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러 일본 갔다가 불귀의 객이 된 동포 노동자들
하코네산 등산열차는 처음에는 말이 끌다가 1900년부터 전철이 됐습니다. 종점인 고라(强羅)역까지 연장공사를 시작한 해가 1915년이었다고 합니다. 경사가 가팔라 연장구간에는 3곳에 스위치백 선로를 설치했고요. 열차가 지그재그 식으로 갔다 왔다 하며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4년 만인 1919년에 힘겹게 공사를 마치고 개통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재난이 닥칩니다.

하코네산 전철공사가 끝난 뒤 동포 노동자 100여명이 갈 곳이 없어 온천마을 등지를 떠돌며 울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아있자니 굶주림과 추위를 견딜 수 없고 다른 곳으로 가자니 여비가 없다고 했죠. 10여명은 병을 앓고 있고 벌써 한 명은 숨졌으나 시신을 처리할 방법도 없다고 했습니다. 아픈 이들이 날마다 늘어간다고 했으니까 숨진 노동자들이 더 생겼을 겁니다. 어떻게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됐을까요?

하지만 간토대지진이 동포 노동자들까지 덮쳤습니다. ‘조선인 폭동설’ ‘우물 독약 투입설’ 같은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6000명이 넘는 동포들이 학살당했죠. 살기 위해 건너간 일본에서 목숨을 위협받자 서둘러 돌아옵니다. 이런 귀환자들만 6만 명이 넘었답니다. 그러나 고향에 가봤자 먹고 살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죠. 1924년에는 심한 가뭄까지 일어났거든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이들은 다시 일본행에 나섰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5월 28일
飢寒(기한)으로 慘死者(참사자) 續出(속출)
일본 상근산 뎐차공사에 종사하든 공부 일을 마치니 수중에 쳑푼 업고 갈 곳 업서
刻一刻(각일각) 危險(위험)한 死線(사선)의 罹病者(이병자)
일본 상근산(箱根山)으로 오르는 전차(電車)를 시셜하는 공사에 종사하는 공부들은 최근 공사를 맛치자 일본 공부들은 각각 집으로 도라갓스스나 남아 잇는 백여명의 조선사람은 갈 곳이 업서 지난 졍월달부터 온쳔촌(溫泉村) 등디로 방황하며 밤낫으로 울고 잇는 참상은 참아 볼 수 업다는데 그 곳에 잇자니 먹을 것이 업는 중 추위에 못 견댈 터이오 다른 곳으로 가자니 손에 돈 한 푼 업는 터임에 긔한에 못 익이여 나날이 병들어 알는 이가 늘어가서 발서 십여명은 병중에 신음하나 누가 그들을 위하야 구호하여 줄 사람도 업서 그들의 운명은 각일각으로 위경에 들어가게 되엿다는데 경상남도 출생의 김월룡(金月龍)(三七‧37)은 지난 열흘날 긔한에 못 익이여 사망하엿스나 그 시톄조차 엇지 조쳐할 도리가 업섯다 하며 병자는 날마다 늘어가는 중이라더라.(렬뎐천뎐)
기한으로 참사자 속출
일본 하코네산 전차공사에 종사하던 노동을 마치니 수중에 한 푼 없고 갈 곳도 없어
시간이 갈수록 위험한 사선의 환자들
일본 하코네산으로 오르는 전차를 건설하는 공사에 종사하는 인부들은 최근 공사를 마치자 일본 인부들은 각각 집으로 돌아갔으나 남아 있는 100여명의 조선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 지난 1월부터 온천마을 등지로 방황하며 밤낮으로 울고 있는 참상은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 곳에 있자니 먹을 것이 없는데다 추위에 못 견딜 것이고 다른 곳으로 가자니 손에 돈 한 푼 없다보니 굶주림과 추위에 못 견디어 날마다 병들어 앓는 이가 늘어나 벌서 10여명은 병에 걸려 신음하지만 그들을 위하여 구호하여 줄 사람도 없어 그들의 운명은 갈수록 위험한 처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경상남도 출생의 김월룡(37)은 지난 10일 굶주림과 추위를 못 이기어 사망하였으나 그 시체조차 어떻게 수습할 도리가 없었다고 하며 환자는 날마다 늘어가는 중이라고 한다.(열전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