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7월 14일

도시빈민의 시작점, 일제강점기 ‘토막민’을 아시나요?

공유하기 닫기
원본보기
“아~ 그저 죽을 수 없으니 살아가지요.”

1924년 11월 경성 광희문 밖 신당리를 찾아간 동아일보 기자에게 주민들이 털어놓습니다. 신당리는 동아일보가 11월 7일자부터 7회 연재한 ‘빈민촌 탐방기’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었죠.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으로 농촌에서 밀려난 농민들이 모여든 대표적 지역이었습니다. 1924년 같은 지독한 가뭄은 도시 이주를 더 강하게 몰아붙였죠. 1925~1930년에 매년 4만 명이 농촌을 떠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시는 절망 속 농민들을 받아주는 넓은 품이 아니었죠. 가장자리에 멈춰선 이들은 언덕이나 산비탈, 성벽 밑에 흙을 파낸 뒤 바닥에 멍석을 깔고 위에도 이리저리 거적을 덧댄 ‘집 아닌 집’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토막(土幕)’입니다. 땅은 누구 소유건 상관하지 않았죠. 이내 토막 옆에 토막이 하나둘 이어지는 토막촌이 형성됩니다. 토막이라는 말은 일제가 나라를 빼앗은 1910년 무렵까지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니 새로운 현상이었죠.

토막이 300여 채 들어선 신당리는 3년 전만해도 별로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이젠 콧구멍만한 방에 무려 네 가족까지 살을 맞대며 생활했죠. 기름때 절은 누더기 이불 하나로 딸, 아버지, 며느리 할 것 없이 잠을 잤습니다. 일 년 가도 흰 쌀밥과 고기는 구경하지 못한 채 죽을 먹었고요. 그나마 아침과 저녁뿐이었죠. 금 간 바가지는 밥그릇도 됐다가 설거지통도 되고 손과 발 씻는 대야 노릇도 했습니다. 비라도 오면 방바닥은 금세 진흙밭이 됐죠.

조각보 같은 누더기 옷에는 이가 들끓어 틈만 나면 손톱으로 눌러 죽이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학교엔 근처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은 커서 부모처럼 지게꾼이 되고 막벌이꾼이 돼 빈곤을 물려받게 될 운명이었죠. 소설가 현진건이 1924년 발표한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 인력거꾼은 토막민보다는 형편이 나았습니다. 동대문 밖 공동묘지에 들어선 토막촌의 한 노파는 “아이고 이제는 너무 추워서 머리가 다 아파 죽을 지경”이라고 울음 섞인 넋두리를 했죠.

토막민 같은 빈민들은 아플 때 굶주림 못지않은 고통을 느낍니다. 참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동아일보는 이 해 7월 초 여름 순회진료강연단을 꾸렸습니다. 조선총독부의원 의사 4명과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8명으로 2개 반을 편성해 10일 간 남북으로 각각 진료와 위생강연을 구상했죠. 지면에 알림과 사설까지 내면서 추진했지만 출발 직전 총독부가 불허 결정을 내렸습니다. 동아일보의 약속을 믿고 기대한 이들의 허탈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동아일보는 취재한 그대로를 7월 14일자에 실었습니다. 위생과장은 도마다 (무료 진료해주는) 자혜의원이 있고 군마다 공의(公醫)가 있으니 순회진료는 필요 없다고 했죠. 순회진료를 하더라도 신문사 계획을 따를 일은 아니라는 말이 진짜 속내였을 겁니다. 기어이 하려거든 개업 의사를 불러 하라고 했죠. 총독부의원 의사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작년에 오사카마이니치의 순회진료는 왜 허락했느냐고 되묻자 ‘그땐 책임자가 달랐고 작년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했죠.

총독부의원 소속이라도 휴가를 내고 가는데 왜 그러느냐고 다시 묻자 ‘휴가 중이라도 총독부의원 소속이지 않느냐’고 억지를 부립니다. 총독부의원과 경성의학전문학교는 이미 허락했다고 하자 ‘두 기관이 마음대로 허락할 수 없는 일’이라고 대답하죠. 민간사업이지만 취지가 좋으니 총독부의원 의사라고 안 될 이유는 없지 않느냐고 끈질기게 따지자 대답이 막힌 위생과장은 ‘경무국장의 결정’이라며 떠넘기고 맙니다.

동아일보는 이해 12월 25일자 사설에서 걸인이 생기는 원인은 개인이 아니라 걸인을 만들어낸 사회조직이나 경제조직에 가장 큰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영국이 시행한 걸인 구제책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죠. 하지만 총독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걸인이나 빈민은 보이지 않게 눈앞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원칙이 총독부의 방침이었죠. 일제강점기 내내 빈민이 늘어나게 된 배경이었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4월 27일
警務局(경무국) 干涉(간섭)과
巡廻班(순회반) 中止(중지) 顚末(전말)
무슨 말로 사과하리오
오즉 뎐말을 보도할 뿐
못처럼 의약의 은혜를 고로 입지 못하는 불상한 빈민을 위하야 본사 주최로 하긔무료순회 진료를 하려 하든 계획은 경무당국의 간섭으로 중지하게 되엿다. 본사의 본의는 아니이나 일이 이에 이르매 간절히 기다리든 디방인사에게 무슨 말로 사과하리요. 오즉 이것을 사실대로 보도하야 공죄는 공평한 사회인사에게 맛길 뿐이다.

警務當局(경무당국) 意見(의견)
경무국댱 의견이라고
石川(석천) 衛生課長(위생과장) 談(담)
이에 대하야 경무국 석천(石川)위생과댱은 말하기를 『첫재 우리는 그 취지에 찬성할 수 업는 것이 우리 총독부로서는 임의 위생뎍 시설을 충분히 하여 두엇다 생각하노니 각 도에 자혜의원이 잇고 각 군에 공의를 둔 이상 특히 순회진료까지 할 필요를 인뎡치 아니할 뿐 아니라 만일 필요가 잇다 하면 우리가 자진하야 시행할 것이지 어느 신문사의 계획에 추종하야 갈 것은 아님으로 신문사에서 긔어히 하고 십거든 엇던 개업의사든지 임의로 고빙하여 가지고 마음대로 하는 것은 모르겟지마는 총독부의원 의사를 다리고 간다 함은 우리로서 허락할 수 업소.』 한다.

작년 대판매일(大阪每日)에서 계획하야 실행한 실례가 잇지 아니하냐고 무른즉 『그때에는 책임자가 다른 사람이엇스며 작년의 경험으로서 그다지 조치 못한 줄 아랏스며 이  다음에는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겟소.』 하기에 총독부의원 의사라 하여도 휴가를 어더 개인뎍으로 가는 데야 관계가 업슬 것이 아니냐고 물은즉 잠간 주저하다가 『하여간 될 수 업소. 아모리 휴가를 어덧드라고 총독부의원 의사는 총독부의원 의사이닛가.』 하매 총독부의원에서와 의학뎐문학교 측에서 임의 허락한 것을 경무국에서 반대를 하는 리유는 무엇이냐 모른즉 『안됨니다. 의원과 학교에서만 자의로 허락할 수 업소.』 하기로

아모리 민간사업이기로 그 취지가 조흔 이상 총독부의사라고 찬성치 못할 리유가 무엇이냐 한즉 『이것이 내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경무국댱의 의견을 드러 말슴한 것인즉 즉접 경무국당과 상의하는 것이 조흘 듯하다.』 하기로 석천과댱과 함께 환산(丸山)경무국댱을 차진즉
丸山(환산) 警務局長(경무국장) 談(담)
『단연히 안되겟소. 총독부 의사를 다리고 가는데는 찬성할 수 업소.』 그 리유는 지금 더 말할 것이 업소.』 하더라.

學校當局(학교당국) 意見(의견)
조흔 일이기에
찬셩햇더니
醫專校長(의전교장) 代理(대리) 佐野(좌야) 氏(씨) 談(담)
경무국으로부터 돌연히 출발을 불허하는데 대하야 학교당국자들은 애석히 알며 좌야교댱(佐野校長) 대리(代理)는 말하기를 『원래 학생들이 여러 번 간청하기로 학교에서도 조흔 일이라 그 뜻대로 찬성하여 허락을 한엿더니 지금에 경무국 간습으로 금지가 될 줄은 알지 못하엿소』 하며 반도(飯島)강연부댱과 진능(眞能)교수 그 외 관계 제씨는 『우리는 더 말하기를 원치 아니하나 다만 책임관념으로 량심의 고통을 익이지 못할 뿐이올시다.』 하며 각 반 담임의사 리재택(李載澤) 박창훈(朴昌薰) 박승목(朴勝木) 백인제(白麟濟) 제씨는 각각 묵묵한 중에 깁흔 생각에 빠진 듯하며 다만 자긔의 책임을 말할 뿐이더라.
경무국 간섭과
순회반 중지 전말
무슨 말로 사과할 수 있나
오직 전말을 보도할 뿐
의약의 은혜를 고루 입지 못하는 불쌍한 빈민을 위하여 모처럼 본사 주최로 여름철 무료 순회 진료를 하려던 계획은 경무당국의 간섭으로 중지하게 되었다. 본사의 본의는 아니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니 간절히 기다리던 지방 인사에게 무슨 말로 사과하겠는가. 오직 이것을 사실대로 보도해서 공과 과의 판단을 공평한 사회 인사들에게 맡길 뿐이다.

경무당국 의견
경무국장 의견이라고
이시카와 위생과장 발언
이에 대하여 경무국 이시카와 위생과장은 말하기를 『첫째 우리는 그 취지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총독부로서는 이미 위생적 시설을 충분히 설치해 두었다 생각한다. 각 도에 자혜의원이 있고 각 군에 공공의사를 둔 이상 특별히 순회 진료까지 할 필요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만약 필요가 있다고 하면 우리가 자진해서 시행할 일이지 어느 신문사의 계획에 따라갈 것은 아니다. 신문사에서 기어이 하고 싶거든 어떤 개업 의사든지 임의로 모셔와 가지고 마음대로 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총독부의원 의사를 데리고 가는 것은 우리가 허락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지난해 오사카마이니치(大阪每日)에서 계획하여 실행한 전례가 있지 않은가 하고 묻자 『그때는 책임자가 다른 사람이었고 작년의 경험으로 보니 그렇게 좋지 못한 줄 알았으며 이 다음에는 결코 허락하지 않기로 했소』라고 대답하였다. 총독부의원 소속 의사라고 해도 휴가를 얻어 개인적으로 가는 것은 상관없지 않느냐고 묻자 잠깐 주저하다가 『하여간 허락할 수 없소. 아무리 휴가를 얻었더라도 총독부의원 소속 의사는 총독부의원 의사니까』라고 하기에 총독부의원과 의학전문학교에서 이미 허락한 것을 경무국에서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으니 『안 되오. 의원과 학교에서만 자의로 허락할 수 없소』라고 대답하였다. 아무리 민간의 사업이지만 그 취지가 좋은 이상 총독부 의사라고 찬성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것은 내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경무국장의 의견을 들어 말하는 것이니까 직접 경무국장과 상의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해서 이시카와 과장과 함께 마루야마 경무국장을 찾아갔다.
마루야마 경무국장 발언
『단연코 안 되겠소. 총독부 의사를 데리고 가는 데는 찬성할 수 없소. 그 이유는 지금 더 말할 것이 없소』라고 말하였다.

학교 당국 의견
좋은 일이기에
찬성했더니
의전 교장 대리 사노 씨 발언
경무국에서 갑자기 출발을 불허하는데 대하여 학교 당국자들은 애석하게 알며 사노 교장 대리는 말하기를 『원래 학생들이 여러 번 간청하여 학교에서도 좋은 일이니까 그 뜻대로 찬성하여 허락하였더니 지금 경무국 간섭으로 금지가 될 줄은 알지 못하였소』라고 말하였고 이이지마 강연부장과 신노 교수 외 관련된 여러 사람은 『우리는 더 말하기를 원하지 않지만 다만 책임감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할 뿐이올시다』라고 하였고 각 반 담임의사 이재택 박창훈 박승목 백인제 여러분은 각각 말이 없는 중에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하며 다만 자기의 책임을 말할 뿐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