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5월 27일

동쪽에서 온 ‘계급투쟁론’은 혁명의 지침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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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초 사회주의는 한반도 북쪽에서도 건너오고, 동쪽에서도 넘어왔습니다. 북쪽의 발원지는 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였습니다. 그럼 동쪽은 어디일까요? 예,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조선유학생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이념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한반도로 넘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였죠. 사회주의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가 라는 점은 그때 지식인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습니다.

1922년 4월 18일자 1면에 ‘말크스의 유물사관 1’이 실린 것은 동아일보 나름의 대응이었죠. 말크스는 칼 마르크스를 말합니다. 연재는 5월 8일까지 총 18회 실렸습니다. 연재가 끝나기가 무섭게 ‘막쓰 사상의 개요 1’이 또 게재됩니다. 5월 11일자였죠. 막쓰는 역시 마르크스를 가리킵니다. 마르크스의 표기조차 통일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죠.

‘막쓰 사상의 개요’는 6월 23일자까지 총 37회 연재됐습니다. 앞서 연재한 ‘말크스의 유물사관’이 어렵다고 일부 독자들이 불평하자 좀 더 쉽게 풀어썼죠. 마르크스주의를 유물사관과 경제론, 정책론의 3대 원리로 나눠 설명했습니다. 이 원리를 계급투쟁론이 관통한다고 했죠. 너무 단순해질 우려가 없지 않지만 연재의 내용을 압축해 보겠습니다.

동아일보 1922년 4월 18일자부터 8월 15일자까지 1면에 연재된 마르크스주의 관련 연재물의 각 첫 회분 제목을 모았다. 아래는 현대어로 풀어쓴 제목이다. 각 연재물의 게재 회수를 합하면 모두 83회에 이른다.


유물사관은 달걀과 병아리를 예로 들었습니다. 병아리가 형체를 갖출 때까지 달걀은 보호막 역할을 하죠. 하지만 병아리가 부화할 때쯤에는 달걀은 방해물이 되고 맙니다. 달걀을 깨고 나와야만 병아리가 살 수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사회조직은 처음엔 생산력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만 생산력이 점점 커지면 억압하는 관계로 뒤바뀐다는 겁니다. 사회조직을 탈바꿈시키는 수단이 계급투쟁이라고 했죠. 경제론은 가치를 창출하는 요소는 노동이라는 주장으로 요약됩니다. 노동가치설이죠. 자본가가 제값을 주지 않고 잉여가치를 약탈하기 때문에 불평등이 빚어진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정책론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구별과 불로소득을 없애서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죠.

두 연재를 맡은 사람은 이순탁이었습니다. 집안이 어려웠지만 인촌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의 학비 지원으로 게이오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죠. 게이오대학 시절 스승이 일본 마르크스학의 권위자라는 가와카미 하지메였고 이순탁은 ‘조선의 가와카미 하지메’로 불렸습니다. 돌아와 경성방직과 조선상업은행을 거쳐 연희전문 상과 교수가 됐고 학과장까지 지냈죠.

이순탁의 마르크스주의는 가와카미의 초기 사상에 토대를 두었고 본인 성향도 반영돼 점진적 사회개조와 계급협조 색채가 짙었습니다. 물론 혁명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사회개량주의 노선을 지켰던 것이죠. 조선의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시점에 정치혁명으로 사회혁명을 이루려는 것은 무모하다고 보았습니다. 가와카미의 책을 번역한 연재에도 이런 판단이 깔려 있었죠.

①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 ②는 일본 마르크스학의 확립자이자 권위자로 불린 가와카미 하지메 ③은 '조선의 가와카미 하지메'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순탁 연희전문 교수. 마르크스주의가 한반도 동쪽에서 유입된 하나의 길이었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죠. 더 못해진다는 의미도 되지만 풍토에 맞게 바뀐다고 이해해도 됩니다. 이순탁의 마르크스주의가 바로 귤화위지였을 겁니다. 이순탁은 이듬해 사회주의자들에 맞서 물산장려운동을 옹호하는 논쟁에 뛰어들기도 했죠.

동아일보는 이후에도 일본 학자들의 ‘노동가치설과 평균이윤율의 문제’(총 8회) ‘맑스 노동가치설에 대한 비평의 비판’(총 13회) ‘노동가치설과 평균이윤율의 재론’(총 7회)을 계속 1면에 실어 마르크스주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사회주의의 핵심과 정신을 제대로 연구하는 것이 먼저라는 사설(동아플래시100  8월 25일자 참조)에 맞춘 지면 제작이었죠.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맑쓰』 思想(사상)의 槪要(개요) (十五‧15)
李順鐸(이순탁) (抄譯(초역))
第二章(제2장) 唯物史觀(유물사관) (續(속))
第四節(제4절) 總(총) 括(괄)

以上(이상)의 說明(설명)에 依(의)하야 막쓰의 唯物史觀(유물사관)에 關(관)한 主(주)된 疑問(의문)은 大略(대략) 解决(해결)하얏는대 以下(이하) 그 史觀(사관) 並(병) 階級爭鬪說(계급쟁투설)에 基因(기인)한 社會觀(사회관)에 就(취)하야 그 要領(요령)을 簡單(간단)히 總括(총괄)하고 한便(편)으로 以上(이상)의 說明(설명)에 漏落(누락)된 곳을 多少間(다소간) 補充(보충)하면서 막쓰의 原文(원문)을 떠나가지고 그 眞精神(진정신)을 余(여)의 말로 表示(표시)하면 如次(여차)하도다.

經濟上(경제상) 生産力(생산력)의 發展(발전)은 總(총)히 社會組織變動(사회조직변동)의 根本條件(근본조건)이니 盖(개) 如何(여하)한 時代(시대) 如何(여하)한 社會(사회)에서든지 社會(사회)의 生産力(생산력) 發展(발전)의 程度(정도) 如何(여하)에 따라서 그 社會(사회)를 組織(조직)하는 人々(인인)의 生産關係(생산관계)가 決定(결정)되며 그에 伴(반)하야 그 生産物(생산물)의 分配關係(분배관계)도 決定(결정)되도다. 그래서 此等(차등) 生産關係(생산관계) 及(급) 分配關係(분배관계)는 合(합)하야 社會(사회)의 經濟的(경제적) 搆造(구조)를 形成(형성)하는 터인데

이 社會(사회)의 經濟的(경제적) 搆造(구조)야말로 社會(사회)의 根本基礎(근본기초)라. 그래 그에 따라서 그 社會(사회)의 政治上(정치상) 及(급) 法律上(법률상)의 組織(조직) 並(병) 制度(제도)도 決定(결정)되는 것이니 即(즉) 一定(일정)한 社會內(사회내)의 政治(정치) 及(급) 法律(법률)은 그 社會內(사회내)의 經濟上(경제상) 實質(실질)의 形式的(형식적) 表現(표현)에 不過(불과)한 者(자)라. 그런데 此等(차등) 社會組織(사회조직) 又(우)는 社會制度(사회제도)란 것은 다시 그 社會組織下(사회조직하)에서 生活(생활)하는 人々(인인)의 心的(심적) 狀態(상태)를 支配(지배)하야써

그 社會(사회)에 特有(특유)한 哲學(철학) 文學(문학) 藝術(예술) 宗敎(종교) 道德(도덕) 等(등)을 釀成(양성)함에 至(지)한 것이니 故(고)로 社會(사회)의 富(부)의 生産力(생산력)이 어나 程度(정도) 以上(이상)으로 發展(발전)할 것 갓흐면 그에 따라서 社會(사회)의 精神的(정신적) 文化(문화)의 表現形式(표현형식)도 또한 그 外相(외상)을 變(변)해 오는도다.

그러함으로 이를 一定(일정)한 社會組織(사회조직)에 就(취)하야 觀察(관찰)할 것 갓흐면 이를 二期(이기)에 分(분)할 수가 잇스니 第一期(제1기)는 生産力(생산력)과 生産關係(생산관계)가 正(정)히 調和(조화)하는 時期(시기)오 第二期(제2기)는 生産力(생산력)이 이믜 어나 程度(정도) 以上(이상)으로 發展(발전)한 까닭으로 從來(종래)의 生産關係(생산관계)와 새로 發展(발전)한 生産力(생산력)과의 사이에 調和(조화)가 次第(차제)로 破壞(파괴)되여 오는 時期(시기)라.

即(즉) 第一期(제1기)에는 生産力(생산력) 發展(발전)의 形式(형식)인 社會關係(사회관계)가 第二期(제2기)에서는 도리혀 生産力(생산력) 發展(발전)의 束縛(속박)이 되나니 今(금)에 如斯(여사)한 時代(시대)에 萬一(만일) 그 社會(사회) 사람들이 이 社會組織(사회조직)과 生産力(생산력)과의 衝突(충돌)을 解決(해결)할 수가 업슬 것 갓흐면 其(기) 社會(사회)의 進步(진보)는 停止(정지)할 것이오 或(혹)은 그 社會(사회)는 退化(퇴화)하야 드대여 滅亡(멸망)하여 버릴 것이라.

그런대 이에 反(반)하야 萬一(만일)의 衝突(충돌)을 解決(해결)하려고 하면 社會組織(사회조직)을 改造(개조)하는 外(외)에 他途(타도)가 업는대 다행이 如此(여차)한 改造(개조)가 된다고 하면 그는 社會組織(사회조직) 進化(진화)의 正當(정당)한 過程(과정)을 經過(경과)한 者(자)라고 할 것이오 이와 同時(동시)에 또한 새로운 社會組織(사회조직)이 第一期(제1기)가 始作(시작)되는 것이니 所謂(소위) 社會的(사회적) 革命(혁명)이라는 것이 그것이라 하노라.
『마르크스』사상의 개요 (15)
이순탁 (초역)
제2장 유물사관 (계속)
제4절 총괄

이상의 설명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관한 주요한 의문은 대략 해결하였다. 이하에서는 그 사관과 계급투쟁설에 기인한 사회관에 따라서 그 요령을 간단히 총괄하고 한편으로 이상의 설명에 빠진 곳을 다소 보충하면서 마르크스의 원문을 떠나서 그 참 정신을 나의 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적 생산력의 발전은 모두 사회조직 변동의 근본조건이므로 대개 어떠한 시대, 어떠한 사회에서든지 사회의 생산력 발전의 정도가 얼마인지에 따라서 그 사회를 조직하는 사람들의 생산관계가 결정되며 그에 동반하여 그 생산물의 분배관계도 결정된다. 그래서 이러한 생산관계와 분배관계는 합하여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인데 이 사회의 경제적 구조야말로 사회의 근본기초이다.

그에 따라서 그 사회의 정치상 그리고 법률상의 조직과 제도도 결정되는 것이니 즉 일정한 사회 안의 정치와 법률은 그 사회 안의 경제상 실질의 형식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조직 또는 사회제도라는 것은 다시 그 사회조직 아래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심적 상태를 지배함으로써 그 사회에 특유한 철학 문학 예술 종교 도덕 등을 양성하기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회의 부의 생산력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발전할 것 같으면 그에 따라서 사회의 정신적 문화의 표현형식도 또한 겉모습을 바꿔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일정한 사회조직에 따라서 관찰할 것 같으면 이를 2기로 나눌 수가 있다. 제1기는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바람직하게 조화하는 시기이고 제2기는 생산력이 이미 어느 정도 이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종래의 생산관계와 새로 발전한 생산력과의 사이에 조화가 점차 파괴되어 오는 시기이다. 즉 제1기에는 생산력 발전의 형식인 사회관계가 제2기에서는 도리어 생산력 발전의 속박이 되는 것이니 이제 이러한 시대에 만일 그 사회 사람들이 이 사회조직과 생산력과의 충돌을 해결할 수가 없을 것 같으면 그 사회의 진보는 정지할 것이고 혹은 그 사회는 퇴화하여 드디어 멸망하여 버릴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로 만일 충돌을 해결하려고 하면 사회조직을 개조하는 이외에 다른 길이 없는데 다행히 이 같은 개조가 된다고 하면 그는 사회조직 진화의 정당한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할 것이고 이와 동시에 또한 새로운 사회조직이 제1기가 시작되는 것이니 이른바 사회적 혁명이라는 것이 그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