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01월 01일

그 여잔 지금 뭘 하고 있나요?…96년 전 독자들의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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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을 지금도 6조 앞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광화문 앞 좌우편에 있는 관공서가 어떻게 변천됐는지 아무쪼록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동아일보 1925년 1월 1일자 6면 ‘독자와 기자’란에 소개된 독자 요청입니다. 조선시대 의정부 조직이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바뀐 지 31년, 조선총독부 체제가 자리 잡은 지 15년이 지난 시점이니까 광화문 앞 모습도 무척 달라졌을 테죠. 변천 내력이 궁금할 듯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 민족에게는 의정부 이조 예조 호조 병조 형조 공조가 늘어서 있던 예전 광화문 앞이 친숙했겠죠.


동아일보는 1925년 신년호부터 독자와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고정란을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항목이 ‘기자와 독자’였죠. 독자가 요청하는 주제를 기자가 취재해 소개하고 기자가 제시하는 소재를 독자가 기사로 만들어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신문은 독자가 만들고 독자를 통해 뉴스를 창조하며 창조할 기회를 얻는다’는 신문제작의 기본원리를 실행한 시도였죠. 일제강점기 아래 민간신문 창립 5년째를 맞아 지면제작에 변화를 주는 한편 ‘혁신’을 내세우며 독자 확보 경쟁에 나선 조선일보를 의식한 기획이기도 했습니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대상은 바로 인물, 그중에서도 여자였습니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근황이며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경성 재등장,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의 소식을 물어왔죠. 단발미인 강향란과 개성 난봉가로 유명했던 권애라, 여자고학생상조회 회장 정종명, 기생 출신 의열단원 현계옥도 문의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일제 밀정이었던 배정자의 현재도 알고 싶어 했죠. 남자로는 청산리대첩의 주역 김좌진과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 이완용을 살해하려던 이재명의 유족, 개화당의 주역 김옥균 등에 그쳤습니다.


김마리아는 일제 고문으로 얻은 병 때문에 중국 상하이로 탈출하는 뱃길에서 몇 번이나 까무러쳤고 고통을 달래려고 미리 준비한 몰핀을 여러 차례 맞았다고 했죠. 미국에서 주경야독하는 모습이 근황이었고요. 윤심덕은 남동생의 미국 유학비를 마련하려고 경성 부호와 친하게 지내다 중국 하얼빈에 가 두문불출했다고 전했습니다. 1926년 윤심덕의 최후는 더 큰 충격이었죠. 배정자는 결혼과 동거를 합쳐 8명의 남자, 그것도 주로 연하남과 살았던 것으로 소개됐습니다. ‘변태성욕자’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였죠. 기자는 취재가 힘겨웠던지 인물 요청이 많아 딱 질색이고 더구나 배정자는 쓰기가 고약하다고 푸념까지 했습니다.


3‧1운동 때 33인의 현주소가 궁금하다는 요청에는 48인으로 넓혀서 답했습니다. 이중 손병희 이종일 김홍규 이경섭 4명은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죠. 특히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의 사장을 지낸 이종일은 천도교 내부 갈등을 겪으면서도 독립의지를 꺾지 않다가 영양실조로 숨진 사실을 전했습니다. 안세환은 105인 사건에 이어 3‧1운동으로 연이어 고문을 당하면서 정신이상이 생겨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했죠. 갑신정변의 풍운아 김옥균은 거사에서 죽음까지를 6회에 걸쳐 다뤘습니다. 인물 외에는 광화문 앞을 지키며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아주던 해태의 소재, 독립문 철거설, 무궁화가 국화로 된 내력 등도 소개했죠.


참, 독자들은 어떤 기사를 썼을까요? 동아일보는 써서 보낼 1차 주제로 △100세 장수자 △12세 신랑 △열 번 이상 살림한 기생을 제시했습니다. 열한 살에 첫 번째 장가, 열세 살에 두 번째 장가를 간 전북 금산의 꼬마신랑과 제주의 101세 할머니와 남원의 110세 할아버지 원고가 차례로 실렸죠. 이중 제주 101세 할머니 이야기를 쓴 독자는 사진까지 첨부해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로는 독자 기사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열 번 이상 살림한 기생은 독자 불평에 다섯 번 이상으로 기준을 낮췄는데도 마찬가지였죠. 독자 기자의 실험은 아직 일렀던 모양입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5월 28일

文武官員(문무관원) 送迎(송영)하는
荊棘(형극) 中(중) 銅駝(동타)


◇옥관자 금관자에 팔자 거름 치든
◇녯날 륙조 압은 그동안 엇지 변천
◇┈┈光化門通(광화문통)의 回顧談(회고담) 片片(편편)


광화문 압흘 지금도 륙조 압히라고 하지 안슴닛가. 광화문 압 좌우편에 잇는 관공서가 엇더케 변천된 것을 아모조록 자세히 가르처 주시기 바랍니다.
中學洞(중학동) 一讀者(일독자)

지금 날마다 지내다니면서도 그곳에 무엇이 잇든가 생각하면 아리송 아리송하야 자세히 몰으겟는데 녜전 것을 가르치라니 좀 어렵습니다마는 새로 독자와 긔자란을 설시한 뒤에 이만 문뎨를 어렵다고 고만 둘 길이 업서서 곰곰 생각도 하고 로인에게 뭇기도 하야 대답하야 들입니다.

광화문 압헤 좌우 쪽으로 해태가 잇섯지요. 지금 우리들은 그 해태가 눈에 환이 보이는 것 갓슴니다마는 장래 아희들은 할머니나 어머니가 해태 압헤 갓다 왓다고 하면 해태 압히라니 어듸 말슴이요 할 것이올시다. 해태는 오밤중에 도적놈이 도적질하듯 집어치워서 지금은 볼 수 업게 되얏습니다.

잔소리 고만두구요. 그 해태 압헤서 광화문을 등지고 나려가자면 왼편 첫재가 의정부 조방(議政府朝房)이요 그 다음이 의정부요 그 다음이 사헌부(司憲府)요 그 다음에 례빈소(禮賓所) 골목이 잇고 그 다음이 리조(吏曹) 그 다음이 례조(禮曹) 그 다음이 호조(戶曹) 그 다음에 호조 뒷골이 잇고 길 아레에 한성부(漢城府)와 기로소(耆老所)가 잇섯고요 올흔편 첫재는 삼군부(三軍府) 그 다음이 사간원(司諫院) 그 다음이 중추부(中樞府) 그 다음이 병조(兵曹) 또 그 다음이 형조(刑曹) 맨끗이 공조(工曹)요 중추부 우에 사온서(司醞署) 골목이 잇고 공조 아레에 공조 뒷골이 잇섯담니다.

갑오 이후 각부(各部)가 생긴 뒤에 전 의정부 자리는 내부(內部)가 되고 사헌부 자리는 관보과(官報課)가 되고 리조 자리는 외부(外部)가 되고 례조가 학부(學部)로 변하고 호조가 탁지부(度支部)로 변하고 한성부는 처음에 경무텽(警務廳)이든 것이 농상공부(農商工部)와 밧굼질을 하고 길끗헤 전에 업든 긔념비각(紀念碑閣)이 생겻는데 그 비각은 지금 눈이나 비를 그너가기에 십상 조흔 자리가 되얏고요. 왼편으로 삼군부에는 시위이대(侍衛二隊) 영문이 들어안고 사간원은 헌병대사령부(憲兵隊司令部)가 되얏다가 맨 나종에 잠간 경시텽(警視廳)이란 것으로 변하얏고 중추부는 농상공부가 되얏다가 경무텽과 밧구게 되고 병조는 군부(軍部) 형조는 법부(法部) 공조는 통신원(通信院)이 되얏슴니다.

지금 의정부 조방자리는 빈 터가 되얏고 내부자리에는 경긔도텽(京畿道廳)이 잇고 외부자리에는 순사강습소(巡査講習所)가 잇고 탁지부를 법학전문학교(法學專門學校)가 차지하고 그 아레 잇든 농상공부와 기로소는 빈 터전만 남어 잇고요. 길 건너로 시위이대 영문에는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가 잇고 경무텽이 잇는데 경시텽이라고 따로 생겻든 곳에는 순사긔숙사(巡査寄宿舍)가 잇고 군부는 조선군사령부분실(軍司令部分室)이 되고 법부는 뎐화교환소(電話交換所) 광화문분국(光化門分局)이 되고 통신원은 톄신국(遞信局)이 되얏슴니다.

한 번 가서 보고 대답하면 자세히 할 수도 잇건만 과세에 밧부어 가보지 아니하고 생각하야 적으니 미신한 곳이 적지 안습니다. 혹 틀린 것이나 업나 한 번 가서서 좌우 쪽을 모조리 조사하야 보시면 조켓습니

국초에 경복궁 대궐을 지엿슬 때 뎡도뎐이라는 이가 궁과 궁문과 모든 뎐각 일홈을 지어 바첫는데 경복궁 일홈을 잘 지엇다고 칭찬바덧든 것이 오늘은 조선총독부가 되얏슴니다 그려.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니 감구지회가 업슬 수 업슴니다.


讀者(독자) 記者欄(기자란)과
第一回(제1회) 記者(기자) 課題(과제)


독자가 뎨목을 내인 것으로 긔자가 긔사하는 독자(讀者) 과뎨(課題)와 긔자가 뎨목을 내인 것으로 독자가 긔사하는 긔자(記者) 과뎨(課題)의 흥미잇는 첫 시험은 임의 발표한 바와 갓거니와 그동안에도 벌서 독자로부터 여러 가지 문뎨가 들어와서 위선 한 가지는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전 발표와 가치 뎨일회 긔자 과뎨를 한 번 더 발표하노니 오는 십오일 안으로 상세히 조사해 보내시기를 바람니다.


◇第一回(제1회) 記者(기자) 課題(과제)
一(1)、百歲(100세) 長壽者(장수자) 二(2)、十二歲(12세) 新郞(신랑) 三(3)、열 번 이상 살림한 妓生(기생)

이상 각뎨에 대하야 주소 년령 성명、성질、언행 등 자신에 관한 일톄 사항은 물론、문벌 디위、재산 친족의 유무와 형편(특히 배우자)이며 일화(逸話) 애사(哀史) 세평(世評)까지라도 빼지 안코 상세히 긔록하되 특히 기생 배우자의 살림하든 전후의 사실(례를 들면 가산 탕진의 상태 비관 자살 타락 몰락 혹은 행복 등 일톄)을 일일이 적되 인신을 공격하는 것은 절대로 밧지 안코 오직 사실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외다.

◇긔재된 글에 대하야는 상당한 사례를 하며 사진(寫眞)까지 보낼 때는 특히 사진갑을 진뎡함.



문무관원을 송영하던
황폐화된 6조 거리


◇벼슬아치들 팔자걸음 걷던
◇옛날 6조 앞은 그동안 어떻게 변하였나
◇┈┈광화문통의 회고담 토막토막


광화문 앞을 지금도 6조 앞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광화문 앞 좌우편에 있는 관공서가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아무쪼록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중학동의 한 독자

지금 날마다 지나다니면서도 그곳에 무엇이 있었던가 생각하면 아리송아리송하여 자세히 모르겠는데 예전 일을 가르치라니 좀 어렵습니다마는 새로 독자와 기자란을 마련한 뒤에 이만한 문제를 어렵다고 그만 둘 길이 없어서 곰곰이 생각도 하고 노인에게 묻기도 하여 대답하여 드립니다.

광화문 앞에 좌우 쪽으로 해태가 있었지요. 지금 우리들은 그 해태를 눈에 환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마는 장래 아이들은 할머니나 어머니가 해태 앞에 갔다 왔다고 하면 해태 앞이라니 어디 말씀이요? 할 것이올시다. 해태는 오밤중에 도적놈이 도적질하듯 집어치워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잔소리 그만두고요, 그 해태 앞에서 광화문을 등지고 내려가자면 왼편 첫째가 의정부 조방이고 그 다음이 의정부요, 그 다음이 사헌부요, 그 다음에 예빈소 골목이 있고 그 다음이 이조, 그 다음이 예조, 그 다음이 호조, 그 다음에 호조 뒷골목이 있고 길 아래에 한성부와 기로소가 있었지요. 오른편 첫째는 삼군부, 그 다음이 사간원, 그 다음이 중추부, 그 다음이 병조, 또 그 다음이 형조, 맨 끝이 공조이고 중추부 위에 사온서 골목이 있고 공조 아래에 공조 뒷골목이 있었답니다.

갑오경장 이후 각 부가 생긴 뒤에 전 의정부 자리는 내부가 되고 사헌부 자리는 관보과가 되고 이조 자리는 외부가 되고 예조가 학부로 변하고 호조가 탁지부로 변하고 한성부는 처음에 경무청이던 것이 농상공부와 자리를 바꿨지요. 길 끝에 전에 없던 기념비각이 생겼는데 그 비각이 지금 눈이나 비를 잠깐 피하기에 아주 좋은 자리가 되었지요. 왼편으로 삼군부에는 시위이대 영문이 들어앉고 사간원은 헌병대사령부가 되었다가 맨 나중에 잠깐 경시청이란 것으로 변하였고 중추부는 농상공부가 되었다가 경무청과 바꾸게 되었고 병조는 군부, 형조는 법부, 공조는 통신원이 되었습니다.

지금 의정부 조방 자리는 빈 터가 되었고 내부 자리에는 경기도청이 있고 외부 자리에는 순사강습소가 있고 탁지부를 법학 전문학교가 차지하고 그 아래 있던 농상공부와 기로소는 빈 터전만 남아 있지요. 길 건너 시위이대 영문에는 조선보병대가 있고 경무청이 있는데 경시청이라고 별도로 생겼던 곳에는 순사기숙사가 있고 군부는 조선군사령부분실이 되고 법부는 전화교환소 광화문분국이 되고 통신원은 체신국이 되었습니다.

한 번 가서 보고 알려드리면 자세히 할 수도 있지만 과세에 바빠 가보지 않고 생각해서 적으니 부족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혹 틀린 것이나 없나 한 번 가셔서 좌우 쪽을 모조리 조사하여 보시면 좋겠습니다.

조선 초에 경복궁 대궐을 지었을 때 정도전이라는 이가 궁과 궁문과 모든 전각 이름을 지어 바쳤는데 경복궁 이름을 잘 지었다고 칭찬받았던 것이 오늘은 조선총독부가 되었습니다그려.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니 감회가 없을 수 없습니다.


독자 기자란과
제1회 기자 과제


독자가 제목을 낸 것으로 기자가 기사를 쓰는 독자 과제와 기자가 제목을 내 것으로 독자가 기사를 쓰는 기자 과제의 흥미 있는 첫 시험은 이미 발표한 것과 같습니다. 그동안에도 벌써 독자로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들어와서 우선 한 가지는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발표와 같이 제1회 기자 과제를 한 번 발표하니 오는 15일 안으로 상세히 조사해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제1회 기자 과제
1. 100세 장수자 2. 12세 신랑 3. 열 번 이상 살림한 기생

이상 각 문제에 대하여 주소 나이 성명 성격 언행 등 그에 관한 일체 사항은 물론 문벌 지위 재산 친족의 유무와 형편(특히 배우자)이며 일화 애사 세평까지라도 빼지 않고 상세히 기록해 주십시오. 특히 기생 배우자의 살림하던 전후의 사실(예를 들면 가산 탕진의 상태 비관 자살 타락 몰락 혹은 행복 등 일체)을 일일이 적되 인신을 공격하는 것은 절대로 받지 않고 오직 사실 그대로 소개하여야 합니다.

◇게재된 글에 대해서는 상당한 사례를 하고 사진까지 보낼 때는 특히 사진값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