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08월 22일

수십 년만의 가뭄에 굶주린 농민, 동포 말고 누가 도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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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 할 때부터 불길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았거든요. 1924년 이야기입니다. 경상북도에서는 벌써 모내기가 끝났을 7월에도 실적이 70%가 안 됐죠. 곡창이었던 호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주에서는 4월 이후 내내 가물어 모내기 한 논이 예년의 10%에 그쳤죠. 전북평야는 절반 이상이 백사장으로 변한 상태였습니다. 마실 물까지 부족했죠. 어디를 가나 농민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공포가 어려 있었습니다. 결국 가뭄은 수십 년만의 한재(旱災)가 됐습니다. 정도와 범위 모두 가공할 수준이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충 벼멸구가 기승을 부리고 동남풍까지 불어 남은 벼까지 말려 죽였습니다. 논바닥이 섭씨 54도를 넘기도 했죠. 한재에 충재(蟲災)와 풍재(風災)가 겹쳤던 겁니다. 황해도에는 7월 말에 물난리까지 났죠. 좁은 땅에 한재와 수재(水災)가 이어지는 총체적 재난상황이었죠.

농민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하고 타들어가는 벼를 바라보며 눈물 흘렸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우제뿐이었습니다. 남부 일부지방에서는 무덤을 파헤쳤죠. 가뭄이 심한 이유는 명산에 묘를 썼다는 미신 탓이었습니다. 얼마나 애가 탔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광주에서는 이런 부인들을 막으려던 일제 순사들이 ‘백성이 아사지경에 이르면 관리라고 좋을 것이 무엇이냐’고 따지자 멈칫하기도 했죠. 가을이 되면서 쌀이 귀해져 쌀값이 폭등했습니다. 무려 30% 넘게 뛴 곳도 있었죠. 그때는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고 좁쌀을 만주에서 들여왔습니다. 쌀값이 치솟자 좁쌀가격도 급등했죠. 질경이 부들 고구마줄기나 소나무껍질로 연명하는 이들이 늘었습니다. 말 그대로 초근목피였죠. 거지들이 넘쳐나고 봇짐을 싸들고 방황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가뭄 이재민만 수백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됐을 정도였죠.


호남에서는 학교를 그만두거나 도시락 없이 오는 학생이 속출했습니다. 한 보통학교에서는 전교생 867명 중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은 203명뿐이었죠. 집에 가서 먹고 오겠다는 학생 중 다수는 풀뿌리 밥이 창피하거나 굶는다고 말하기 싫어서 그랬습니다. 먹지 못하니 한창 뛰어놀 학생들이 교실에서 꼬박꼬박 졸았죠.

동아일보는 7월 27일자 사설에서 ‘조선 안에는 상당한 구제기관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실태를 조사해 곡물의 준비, 곡가의 조절, 공과의 면제 등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총독부는 ‘부업 장려’니 ‘산림 양성’이니 한가한 소리만 했죠. 동아일보는 8월 27일자 사설에 ‘오직 바라는 것은 민중이 서로 애호하는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것이 계기였을까요? 9월 24일 조선기근구제회가 창립됐습니다. 3000여 각종 단체에 통지서를 보내 성금을 요청했죠. 특이한 점은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참여했던 점이었습니다. 임원 25명의 절반이 넘었죠.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연합체라는 점에서 기근구제회는 신간회의 선구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경성의 한 처녀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치마 솜바지 토시 귀이개 30전이 든 보따리를 건넸고 한 보통학교 학생들은 코 묻은 돈을 아껴 22원40전을 모아 보냈죠. 황해도 학생들은 콩밭에서 주운 콩을 팔아 만든 4원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도 유학생을 중심으로 구제회를 만들고 200원을 걷어 송금했죠. 액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 동포애가 넘쳐났습니다.

동아일보와 시대일보 조선일보도 알림을 공동 게재하고 관련 기사를 적극 실었죠. 동아일보는 기자 국기열을 호남에 파견해 생생한 르포를 싣기도 했습니다. 배달원들은 기근구제회 선전문을 무료로 배달하고 지국 사무실은 지역 기근구제회의 거점이 됐죠. 하지만 일제는 대구에서 열려던 기근참상 연설회를 ‘불안을 준다’는 이유로 금지하고 보통학교 학생들이 배포하던 선전문을 압수하는가 하면 도쿄에서 개최한 기근구제 강연회를 중간에 해산시켰습니다. 기근구제회를 통해 우리 민족이 다시 뭉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겠죠.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4월 13일
旱災(한재)、虫災(충재)、風災(풍재)
수재 후 한재로 첫숨을 죽이고
츙재와 풍재가 뿌리까지 끈어
全國(전국)을 風靡(풍미)한 天災(천재) 續報(속보)
느진 봄철까지는 전조선을 통하야 근년에 드문 풍작이라 하야 애오라지 땅 속으로 생기는 곡식과 푸성귀에 목숨을 붓친 조선의 상하 인심은 다소의 희망을 부치고 하늘이 아직까지 조선을 죽이지 아니하는 줄로 밋고 잇든바 천만 뜻밧게 남도의 한재가 위선 한숨을 꺽고 뒤를 이어 북도의 수재가 남은 혼을 더욱 놀래이자 무심한 텬재는 조금도 꺼림업시 다시 남도에 수재의 독수를 버리고 북도에 한재의 불길을 더지며 한칭 나아가 전국뎍으로 한재와 충재에 무서운 풍재까지 겸하야 바야흐로 조선 텬디에 암담한 살풍경을 이르키어 각디로부터 이르는 소식은 하나라도 놀라지 아닐 것이 업는데 하늘의 솜씨라 인력으로는 하는 수 업거니와 이가튼 재변이 얼마나 계속되며 이로써 생기는 모든 죄악과 비극이 엇더케 벌어질는지 위선 각디의 소식을 이르는대로 충실히 보도한다.

豊年(풍년)은 一場幻夢(일장환몽)
인졔는 비가 와도 쓸데업서
평남 숙천(肅川)디방에는 지난달 이십일 경에 비가 와서 모내기를 마친 뒤에는 대풍이라고 일반은 즐겨하더니 그것은 일장의 춘몽으로 이래 한 달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아니하야 논바닥이 터지고 곡식이 점점 타바려 일반농가는 눈물로 지내는데 이제로부터 삼사일 안에 비가 오지 아니하면 금년 농사는 전부 업서지게 되얏스며 설혹 비가 온다 하여도 상당한 결실을 보기는 틀렷다더라.(숙천)

푸성귀도 全滅(전멸)
씨를 뿌려도 나지 안어
충남디방(忠南地方)에는 한 달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아니하야 전답은 통틀어 물긔운이 업고 게다가 해충까지 발생되야 여간 물긔운이 잇는 논이라도 버러지로 인하야 모다 죽어가며 채소밧헤는 씨를 심어도 나지 아니하야 푸성귀도 구경할 수 업게 되얏는데 이후 일주일만 더 감을면 아주 절망이라고 인심이 여간 흉흉치 안타더라.(공주)

旱災(한재)로 懲役(징역)
산소를 판 사람
경상북도(慶北) 경주군(慶州郡) 강서면(江西面) 산대리(山垈里) 동민 수백명은 지난 칠월 십오일 가물이 한참 심할 때 그곳 무릉산(武陵山) 텬제단에 가서 그곳에 밀장한 산소를 팟다가 주모자로 검거된 다섯 사람은 이달 십사일에 대구(大邱)다방법원 경주지텽에서 리화혁(李華赫)、리만록(李萬菉)、량인은 징역 팔개월 박춘봉(朴春逢)、리긔생(李起生)、리종호(李鍾浩) 삼인은 각각 징역 륙개월의 언도를 밧엇는데 피고들은 다 이것을 불복하고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하엿다더라.(포항)

牛價(우가)까지 激落(격락)
소 먹일 풀도 말러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에는 지난달 이십이일에 비가 오고는 이래 한 달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아니하야 마른 땅에 심은 콩 팟과 기장 조 등속은 모다 말라 죽고 면화도 대흉년인데 이후 열흘만 더 가물면 전부가 다 말을 모양이라 하며 소를 먹일 폴도 넉넉지 못하야 소 한머리의 갑도 벌서 십원이나 떨어젓다더라.(중화)

田穀(전곡) 全滅(전멸)
벼도 졈점 말러
함남(咸南) 안변(安邊)디방은 지난달 이십팔일 이후 이달 륙일에 비가 오는 듯하다가 그치고 십구일부터 약간의 비가 나리기는 하얏스나 지금 상태로는 아모 효험이 업시 흉년을 면치 못하게 되얏는데 팟(小豆‧소두)은 아조 절망이요 콩은 삼분지 일은 엇게 되리라는 추측이엇스나 해충이 나서 엇지될지 알 수 업스며 그 외 곡식이 전부 마르고 잇는데 전군에 배추를 심은 곳은 한 곳도 업스며 논바닥에는 물 한 점 업는 우에 동풍이 불어서 벼는 날마다 말러감으로 부근 인심은 극도로 흉흉하다더라.(신고산)

害虫(해충) 驅除(구제) 宣傳(선전)
례천은 충재가 우심
경북(慶北) 례천(禮泉)디방에 금년 봄보리(大麥‧대맥) 농사는 근년 처음 가는 풍작이엿는대 성숙시긔인 륙월에 뜻 아니한 우박이 쏘다저서 참혹한 흉작을 당하고 일변 농가는 벼농사만 긔다리든 바 한 달 동안의 지리한 가물로 인하야 뎐곡은 물론 벼농사도 아주 가망이 업게 될 모양인데 한편으로 충재가 생기며 시장의 쌀갑은 차차 올으기 시작하야 인심은 극도로 흉흉한데 군 당국에서는 해충 구제를 힘쓰고저 아레와 가튼 선전지 오천장을 박이여 일반농민에게 배부하얏다더라.(례천)
一(1)、水量(수량)이 多(다)한 畓(답)에는 一反步(일반보)에 石油(석유) (或(혹)은 荏油(임유)) 一升五合式(일승오합식)을 畓面(답면)에 平均(평균)히 滴下(적하)하고 藁箒(고추)로 稻莖(도경)을 拂(불)하야 虫(충)을 落下(낙하)케 하며 또 稻莖下部(도경하부)에는 水(수)를 灌(관)하야 殺减(살감)할 事(사)
二(2)、灌水缺乏畓(관수결핍답)에는 每(매) 九尺(9척)의 幅(폭) 八寸(8촌) 長(장) 十間(10간) 深(심) 二寸(2촌)의 溝(구)를 堀(굴)하야 水(수)를 注集(주집)하고 石油(석유) 一合五勺(1합5작)式(식) 滴下(적하)하야 稻株(도주)에 灌注驅除(관주구제)할 事(사)
三(3)、害虫驅除(해충구제)의 命令(명령)에 違反者(위반자)는 害虫驅除豫防規程(해충구제예방규정)에 依(의)하야 處罰(처벌)함

三十萬斗落(30만두락)에 害虫(해충)
경북 영일군의 비상한 츙재
경상북도(慶北) 영일군(迎日郡) 관내 여덜면 중 죽남(竹南) 죽북(竹北) 흥해(興海)의 세 면을 제한 열다섯 군대 면의 삼십여만 두락의 논에는 부진자(浮塵子)란 해충이 덥히어 거의 전멸상태에 잇슴으로 영일군텽에서는 다소간이라도 효력을 볼가하야 지난 십팔일에 살충제 일천이백관을 즉시 부산에 주문하야 일반농가에 배부키로 하엿다는데 지금으로부터 사오일 안에 비가 오지 아니하면 한 두락에 나락 한 되도 엇지 못하리라고 인심이 흉흉하다더라.(포항)

山間住民(산간주민) 尤困(우곤)
옥수수로 연명하나 대까지 말러
평안남도(平南) 맹산군(孟山郡)디방에는 각종 곡식의 발육이 매우 조와서 근년에 드문 풍년이라고 모다 즐겨하야 오더니 근 한 달 동안이나 가물이 심한 중 바람이 심하야 곡식은 점점 말러가고 대개 옥수수로 연명하는 산간 주민들은 옥수수는 고사하고 대까지 말러서 당장 먹을 길이 업게 되엿는데 사오일 안으로 비가 오지 안으면 다 굴머 죽을 모양이라더라.(북창)

初有(초유)의 農期(농기) 旱災(한재)
긔상학으로는 무관계
측후소의 발표에 의하면 금년의 가물은 마치 대정 구년도 가물과 흡사하야 다만 그해에는 가물이 금년보다 좀 느저서 십월 오일부터 십일월 삼일까지 한 달 동안을 조금도 비가 나리지 아니하엿다는데 금년은 더욱 이와 가치 농긔(農期)에 가물이 계속됨으로 긔상학(氣象學)상으로도 별로하 변태는 업스나 아즉 중국의 관측설비가 불완전함으로 적확한 것은 단언하기 어렵다하더라.

伏地痛哭(복지통곡)
몬지 이는 논둑에서
통곡하는 남녀 주민
전라북도(全北) 정읍군(井邑郡)에는 지난 칠월 십칠일 경에 약간의 비가 와서 거의 말러 죽어가든 곡식은 다시 희생하야 일반농가는 뒤날만 긔다리든 바 요사히 일긔는 불순할 뿐 아니라 온도(溫度)는 백도 이상에 달하며 논에 물은 나날이 줄어들어 벼는 노라케 말러 죽고 몬지가 날리는 논둑에는 남녀 주민이 업드려 탄식하는 참경을 일우엇는데 이제로부터 칠팔일 안으로 비가 오면 채소나 심어 먹을 길밧게 업다더라.(정읍)

减收(감수) 二百萬石(2백만석)
젼국이 똑가치 가믈로 소동
금년 쌀은 이백만석이 감수
근 한 달 동안이나 비가 아니와서 전라남북도를 필두로 전국이 꼭 가치 가물어 논바닥이 트고 버러지가 생기어 굴머 죽는다는 말이 사실화하는 듯한데 모방면의 관측에 의하면 오늘까지의 모양으로 보면 전수확의 일할이분 즉 이백만셕의 감수는 확실하다더라.

米(미)、粟價(속가) 連日(연일) 高騰(고등)
쌀 한 셤에 사원 이상이 올라
요사이 련하야 쌀갑이 작구 오른다는 것은 임의 보도한 바어니와 시내 모모 미곡상에서 조사하여 본 결과 지난달 하순까지 상백미 한 섬에 삼십오원 중백미 삼십사원팔십전 가량이든 것이 차차 오르기 시작하야 근일에는 상에 삼십구원팔십전 중에 삼십구원 가량이요 소매가격은 상백미에 사십일원 중에 사십원륙십전 가량으로 한 되에 삼품 륙십사전 중품 륙십삼전인즉 전보다 약 사원이 오른 세음인데 쌀갑이 몹시 올랏슴으로 이밤 먹든 사람이 이밥을 못 먹게 되야 조밥을 먹게 되엿슴으로 좁살시세도 갑자기 올라 상품 한 섬에 십오원오십전 하품에 십사원오십전으로 올랏다는데 이가치 오르는 원인을 캐여보면 일본사람의 간상들이 곡가의 고등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매점(買占)하는 것도 큰 원인이지만은 미곡상들의 말을 드르면 세월이 흉흉한 까닭으로 디주들이 저장미를 팔지 안는 까닭으로 시장에 나도는 벼가 업는 까닭이라는데 이번에 만일 비가 오기만 하면 갑작히 쌀갑이 떠러지리라는바 요사이 미곡상들은 하늘만 처다보면서 대단히 경계하는 중임으로 근일 미곡 흥정은 침톄 상태이라더라.

安南米(안남미) 混賣(혼매)
간상의 궁계
잡힌 사람은 아니라고
쌀갑이 올늘 때로 오르고 인심은 흉흉하야 무슨 변이 생길는지 예측할 수 업는 요사이에 폭리를 탐하는 일부 간상배들은 쌀갑은 함부루 작구 올릴 수는 업는 형편임으로 간계를 꿈이여 하등미를 상등미와 석거 빗싼 갑으로 팔며 혹은 안남미(安南米)나 중국미(中國米) 가튼 것을 조션쌀에 석거 속여 파는 형적이 업지 안엇슴으로 종로(鍾路)경찰서에서는 경계하든 중 재작일 저녁 때 시내 재동(齋洞) 구십구번디 황형식(黃亨植) 미뎐에서 안남미를 석거 판다는 말을 듯고 재동파출소원과 본서원이 출장하야 엄밀히 조사하고 일부 증거품을 어더가지고 확실히 감뎡하여 보고자 본서로 도라가 방금 조사 중이라는데 안남미를 셕것는지 안 석것는지는 전문가의 감뎡 후에야 알 수 잇스리라는데 황형식의 말을 드르면 그런 일은 절대 업다고 부인하더라.

한재, 충재, 풍재
수재 뒤 한재로 첫 숨을 죽이고
충재와 풍재가 뿌리까지 끊어
전국을 휩쓴 천재 속보

늦은 봄철까지는 전 조선에 걸쳐 근년에 드문 풍작이라고 하여 오직 땅 속에 생기는 곡식과 푸성귀에 목숨을 붙인 조선의 상하 인심은 다소의 희망을 붙이고 하늘이 아직까지 조선을 죽이지 않는 줄로 믿고 있었다. 천만뜻밖에 남도의 가뭄이 먼저 한숨을 꺾고 뒤를 이어 북도의 물난리가 남은 혼을 더욱 놀라게 하자 무심한 천재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다시 남도에 물난리의 독수를 뻗치고 북도에 가뭄의 불길을 던지었다. 한층 나아가 전국적으로 가뭄과 벌레재난에 풍재까지 겸하여 바야흐로 조선 천지에 암담한 살풍경을 일으켜 각지로부터 도착하는 소식은 하나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 없다. 하늘의 소행이라 사람의 힘으로는 하는 수 없거니와 이러한 재변이 얼마나 계속되며 이로써 생기는 모든 죄악과 비극이 어떻게 벌어질지는 우선 각지의 소식이 오는 대로 충실하게 보도한다.

풍년은 일장춘몽
이제는 비가 와도 쓸데없어
평남 숙천지방에는 지난달 20일 경에 비가 와서 모내기를 마친 뒤에는 대풍이라고 일반이 즐거워하더니 그것은 일장의 춘몽으로 이후 한 달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아 논바닥이 갈라지고 곡식이 점점 타버려 일반 농가는 눈물로 지내고 있다. 이제부터 3, 4일 안에 비가 오지 않으면 올해 농사는 전부 소용없게 되며 만약 비가 온다고 하여도 상당한 결실을 보기는 틀렸다고 한다.(숙천)

푸성귀도 전멸
씨를 뿌려도 나지 않아
충남지방에는 한 달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아 논과 밭은 모두 물 기운이 없고 게다가 해충까지 발생하여 여간 물 기운이 있는 논이라도 벌레로 인하여 모두 죽어가며 채소밭에는 씨를 심어도 나지 않아 푸성귀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일주일만 더 가물면 아주 절망이라고 인심이 여간 흉흉하지 않다고 한다.(공주)

가뭄으로 징역
산소를 파헤친 사람
경상북도 경주군 강서면 산대리 동민 수백 명은 지난 7월 15일 가뭄이 한창 심할 대 그곳 무릉산 천제단에 가서 그곳에 밀장한 산소를 팠다. 주모자로 검거된 5명이 이달 14일에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선고를 받았다. 이화혁 이만록 두 사람은 징역 8개월, 박춘봉 이기생 이종호 3명은 각각 징역 6개월의 언도를 받았으나 피고들은 모두 이에 불복하고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하였다고 한다.(포항)

소값까지 폭락
소 먹일 풀도 말라
평안남도 중화군에는 지난달 22일에 비가 오고는 이후 한 달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아 마른 땅에 심은 콩 팥과 기장 조 등이 모두 말라 죽고 면화도 큰 흉년이다. 앞으로 10일만 더 가물면 모두 마를 모양이라고 하며 소를 먹일 풀도 넉넉하지 못해 소 한 마리 값도 벌써 10원이나 떨어졌다고 한다.(중화)

밭곡식 전멸
벼도 점점 말라
함경남도 안변지방은 지난달 28일 이후 이달 6일에 비가 오는 듯하다가 그치고 19일부터 약간의 비가 내리긴 하였으나 지금 상태로는 아무 효과가 없어 흉년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팥은 아주 절망적이고 콩은 30%는 얻게 되리라는 추측이었으나 벌레가 나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며 그 외 곡식이 모두 마르고 있는데 전군에 배추를 심은 곳은 한 곳도 없으며 논바닥에는 물 한 점 없는 위에 동풍이 불어 벼는 날마다 말라가므로 부근 인심은 극도로 흉흉하다고 한다.(신고산)

해충 구제 선전
예천은 충재가 심해
경북 예천지방에 올해 봄보리 농사는 근년 처음 가는 풍작이었으나 성숙시기인 6월에 뜻밖에 우박이 쏟아져 참혹한 흉작을 당하였다. 한편으로 농가는 벼농사만 기다렸으나 한 달 동안의 지리한 가뭄으로 인하여 밭곡식은 물론 벼농사도 아주 가망이 없게 될 모양이다. 한편에서는 충재가 생겨서 시장의 쌀값은 차츰 오르기 시작하여 인심은 극도로 흉흉하다. 군 당국에서는 해충 구제를 힘쓰려고 아래와 같은 선전지 5000장을 찍어 일반농민에게 배포하였다고 한다.(예천)
1. 수량이 많은 논에는 일단보에 석유(또는 깨기름) 2.17리터를 논 표면에 고르게 뿌리고 빗자루로 벼줄기를 쓸어 벌레를 떨어뜨리게 하며 또 벼줄기 아래에는 물을 뿌려 죽일 것
2. 물이 모자란 논에는 2.7m마다 너비 0.24m, 길이 18m, 깊이 0.06m의 웅덩이를 파서 물을 모으고 석유 0.27리터를 떨어뜨린 뒤 벼줄기에 뿌려 구제할 것
3. 해충 구제의 명령을 위반한 자는 해충구제예방규정에 의하여 처벌함

30만 두락에 해충
경북 영일군의 극심한 충재
경상북도 영일군 관내 8개 면 중 죽남 죽부 흥해의 3개 면을 제외한 5개 면의 30여 만 두락의 논에는 벼멸구라는 해충이 덮여 거의 전멸상태에 있다. 영일군청에서는 다소간이라도 효력을 볼까 하여 지난 18일에 살충제 4500㎏을 즉시 부산에 주문하여 일반농가에 배부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4, 5일 안에 비가 오지 않으면 한 두락에 나락 한 되도 얻지 못하리라고 인심이 흉흉하다고 한다.(포함)

산간주민 심히 곤궁
옥수수로 연명하나 대까지 말라
평안남도 맹산군 지방에는 각종 곡식의 발육이 매우 좋아서 근년에 드문 풍년이라고 모두 즐거워하였으나 근 한 달 동안이나 가뭄이 심한 중 바람까지 심하여 곡식은 점점 말라가고 있다. 대개 옥수수로 연명하는 산간 주민들은 옥수수는 고사하고 대까지 말라서 당장 먹을 길이 없게 되었는데 4, 5일 안으로 비가 오지 않으면 다 굶어 죽을 모양이라고 한다.(북창)

초유의 농기 한재
기상학으로는 관계없어
측후소의 발표에 의하면 올해 가뭄은 1920년 가뭄과 비슷하나 다만 그 해에는 가뭄이 올해보다 좀 늦어서 10월 5일부터 11월 3일까지 한 달 동안을 조금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는 더욱 이처럼 농사시기에 가뭄이 계속되므로 기상학상으로도 별로 비정상은 없으나 아직 중국의 관측설비가 불완전하므로 정확한 것은 단언하기 어렵다고 한다.

엎드려 통곡
먼지 일어나는 논둑에서
통곡하는 남녀 주민
전라북도 정읍군에서는 지난 7월 17일 경에 약간의 비가 와서 거의 말라 죽어가던 곡식은 다시 회생하여 일반농가는 뒷날만 기다렸다. 요새 일기는 불순할 뿐 아니라 온도는 38도 이상에 이르며 논에 물은 나날이 줄어들어 벼는 노랗게 말라 죽고 먼지가 날리는 논둑에는 남녀 주민이 엎드려 탄식하는 비참한 모습이 나타났는데 앞으로 7, 8일 안으로 비가 오면 채소나 심어 먹는 길밖에 없다고 한다.(정읍)

수확 감소 200만 석
전국이 똑같이 가뭄으로 소동
올해 쌀은 200만 석이 감소
근 한 달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아 전라남북도를 필두로 전국이 똑같이 가물어 논바닥이 터지고 벌레가 생기어 굶어죽는다는 말이 사실로 되는 듯한데 한 방면의 관측에 따르면 오늘까지의 양상으로 보면 전체 수확의 12% 즉 200만 석의 감소는 확실하다고 한다.

쌀, 좁쌀 가격 연일 급등
쌀 한 섬에 4원 이상이 올라
요새 연일 쌀값이 자꾸 오른다는 것은 이미 보도하였지만 시내 모 미곡상에서 조사하여 본 결과 지난달 하순까지 상백미 한 섬에 35원, 중백미 34원80전 가량이던 것이 차차 오르기 시작하여 최근에는 상에 39원80전, 중에 39원 가량이고 소매가격은 상백미에 41원, 중에 40원60전가량으로 한 되에 상품 64전, 중품 63전이므로 전보다 약 4원이 오른 셈이다. 쌀값이 몹시 올랐으므로 쌀밥 먹던 사람이 쌀밥을 못 먹게 되어 조밥을 먹게 되었으므로 좁쌀 시세도 갑자기 올라 상품 한 섬에 15원50전, 하품에 14원50전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오르는 원인을 따져보면 일본인 간상들이 곡가가 급등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매점하는 것도 큰 원인이지만 미곡상들의 말을 들으면 세월이 흉흉한 까닭에 지주들이 저장미를 팔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나도는 벼가 없는 탓이라고 한다. 이번에 만약 비가 오기만 하면 갑자기 쌀값이 떨어질 것이므로 요새 미곡상들은 하늘만 쳐다보면서 아주 경계하고 있으므로 요 며칠 미곡 흥정은 침체 상태이라고 한다.

안남미 섞어 판매
간상의 궁계
잡힌 사람은 아니라고
쌀값이 오를 대로 오르고 인심은 흉흉하여 무슨 변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는 요즘 폭리를 탐내는 일부 간상배들은 쌀값은 함부로 자꾸 올릴 수는 없는 형편이므로 간사한 계획을 꾸며 하등미를 상등미와 섞어 비싼 값으로 팔며 또는 안남미나 중국미 같은 것을 조선쌀에 섞어 속여 파는 모양이 적지 않다. 종로경찰서에서는 이를 경계하던 중 그저께 저녁 때 시내 재동 99번지 황형식 쌀가게에서 안남미를 섞어 판다는 말을 듣고 재동파출소원과 본서원이 출동하여 엄밀히 조사하고 일부 증거품을 얻어가지고 확실히 감정하야 보려고 본서로 돌아가 현재 조사 중이라고 한다. 안남미를 섞었는지 안 섞었는지는 전문가가 감정한 후에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황형식은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부인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