大成號)를 습격하야 그 집 주인의 친형 전긔영(全基榮)(三五‧35)에게 운동자금을 청구하다가 듯지 안는다고 권총으로 전긔 전긔영을 쏘아 죽이고 또 역시 귀신 가치 자최를 감추어 댱안텬디(長安天地)를 물 끌틋 뒤집혀 노앗든 사건이다.

怱怱(총총)한 犯人(범인)에게
찬밥을 어더다 주어
幇助犯(방조범) 嚴大燮(엄대섭)

리수흥 류택수 류남수와 가치 리천군(利川郡) 백사면(柏沙面) 도립리(道立里)에 사는 엄대섭(嚴大爕)(四七‧47)도 경찰부로 잡혀왓는데 톄포되여 온 리유는 지난 십월 이십일에 리수흥이가 현방리주재소를 습격하고 면서긔를 사살한 후 화약냄새가 무럭무럭 나는 모젤권총을 손들고 리천읍으로 도라가다가 저녁 때에 전긔 엄대섭의 집에 이르러 밥을 청하매 엄대섭은 눈치를 아러채리고 밥을 지어줄 터이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엿스나 리수흥은 밥 짓기까지 기다릴 수 업다 하며 찬밥을 달라고 함으로 엄대섭은 동리 집에 가서 찬밥을 어더다 먹여 보내고도 경찰에 고발을 아니한 죄라고 하는데 엄대섭이가 맞춤 장에 갓다가 자긔 아들로부터 경찰이 잡으려 왓드란 말을 듯고 즉시 리천경찰서로 자수하엿다더라.

內剛(내강)한 柳南秀(유남수)
敏捷(민첩)한 柳澤秀(유택수)
◇두 형뎨의 부친은 서당 훈댱
大事(대사)에 加擔(가담)한 兄弟(형제)의 履歷(이력)

柳南秀(유남수)의 性行(성행)
공범자로 잡힌 류택수와 류남수는 두 형뎨로 그 아버지 류창륙(柳昌陸)(五三‧53)은 한학자로 지금 리천읍내에서 서당 훈장노릇을 하며 한편으로는 잡화상을 한다고 한다. 식구는 부모와 맛누의와 큰어머니를 합하야 여섯명인데 본래 경성부 청엽뎡(靑葉町) 이뎡목에서 살다가 대정 구년에 현주소인 리천군(利川郡) 읍내면(邑內面) 중리(中里) 이백삼십칠 번디에 이사하야 지금까지 사러오는데 동생 류남수는 리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정 십일년부터 대정 십삼년까지 조선총독부 식산국 급사를 다니다가 얼마동안 집에서 자습하고 대정 십오년 사월부터 동년 구월까지 조선일보 리천지국 긔자로 잇섯다고 하는데 리수흥과는 죽마고우로 특별히 친분이 잇서서 리수흥이 만주에 건너가서도 여러 번 나오라 권유를 바덧섯다고 한다. 것츠로 보면 극히 유순하여 보히지마는 속으로는 항상 민족운동에 찬성하여 왓섯는데 지난 칠월 리수흥이가 자긔집에 차저가 사정을 이야기하며 그는 리수흥에게 대하야 왜 좀 더 큰사람을 죽이지 안느냐는 질문까지 하엿다고 하는데 직접 권총사건을 범치는 안엇지마는 항상 리수흥의 행동에 편의를 도아주엇다고.

柳澤秀(유택수)의 素質(소질)
형 류택수는 동생만콤 사상이 깁지 못하나 몸이 날새서 범가치 날내다는 칭찬을 동리사람에게서 바덧다고 한다. 본래 일뎡한 직업이 업서오다가 작년 말부터 리천자동차부에서 일을 보아오든 바 이번 리수흥이 드러오자 리수흥과 그 동생 류남수의 간절한 권유를 밧어 ○○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안성사건에 리수흥이를 도와주엇고 수은동(授恩洞)뎐당국을 단독히 습격하엿다고 한다.

老父(노부)의 訃音(부음) 듯고
痛哭(통곡)하며 奔喪(분상)
팔십 로부의 부음을 들은 리수흥
상복을 입고 통곡하며 분상하여
朔風客窓(삭풍객창)의 一幕(일막) 悲劇(비극)

리수흥의 아버지 리일영(李日瑩)은 금년에 팔십 로옹으로 지금까지 수원군(水原郡) 양감면(楊甘面) 송산리(松山里) 매부 송범수(宋範壽)의 집에 의지하고 잇다가 세상근심과 육신상 고통에 고만 병이 되여 지난 십월 이십일 경에 세상을 떠낫는데 그도 또한 녯날 의병대장 최현익(崔鉉翼)의 부하이엇다고 한다. 리수흥은 그 아버지의 부고를 듯든 때는 그가 리천 현방리사건을 치루고 리천읍을 거처 안성군(安城郡) 일죽면(一竹面) 화곡리(和谷里) 매부 강긍주의 집에 가든 십월 이십삼일 경이엇는데 강긍주가 리수흥에게 그 부고를 뎐하자 그는 업드려 땅을 치며 불효막대하다는 죄를 하늘에 호소하고 즉시 상복을 지어 입은 후에는 강긍주를 재촉하야 수원으로 가서 일헤 동안을 묵으면서 선산에 안장한 후에는 경성으로 드러왓든 것이라더라.

 『銃(총)만 잇섯더면』
대담한 범인의 말씨에
落膽(낙담)한 取調刑事(취조형사)

리수흥은 엇지도 침착하고 대담한지 리천서 취조를 바들 때에도 취조하는 형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일이 잇섯는데 그는 지난 음력 팔월 추석에 권총을 안 가지고 리천 길로 다니다가 리영근(李永根)이라는 형사의 취조를 밧은 일이 잇슨 것을 긔억하여 두엇다가 리영근이가 경찰에서 취조코저 할 때에 대담히 『그때 만일 내게 총만 잇섯더면 너는 죽엇스리라』는 말을 하여 리형사를 놀래게 한 일도 잇섯다더라.

六十(육십) 老翁(노옹)의 貴童子(귀동자)로
十六歲(16세)에 入山修道(입산수도)
서울서 일본사람의 고용살이에 설음
십구셰 때 만주 가서 의군총재의 부하
士官學校(사관학교)를 昨年(작년)에 卒業(졸업)

진범인으로 확뎡된 리수흥(李壽興)은 엇던 사람인고. 본래 리천(利川) 사는 연안(延安) 리씨 리일영(李日瑩)(八○‧80)(號‧호 雪山‧설산)의 맛아들로 량반의 집인데 그 아버지 리일영이가 늣도록 자손이 업스며 쉰한살 되든 뎡축(丁丑)년에 열아홉살 되는 처녀에게 장가를 들어 칠년 만에 리수흥(李壽興)이를 나어 애지중지하여 길르면서 리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케 하야 이년급까지 수여케 한 후 열한살 되든 을묘년(乙卯年)에 부친이 젊은 어머니에게 빠지어 삼십여석 추수하든 뎐장도 파러가지고 서울로 이사하야 시내 방산뎡(芳山町)에 집을 잡고 살면서 일년 동안 어의동(於義洞)공립보통학교에 통학하든 바 그 젊은 어머니는 필경 늙은 남편을 버리고 어듸로 가버리여 리수흥은 그 아버지를 수원군(水原郡)  양감면(楊甘面) 송산리(松山里)에 사는 매부 송범수(宋範壽)의 집에 의지하게 하고 각처로 도라다니다가 경신년(庚申年)에 리천군 백사면(柏沙面) 원적산(圓寂山) 령원암(靈源庵)에 드러가 이년 동안 중노릇을 하엿는데 열일곱살 되든 해에 아버지를 안성군(安城郡) 일죽면(一竹面) 화곡리(化谷里) 매부 강긍주(姜兢周) 집에 의탁하게 하고 리수흥은 열일곱살 되는 해에 홀로 경성에 올라와 대화뎡(大和町) 안등사진통신사(安藤寫眞通信社)에 고용사리로 드러가 일을 하든 중 그 주인이 조선사람 차별을 넘어 심히 하는 것에 분개하야 자유를 찾는데는 ○○을 하여야 된다는 구든 결심을 하고 ○○운동에 몸을 밧치리라고 맹서한 후 지금부터 사년 전 열아홉살 되든 해 봄에 경성을 출발하야 도보로 만주에 가서 만주 관뎐현(寬甸縣)에 이르럿섯다고 한다. 관뎐현에 이르러 만주(駐滿) 참의부(參議務) 뎨일중대(第一中隊) 부사(副士) 금룡보 김모(金某)의 소개로 의군부(義軍府) 총재(總裁) 채상덕(蔡相德)을 맛낫는데 그의 주선으로 길림성(吉林省)에 잇는 김좌진(金佐鎭)의 사관양성학교에 입학하야 작년에 졸업하고 주만 참의부 뎨이중대 특무정사(特務正士))에 임명되야 채상덕의 부하가 되엿다가 채상덕의 명령을 밧어 가지고 중대장의 허가를 어더 가지고 음력 지난 오월에 『부로우닁』권총과 『모젤』권총을 가지고 대관○○을 목뎍하고 드러오게 되엿다고 한다.

入京(입경)하든 途中(도중)
平山(평산)서도 一發(일발)
로자 엇고저 중로에서도 한 방
실패를 당하고 텰로길로 도망
平壤(평양) 떠나 黃海道(황해도) 山路(산로)

경찰에서 조사한 바에 의지하면 리수흥(李壽興)이가 평양을 떠나 서울을 향하든 칠월 륙일 경에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안성면(安城面) 팔첨리(撥站里) 부근을 통행하다가 송뎡리(松亭里) 근방에서 엇던 크다란 집을 발견하고 려비를 엇고저 그 집을 차저 드러가 주인을 차저보고 독립단원인데 오백원만 내여 노라고 요구하얏더니 그 집 주인은 남의 집 산직이엇슴으로 목뎍을 달치 못하고 그 집 아들의 인도를 바더 그 부근 함성호(咸聖鎬) 집에 가서 주인의 일홈을 련해 불러서 대문을 열게 하고는 열자마자 안으로 드러가 주인과 면회를 청하엿더니 뒷문으로 다러남으로 위협하는 의미로 한 방을 쏘고 텰도 선로를 밟으면서 경성시내로 드러왓다더라.

경기도를 중심으로 연이어 발생한 권총사건 진상
계엄 상태의 3개월 간
4대 사건은 한 뿌리의 다른 가지
동소문·안성·이천은 주범이 도맡아 범행
철옹성 속 수은동은 공범이 홀로 범행
만주에서부터 평양을 거쳐 경성 들어오자마자 동소문
경성을 떠나 안성 이천 등지로 제집 같이 돌아다녀
낯빛이 질린 경찰과 총동원의 속사정

사건당시로부터
게재 금지
17일 오전 해제

지난 7월 10일에 시내 동소문파출소를 습격한 사건이 일어난 뒤부터는 시내를 중심으로 근기지방 일대에 총소리가 끊어질 사이 없이 이곳저곳에서 중대한 사건이 뒤를 이어 발생하여 일반인들은 전전긍긍하는 상태로 지내왔다. 한편 경찰당국에서는 귀신같이 출몰하는 범인이 누구인지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팔방으로 활동을 하다가 얼마 전에 범인의 단서를 얻은 뒤로 즉시 경무당국을 통해 이 사건의 신문기사 게재를 금지하고 활동을 하던 중 사건의 진범인이 잡히게 되자 비로소 해제가 되었으므로 그동안 본사에서 조사한 내용을 포함하여 중대사건의 전말을 대략 보도한다.

만주 참의부 제2중대
22세의 이수흥
═수은동사건은 이천 출생의 유택수═
◇지난 7일 현재 본보가 이미 보도한 범인◇
판명된 전후사건의 주범과 공범

지난 7월 10일 밤 10시반 경에 경성시내 동소문파출소를 습격해 도쿠나가 순사를 저격한 것을 비롯해 뒤를 이어 계속 발생한 안성사건이며 이천사건이며 경성 수은동사건은 물샐 틈 없이 늘여놓은 경계망을 이리 뚫고 저리 뚫으며 귀신같이 출몰해 경기도 내 2000, 3000명의 경관은 잠을 자지 못하고 수색을 하며 조금만 수상하거나 늦은 밤에 길을 가는 사람이 있으면 계엄령을 실시한 것같이 엄중히 취조하였다. 그러나 범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복잡한 정보와 공연한 밀정의 보고만 꼬리를 이어 통의부원이니 정의단이니 해외 있는 무슨 단체니 해서 조금만 혐의가 있으면 붙잡아다가 며칠씩 잠을 재우고 가택수색을 해 경성에서만도 근 100명의 혐의자를 취조하였으나 진짜 범인은 그림자도 못 보았다. 그러던 중 본보가 지난 7일부로 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지난 6일 오전에 이천경찰서에서 잡은 범인 3명이 경기 일대를 놀라게 했던 여러 가지 사건의 진범인인 것이 판명되었는데 그 범인들의 주소 성명 직업은 아래와 같더라.

▲본적 경기도 이천군 읍내면 창전리 224
▲현주 미정 대한임시정부 주만참의부 제2중대 특무정사
이수흥(22)
일명 성단, 좌성

▲본적 경성부 청엽정 2정목
▲현주 경기도 이천군 읍내면 중리 237
유택수(26)

▲본적 상동
▲현주 상동
무직(전 조선일보 이천지국 기자)
유남수(22)

이와 같으며 이수흥은 주범으로 대한임시정부 주만참의부 제2중대 특무정사로 그곳 지도자의 명령으로 모젤권총과 브로우닝식 권총 두 자루와 총알 980발을 가지고 지난 5월에 국경에 넘어 이천에 들어왔다. 유택수 유남수의 지원을 받아 경기 일대의 권총사건 모두를 범행했고 수은동 전당포 사건만은 유택수가 직접 한 것이 경찰 조사로 밝혀졌다.

수륙 경계 중 연발한 4대 사건의 줄거리
동소문사건
□7월 10일□

지난 7월 10일 밤 50분 경에 시내 동소문 안 혜화동에 권총 가진 청년 한 명이 나타나서 동소문파출소를 습격해 그 파출소 앞에서 경계업무를 하고 있던 일본인 순사 도쿠나가 가쓰지(35)가 파출소 안으로 피신하는 것을 좇아가 권총을 8발이나 발사해 6군데 중상을 입히고 경계가 엄중한 데도 교묘히 자취를 감춰버려 한참 동안 경성 안이 뒤집혔던 사건이다.

안성군사건
□9월 9일□
앞서 동소문파출소 습격사건이 일어난 지 꼭 2개월과 하루가 더 지난 9월 10일 밤 8시 경에 경기도 안성군 읍내면 동리 485번지 부호 박승륙(70)의 집에 권총 가진 청년 2명이 나타나 그 집 주인의 맏아들 박태병(52)에게 면회를 요구하고 ‘군자금’을 달라고 했으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권총으로 박태병을 쏘아 죽이고 그와 동시에 그 집에서 일을 보는 김춘명(42)까지 쏴 중상을 입힌 뒤 역시 어디로인지 귀신같이 자취를 감춰버려 한참 동안 잠잠하던 경기 일대가 다시 소란하게 되었던 사건이다.

이천군사건
□10월 20일□

앞서 안성 부호 사살사건이 일어난 지 꼭 1개월 11일이 된 지난 10월 20일 오후 3시 30분인 대낮에 경기도 이천군 백사면 현방리에 권총을 가진 청년 한 명이 나타나 먼저 그 동네에 있는 현방리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해 일본인 모리마쓰 순사부장을 밖으로 쫓나내고 뒤이어 곁에 있던 현방리공립보통학교장 이노우에의 아내인 하나에(29)를 쏴 중상을 입힌 뒤 그 길로 곧장 그 동네에 있는 백사면사무소를 덮쳐 사무소 안에 있던 사람들을 내쫓고 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는 면서기 송천의(34)를 쏴 한 방에 즉사시킨 뒤 역시 귀신같이 자취를 감춰버려 근기지방 일대는 물 끓듯 떠들썩하였고 경기 각 경찰은 수륙 각지에 경계망을 펼치고 법석을 떨었던 사건이다.

수은동사건
□10월 25일□

앞서 이천군 현방리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한 사건이 일어나자 근기일대는 계엄상태로 철통 같은 경계망에 물샐 틈 없이 엄중한 경계 속에 겨우 5일밖에 안 된 지난 10월 25일 저녁 7시 20분 경에 시내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수은동 큰길 가에 권총 가진 청년 한 명이 나타나 길가에 있는 수은동 159번지 전당포 대성호를 덮쳐 그 집 주인의 친형 전기영(35)에게 군자금을 달라고 했으나 듣지 않는다고 권총으로 전기영을 쏴 죽이고 역시 귀신같이 자취를 감춰 서울천지를 물 끓듯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다.

서두른 범인에게
찬밥을 얻어줘
방조범 엄대섭

이수흥 유택수 유남수와 같이 이천군 백사면 도립리에 사는 엄대섭(47)도 경찰부로 붙잡혀왔다. 체포된 이유는 지난 10월 20일에 이수흥이 현방리주재소를 습격하고 면서기를 사살한 뒤 화약냄새가 무럭무럭 나는 모젤권총을 손에 들고 이천읍으로 돌아다니다가 저녁 때에 엄대섭의 집에 닿아 밥을 요구하자 엄대섭은 눈치를 알아차리고 밥을 지어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수흥은 밥 짓기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찬밥을 달라고 해 엄대섭은 동네 집에 가서 찬밥을 얻어다 먹여 보내고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은 죄라고 한다. 엄대섭은 마침 장에 갔다가 자기 아들한테 경찰이 잡으러 왔다는 말을 듣고 즉시 이천경찰서에 자수했다.

마음 굳은 유남수
몸이 날랜 유택수
◇두 형제의 부친은 서당 훈장
큰 일에 가담한 형제의 이력

유남수의 됨됨이와 행실
공범으로 잡힌 유택수와 유남수는 두 형제이고 아버지 유창륙(53)은 한학자로 현재 이천읍내에서 서당 훈장노릇을 하며 한편으로는 잡화상을 한다고 알려졌다. 식구는 부모와 큰누나, 큰어머니를 합쳐 6명이며 본래 경성부 청엽정 2정목에서 살다가 1920년에 현주소인 이천군 읍내면 중리 237번지로 이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동생 유남수는 이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2년부터 1924년까지 조선총독부 식산국 급사를 하다가 얼마동안 집에서 자습하고 1926년 4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조선일보 이천지국 기자로 있었다고 한다. 이수흥과는 죽마고우로 특별히 친분이 있어서 이수흥이 만주로 건너가서도 여러 번 나오라고 권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 보면 매우 유순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민족운동에 찬성해 왔었고 지난 7월 이수흥이가 자기 집에 찾아와 사정을 말하자 그는 이수흥에게 왜 좀 더 거물을 죽이지 않느냐는 질문까지 했다고 한다. 직접 권총사건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항상 이수흥의 행동에 편의를 돌봐주었다고.

유택수의 소질
형 유택수는 동생만큼 사상이 깊지는 못하지만 몸이 날쌔서 범같이 날래다는 칭찬을 동네 사람들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본래 일정한 직업이 없다가 작년 말부터 이천자동차부에서 일을 보아오던 중 이번에 이수흥이 들어오자 이수흥과 동생 유남수의 간절한 권유를 받아 ○○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안성사건에 이수흥을 도와주었고 수은동 전당포를 혼자 습격했다고 한다.

늙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통곡하며 달려가 초상 치러
팔십 부친의 부음을 들은 이수흥
상복을 입고 통곡하며 달려가 초상
북풍 나그네 창가의 일막 비극

이수흥의 아버지 이일영은 올해 80 노인으로 지금까지 수원군 양감면 송산리 매부 송범수의 집에 의지하고 있다가 세상근심과 몸의 고통으로 그만 병이 들어 지난 10월 20일 경에 세상을 떠났다. 그도 또한 옛날 의병대장 최현익의 부하였다고 한다. 이수흥이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던 때는 이천 현방리사건을 치르고 이천읍을 거쳐 안성군 일죽면 화곡리 매부 강긍주의 집에 갔던 10월 23일 경이었으며 강긍주가 이수흥에게 부고를 전하자 엎드려 땅을 치며 불효막심하다는 죄를 하늘에 호소하고 즉시 상복을 지어 입은 뒤 강긍주를 재촉해 수원으로 가서 7일 동안을 묵으며 선산에 안장한 뒤 경성으로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총만 있었다면”
대담한 범인의 말투에
낙담한 취조 형사

이수흥은 어찌나 침착하고 대담한지 이천서 취조를 받을 때에도 취조하는 형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지난 음력 8월 추석에 권총을 지니지 않고 이천 길로 다니다가 이영근이라는 형사의 조사를 받은 일이 있던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영근이가 경찰에서 조사하려고 할 때에 대담하게도 “그때 만일 내게 총만 있었더라면 너는 죽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해 이 형사를 놀라게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육십 노인의 늦둥이로
열여섯 살에 입산 수도
서울서는 일본인의 고용살이로 설움
열아홉에 만주 가서 의군총재 부하
사관학교를 작년에 졸업

진범으로 확인된 이수흥은 어떠한 사람인가. 본래 이천 사는 연안이씨 이일영(80·호 설산)의 맏아들로 양반의 집인데 아버지 이일영이 늦도록 자손이 없어 51세 되던 정축년에 열아홉 먹은 처녀에게 장가를 들어 7년 만에 이수흥을 낳았다. 애지중지 기르면서 이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시켜 2학년까지 마치게 한 뒤 열한 살 되던 을묘년에 부친이 젊은 어머니의 꼬임에 빠져 30여 석 추수하던 논밭도 팔아가지고 서울로 이사와 시내 방산정에 집을 얻어 살면서 1년 동안 어의동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젊은 어머니는 결국 늙은 남편을 버리고 어디로 가버려 이수흥은 아버지를 수원군 양감면 송산리에 사는 매부 송범수 집에 맡겨 놓고 각지로 돌아다니다가 경신년에 이천군 백산면 원적산 영원암에 들어가 2년 동안 중노릇을 했다. 17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안성군 일죽면 화곡리 매부 강긍주 집에 얹혀 살게 하고 이수흥은 혼자 경성으로 올라와 대화정 안도사진통신사에 고용살이로 들어가 일을 하던 중 주인이 조선사람을 너무 심하게 차별하는 것에 분개해 자유를 찾으려면 ○○을 해야 된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운동에 몸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뒤 지금부터 4년 전 19세 되던 해 봄에 경성을 출발해 걸어서 만주로 가서 만주 콴덴현에 도착했다고 한다. 콴덴현에서 만주 참의부 제1중대 부사 금룡보 김모의 소개로 의군부 총재 채상덕을 만났고 그의 주선으로 지린성에 있는 김좌진의 사관양성학교에 입학해 작년에 졸업하고 주만 참의부 제2중대 특무정사에 임명돼 채상덕의 부하가 됐다가 채상덕의 명령을 받아가지고 중대장의 허가를 얻어 지난 음력 5월에 브로우닝 권총과 모젤 권총을 지닌 채 거물○○을 노리고 잠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입경하던 도중
평산에서도 한 발
노자 얻으려고 오다가 한 방
실패하고 철도길로 도망
평양 떠나 황해도 산길로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수흥이 평양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7월 6일 경에 황해도 평산군 안성면 팔첨리 부근을 지나다가 송정리 근방에서 어떤 큰 집을 발견하고 여비를 얻으려고 그 집을 찾아들어가 주인을 불러 독립단원인데 500원만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집 주인은 남의 집 산지기였으므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 집 아들의 안내를 받아 부근 함성호 집에 가서 주인 이름을 연달아 불러 대문을 열게 하고는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가 주인을 만나겠다고 요청했더니 뒷문으로 달아나므로 위협하는 뜻으로 한 방을 소고 철도 선로를 밟으면서 경성시내로 들어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