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4월 1일

“동아의 말과 글 영원하라”… 창간에 답지한 ‘거물들의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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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창간했지만 4월 7일자까지 5일 동안(4, 5일자는 휴간) 제호 옆에 ‘창간호’라는 표기를 했습니다. 민족 언론에 대한 목마름이 그만큼 강했다는 증거입니다. 동아일보에 대한 기대와 응원, 당부를 담은 국내외 저명한 인사들의 창간 축사(祝辭)도 4월 8일자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중 1일자 신문에는 5편의 축사가 실렸습니다. 운양 김윤식 선생(1835~1922)의 ‘우형천하지대세, 상각고금지시의’(1면)라는 글이 첫 면 중앙을 장식했습니다. ‘눈을 부릅떠 천하의 대세를 가늠하고, 고금의 시의를 헤아리고 헤아려라’는 뜻입니다. 운양은 구한말 대신을 지낸 당대의 문장가로, 일제 강점 후 일본이 그에게 중추원 부의장 직과 작위, 연금을 줬지만 거절한 바 있으며 3·1운동 때는 독립을 요구하는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를 제출해 저항한 분입니다.

중화민국 손일선 씨(쑨원) 축사
삼민주의(三民主義·민족 민권 민생)로 잘 알려진 중국 신해혁명의 선도자이자 정치가인 중산 쑨원(孫文·1866~1925)의 ‘천하위공’(2면)도 눈에 띕니다. ‘세상은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라 만민의 것이다’라는 뜻이지요. 쑨원은 이 천하위공이라는 네 글자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의 고향인 광둥(廣東)성의 손중산 고택기념관에도, 그의 묘가 있는 난징(南京) 중산릉의 대문에도 이 글이 커다랗게 적혀 있습니다. 쑨원이 보낸 글 아래에는 ‘중화민국 손일선 씨 축사’라는 설명도 붙어 있습니다. 일선은 쑨원의 자(字)입니다.

베이징대 총장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축사 ‘선전인도’(5면)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널리 펴 알려라’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사상가이자 교육자, 정치가인 차이위안페이는 베이징대 총장 재임 시 리다자오(李大釗), 천두슈(陳獨秀), 루쉰(魯迅) 등 당대의 사상가와 문학가를 교수로 초빙하고 후원해 1919년 5·4운동을 이끈 인물입니다. 중국의 군벌 출신으로 중화민국 국무총리를 지낸 진윈펑(靳雲鵬)의 축사 ‘언문행원’(6면)도 실렸습니다. ‘동아일보의 말과 글이 영원하라’는 뜻이지요.
중화민국 국무총리 진윈펑 씨 축사


중국의 계몽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량치차오(梁啓超)가 보낸 ‘명이간정’(7면)이라는 축사도 게재됐습니다. ‘해가 땅속에 들어간 어려움 속에서도 뜻을 바로 펴라’는 뜻인데요, 일찍이 변법자강운동에 힘썼던 량치차오는 조선에도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 ‘조선망국사략’, ‘조선 멸망의 원인’, ‘일본 병탄 조선기’ 등의 논설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음빙실 주인 량치차오 씨 축사

이처럼 중국 저명인사들의 축사가 많은 것은 예로부터 가까운 나라인 데다 외세의 압박을 받던 당시 상황이 흡사해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들의 축하 휘호를 받은 사람은 창간기자 김동성이었습니다. 그는 창간 직전 한국 기자 최초의 특파원으로 베이징에 가 불과 일주일 사이에 차이위안페이, 진윈펑, 량치차오 등 당대 명사 20여 명의 글을 받아 회사로 보냈습니다. 김동성은 훗날 “저명인사들의 축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조선 언론’에 대한 큰 기대를 보여주는 실례(實例)이고··· 외국인들은 동아를 한민족의 대표기관처럼 대접해줬다”고 회고했습니다.
북경대학 총장 채원배 씨 축사

다만 쑨원의 휘호는 본사에서 특별히 청해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또 그의 글을 가장 정중하게 다뤘지요. 이런 인연으로 쑨원은 1920년 8월 동아일보에 ‘조선 문제와 중국’이라는 글을 보냈습니다. 일부를 요즘 표현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요구를 용인해 독립을 승인해야 한다. 일한 합방이 조선인의 원한을 산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중국인의 대일(對日) 의혹을 심히 높여 중국 배일(排日)의 원인이 실로 여기에 있다.’ 이 기고는 8월 11일자에 실렸지만 강제 삭제돼 독자에게 전달되지는 못했습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1920년4월1일1면

盱衡天下之大勢(우형천하지대세)
商搉古今之時宜(상각고금지시의)
雲養 金允植(운양 김윤식)
祝 東亞日報 創刊(축 동아일보 창간)
雲養 金允植 氏 祝辭(운양 김윤식 씨 축사)


祝 東亞日報 出版(축 동아일보 출판)
天下爲公(천하위공)
孫文(손문)
中華民國 孫逸仙 氏 祝辭(중화민국 손일선 씨 축사)


北京大學總長 蔡元培 氏 祝辭(북경대학 총장 채원배 씨 축사)
宣傳人道(선전인도)
東亞日報(동아일보)
蔡元培(채원배)


中華民國 國務總理 靳雲鵬 氏 祝辭(중화민국 국무총리 근운붕 씨 축사)
言文行遠(언문행원)
靳雲鵬 題詞(근운붕 제사)


飮冰室 主人 梁啓超 氏 祝辭(음빙실 주인 양계초 씨 축사)
明夷艱貞(명이간정)
梁啓超(양계초)
눈을 부릅떠 천하의 대세를 가늠하고
고금의 시의를 헤아리고 헤아려라.
운양 김윤식
축 동아일보 창간
운양 김윤식 씨 축사


축 동아일보 출판
세상은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라 만민의 것이다.
쑨원
중화민국 손일선 씨 축사


북경대학교 총장 차이위안페이 씨 축사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널리 펴 알려라.
동아일보
차이위안페이


중화민국 국무총리 진윈펑 씨 축사
말과 글이 영원하라.
진윈펑 제사

음빙실 주인 량치차오 씨 축사
해가 땅속에 들어간 어려움 속에서도 뜻을 바로 펴라.
량치차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