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8월 30일

조선인들은 왜 과학을 무시하고 실업을 천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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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8월 24일 조선을 방문한 미국 의원단의 일정은 철저하게 통제됐습니다. 1박2일의 짧은 방문인데다 첫날은 밤에 도착해 경성을 둘러본 시간은 25일 하루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조선총독부와 창덕궁 비원 의학전문학교 공업전문학교 등 일제가 안내하는 곳만 따라다녀야 했죠. 의원들은 전날 밤부터 “만세”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리고 상점들이 일제히 문을 닫아 이상하다는 느낌은 가졌을 법합니다.


월남 이상재를 중심으로 한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는 25일 조선인들만의 환영회를 준비했습니다. 미리 회비도 걷고 기념선물도 마련했죠. 하지만 총독부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의원단에 통보했습니다. 의원단은 비공식 행사인 YMCA 환영회에 무리해서 가야 하나 싶어 불참하기로 했습니다. 미 의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고대했던 청년들의 실망감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800여 군중은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않았죠.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의원 한 사람이 돌연 YMCA에 나타난 것입니다. 헐스먼 하원의원이었죠. 그는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해 혼자 조선인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실망했던 사람들은 영어로 “후라―(만세)”를 세 번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죠. 헐스먼 의원도 감격에 겨웠는지 즉석에서 짧은 연설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얼굴을 보건대 여러분도 우리나라 청년같이 향상의 활기와 광채가 가득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학술과 공업을 힘써서 모든 것을 향상하게 하여 더욱 정의와 인도로 분투하시기 바랍니다.”

(왼쪽) YMCA를 전격 방문해 청중 800여 명에게 정의와 인도로 분투하라고 연설한 헐스먼 하원의원
(오른쪽) 동아일보를 통해 '잘 배우고 잘 힘쓰라'는 인사말을 남긴 스몰 의원단장과 부인. 사진 아래는 스몰 단장의 서명


동아일보는 이 연설을 소재로 8월 28, 29, 30일자에 3회 사설을 실었습니다. ‘미국 내빈이 전하는 말’이라는 제목의 사설은 조선인들이 희망을 품고 더디더라도 한 발 한 발 전진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군함도, 대포도 없고 비행기도, 자동차도 가지지 않은 나약한 우리 얼굴에 활기와 광채가 가득하다고 한 것은 눈 속에 피어난 매화를 보는듯하다고 했습니다. 찬바람에 떨고 있는 매화 속에는 봄기운이 차오르고 생명의 신비가 움직인다는 것이죠. 비참한 현재에 체념하지 말고 그 안에 감춰진 밝은 미래를 보라는 뜻입니다.

정의와 인도는 한 마디로 인격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도덕의 근본이고 도덕은 국가의 근본이며 국가는 법률의 근원이라는 것이죠. 우리의 목적이 조선을 좌지우지하거나 동양 패권을 장악하거나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호자와 옹호자가 되는 것이라고 할 때 인격 존중이 필수적이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실력이 없는 정의와 인도는 공허할 뿐입니다. 학술과 공업에 힘쓰는 일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설은 조선인들이 과학을 무시하고 실업을 천시하는 결점을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지식 없이 어떻게 세상을 헤쳐 나가고 재력 없이 어떻게 경쟁할 수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사설은 ‘실력양성론’이나 ‘준비론’의 필요성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알린 것입니다.

이는 창간 직후였던 4월 2일자부터 4회 연재한 사설 ‘세계 개조의 벽두를 당하여 조선의 민족운동을 논하노라’와도 연결됩니다. 여기서는 자유 평등 우애를 내세운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이 땅에서 실현하려면 사회적으로 대대적인 문화운동이 필요하고 각 분야에서 실력을 충실하게 쌓아 민족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고 해서 마냥 서두를 일은 아닙니다. 사설은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공자의 말을 소개합니다. 빨리 하려고 하면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이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과도 통합니다. 가을의 추수를 바란다면 지금부터 밭을 갈아야 하겠죠.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美國來賓(미국내빈)의 傳(전)하는 말 (三(3))

헐스맨氏(씨)의 演說(연설)
스모―ㄹ氏(씨)의 傳言(전언)

孔子(공자) 일즉히 갈아사대 『欲速不達(욕속부달)』이라 하섯스니 此(차)는 一郡(일군)을 治之(치지)하는 道理(도리)일 뿐 아니라 또한 社會運動(사회운동)에 對(대)하야 適切(적절)한 敎訓(교훈)이라. 吾人(오인)은 일즉히 校(교)에 在(재)하야 社會學(사회학)을 聽講(청강)할새 이와 갓흔 例(예)를 聞(문)하얏나니 갈아대 『一小鳥(일소조) 偶然(우연)히 室內(실내)에 入(입)하얏도다. 元來(원래) 小鳥(소조)는 無限(무한)한 空天(공천)의 自由(자유)를 思慕(사모)하는지라. 엇지 狹小(협소)한 一室(일실)에 容身(용신)할 수 잇스리오. 이에 다시 蒼天(창천)에 놉히 날고자 出(출)하기를 圖謀(도모)할새 그 室(실)에는 二三個(이삼개)의 窓門(창문)이 有(유)하니 모다 硝子(초자)로써 하얏도다. 上部(상부)는 閉(폐)하고 下半部(하반부)는 開放(개방)되얏스나 燥急(조급)한 小鳥(소조)는 回(회)하야 下半部(하반부) 開放(개방)된 方面(방면)으로 出(출)하기를 思(사)하지 아니하고 오즉 直徑(직경)으로 出(출)하기를 圖謀(도모)하야 徒(도)히 上部閉鎖(상부폐쇄)된 硝子(초자)에 衝突(충돌)하다가 맛침내 下部開放處(하부개방처)를 發見(발견)하야 出(출)함을 得(득)하얏스니 이 間接方法(간접방법)이 오히려 直接方法(직접방법)보다 速(속)한 道理(도리)이라』함이로다. 此(차)를 聞(문)할 時(시)에 吾人(오인)은 孔子(공자)의 言(언)을 追想(추상)하야 『欲速不達(욕속부달)』인뎌 『欲速不達(욕속부달)』인뎌 하얏노라.

이제 米國來賓(미국내빈)은 吾人(오인)의게 告(고)하되 『學術(학술)과 工業(공업)에 努力(노력)하야 모든 것을 向上(향상)하라』하얏스니 吾人(오인)은 思(사)하되 此言(차언)을 熟考詳察(숙고상찰)함이 可(가)하다 하노라. 勿論(물론) 社會運動(사회운동)은 吾人(오인)의 累累(누누)히 論述(논술)함과 如(여)히 多方面(다방면)한지라. 現在(현재) 朝鮮社會(조선사회)에 在(재)하야는 적어도 兩方面(양방면)으로 分(분)하야 政治運動(정치운동)과 社會運動(사회운동)이 必要(필요)한줄노 思(사)하니 그럼으로 吾人(오인)은 決(결)코 劃一的(획일적)으로 論斷(논단)하지 아니하거니와 秋收(추수)를 바라는 者(자)는 몬저 밧을 갈미 必要(필요)한지라. 吾人(오인)의 바라는 바 正義(정의)와 人道(인도)가 엇지 耕田(경전)과 播種(파종)과 努力(노력)이 업시 一朝一夕(일조일석)에 來(내)할 수 잇스리오. 實力(실력)이 업는 絶叫(절규)는 오즉 徒勞(도로)에 歸(귀)할가 저허할 뿐 아니라 正義(정의)와 人道(인도)의 內容(내용)은 사람으로 하야금 나를 認定(인정)하며 尊敬(존경)케 할 뿐 아니라 實(실)노 나를 充實(충실)히 하는 것이로다. 學術(학술)을 硏究(연구)하며 工業(공업)을 發達(발달)함은 곳 나를 充實(충실)히 함이오. 同時(동시)에 人(인)으로 하야금 나를 尊敬(존경)케 하는 所以(소이)가 안일가.

元來(원래) 朝鮮人(조선인)의 缺點(결점)은 儒敎(유교)의 道學的(도학적) 方面(방면)에 墮(타)하며 流(유)하야 理科學(이과학)을 無視(무시)하며 實業(실업)을 賤視(천시)하야 此等(차등)을 指稱(지칭)하되 小道(소도)라 함에 在(재)하니 이는 홀노 儒敎(유교)에 限(한)한 弊(폐)가 아니라 今日(금일) 基督敎(기독교)에도 또한 그러하며 佛敎(불교)에도 또한 그러하도다. 이럼으로 朝鮮(조선)에는 科學(과학)이 不起(불기)하며 實業(실업)이 不興(부흥)하니 科學(과학)이 不起(부기)하는지라. 迷信(미신)이 多(다)하며 實業(실업)이 不興(부흥)하는지라. 生活(생활)이 貧弱低級(빈약저급)하야 因(인)하야 精神生活(정신생활)까지도 萎頹不振(위퇴부진)하는도다. 科學(과학)과 實業(실업) 卽(즉) 物質生活(물질생활)에 關(관)한 努力(노력)을 何故(하고)로 賤視(천시)하는고. 吾人(오인)은 了解(요해)하기 難(난)하니 하날이 天地(천지)를 創造(창조)하실새 有形無形(유형무형)으로 分(분)하야 靈(영)을 生(생)하고 또 物(물)을 作(작)하지 아니하얏는가. 이 天地(천지)는 오즉 하날의 榮光(영광)으로서 充滿(충만)하얏나니 그럼으로 昔(석)의 詩人(시인)은 노래하야 가라대 『이 地球(지구)는 善(선)으로서 가득하얏다』하얏도다. 科學者(과학자)의 얼골에서도 天使(천사)의 光彩(광채)가 나타나며 實業家(실업가)의 가슴에도 殉敎者(순교자)의 피가 끌을 수가 잇스니 이와 갓흘진대 모든 것이 오즉 하날의 榮光(영광)이라. 엇지 이를 賤(천)히 하며 저를 貴(귀)히 하리오. 오즉 吾人(오인)이 『世上(세상)』이라 하고 排斥(배척)하며 『貪欲(탐욕)』이라 하고 憎惡(증오)함은 오즉 『慾心(욕심)』을 知(지)하고 그 他(타)를 不知(부지)하는 者(자)에게 對(대)하야 함이니 義(의)를 持(지)하고 道(도)를 爲(위)하야 學(학)을 硏(연)하며 富(부)를 積(적)하면 그 엇지 하날과 사람의 한 勇士(용사)가 아니리오. 이제 吾人(오인)은 頑迷(완미)한 宗敎家(종교가)의 偏見(편견)을 破(파)하며 在來(재래)의 陋習(누습)을 斥(척)하야 新意味(신의미)의 實業(실업)이 勃興(발흥)하며 科學(과학)이 進步(진보)되기를 바라노니 朝鮮民衆(조선민중)은 스사로 살필지어다. 知織(지식)업시 이 世上(세상)에 能(능)히 살 수 잇스면 富力(부력)업시 能(능)히 競爭(경쟁)할 수 잇는가 하고. 目的(목적)이 크면 準備(준비)가 또한 커야 할지라.直徑(직경)을 取(취)하지 말고 迂回(우회)하야 欲速不達(욕속부달)의 幾(기)를 免(면)할지어다. 米國議員團(미국의원단)의 團長(단장) 스모―ㄹ氏(씨)는 그 出發(출발)할 때를 當(당)하야 無限(무한)한 感慨(감개)와 感激(감격)한 態度(태도)로써 本報(본보)를 介(개)하야 朝鮮靑年(조선청년)의게 傳(전)하야 가로대

『山高(산고) 水麗(수려)한 江山(강산) 속에서 잘아난 活潑(활발)한 朝鮮靑年(조선청년)의 前途(전도)를 나는 樂觀(낙관)······하노니 大槪(대개) 한 나라는 만흔 社會(사회)의 모힘이오 한 社會(사회)는 한 사람의 모힘이라. 모든 成功(성공)과 모든 幸福(행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奮鬪(분투)와 努力(노력)에 在(재)하고 그 奮鬪(분투)와 努力(노력)하는 根本(근본)은 敎育(교육)에 在(재)하니 나는 아보 것보다도 朝鮮(조선)사람의게는 그저 『잘 배호고 잘 힘쓰라』는 말을 두고 가노라』하얏도다.

朝鮮靑年(조선청년)의 前途(전도)를 樂觀(낙관)하는 道理(도리)는 무엇인고. 헐스맨氏(씨)와 갓치 그 向上(향상)의 活氣(활기)를 봄이로다. 그러나 그 活氣(활기)를 그릇된 方向(방향)으로 浪費(낭비)하면 그 엇지 希望(희망)이 잇스리오만은 朝鮮靑年(조선청년)은 이제 光明(광명)을 보아 正義人道(정의인도)로써 人類(인류)의 擁護者(옹호자)가 되기를 自任(자임)하노니 結局(결국) 正義(정의)가 勝利(승리)를 得(득)할 것은 天理(천리)에 照(조)하야 當然(당연)한 바오 또 明白(명백)한 바라. 그럼으로 空虛(공허)한 中(중)에도 悲觀(비관)하지 아니하고 오히러 樂觀(낙관)하나니. 오즉 正義(정의)를 實現(실현)하야 社會(사회)의 完美(완미)를 期(기)하는 方法(방법)이 個(개)々人(인)의 完成(완성)으로써 根本(근본)을 作(작)하는지라. 이 敎育(교육)을 高唱(고창)하며 努力(노력)을 勸告(권고)하는 所以(소이)이니 그 言(언)은 相異(상이)하나 그 意(의)는 헐스맨氏(씨)와 同然(동연)한지라. 吾人(오인)은 그 懇切(간절)한 忠告(충고)를 感謝(감사)하는 同時(동시)에 衷心(충심)의 喜悅(희열)을 스사로 禁(금)치 못하노니 大槪(대개) 吾人(오인)은 朝鮮民族(조선민족)을 爲(위)하야 文化運動者(문화운동자)가 되며 運命開拓者(운명개척자)가 되야 正義(정의)와 人道(인도)를 擁護(옹호)하고자 함이로다. 遠方貴賓(원방귀빈)의 言(언)이 貴(귀)한 지라. 이 吾人(오인)이 다시 그를 擧(거)하야 讀者(독자)의게 傳(전)하는 所以(소이)라. (完(완))

미국 내빈이 전하는 말 (3)

헐스먼 의원의 연설
스몰 단장의 전언

공자께서 일찍이 가라사대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하셨으니 이는 한 고을을 다스리는 도리일 뿐 아니라 또한 사회운동에 대하여도 적절한 교훈이다. 나는 일찍이 학교에 있으면서 사회학을 청강할 때 이러한 예를 들었으니 말하면 ‘한 마리 작은 새가 우연히 방 안에 들어왔다. 원래 작은 새는 무한한 하늘의 자유를 좋아한다. 어떻게 좁은 방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에 다시 푸른 하늘로 높이 날려고 나가려 할 때 그 방에는 2, 3개의 창문이 있어 모두 유리를 달았다. 위쪽은 닫고 아래쪽은 열어놓았지만 조급한 작은 새는 맴돌면서 아래 열린 쪽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곧바로 나가려고 해 위쪽 닫혀 있는 유리에 부딪히는 헛수고를 하다가 마침내 아래 열린 곳을 발견해 나갈 수 있었다. 이 간접방법이 오히려 직접방법보다 빠른 도리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 나는 공자의 말을 떠올리며 ‘욕속부달’이구나 ‘욕속부달’이구나 하였다.

이제 미국 내빈은 우리에게 말하되 “학술과 공업에 노력하여 모든 것을 향상하라”고 하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이 말을 깊고 자세하게 살피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물론 사회운동은 내가 자주 쓴 것처럼 여러 분야가 있다. 현재 조선사회에 있어서는 적어도 두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결코 획일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겠으나 추수를 바라는 사람은 먼저 밭을 갈 필요가 있다. 내가 바라는 바 정의와 인도가 어떻게 밭갈이와 씨뿌리기와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올 수 있겠는가. 실력이 없다는 외침은 오직 헛수고로 돌아갈까 두려울 뿐 아니라 정의와 인도의 내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인정하며 존경하게 할 뿐 아니라 실로 나 자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존경하게 하는 까닭이 아닌가.

원래 조선인의 결점은 유교의 도학적 방면에 떨어져 떠돌면서 이·과학을 무시하며 실업을 천시하여 이것들을 가리켜 작은 도리라고 하는데 있다. 이는 오로지 유교에 국한한 폐해가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도 역시 그렇고 불교도 또한 그렇다. 그러므로 조선에는 과학이 일어나지 않고 실업이 흥하지 않으니 과학이 일어나지 않는다. 미신이 많고 실업이 흥하지 않는다. 생활이 빈약, 저급하며 이로 인해 정신생활까지도 시들고 활발하지 못하다. 과학과 실업 즉 물질생활에 관한 노력을 어째서 천시하는가. 나는 깨닫기 어려우니 하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유형무형으로 나누어 영혼을 나게 하고 물질을 만들지 않았는가. 이 천지는 오직 하늘의 영광으로 충만하였으니 그러므로 지난날 시인은 노래하기를 “이 지구는 선으로 가득하였다” 하였다. 과학자의 얼굴에서도 천사의 광채가 나타나며 실업가의 가슴에도 순교자의 피가 끓을 수가 있으니 이러므로 모든 것이 오직 하늘의 영광이다. 어떻게 이것을 천하게 여기며 저것을 귀하다 하는가. 오직 나는 ‘세상’이라며 배척하고 ‘탐욕’이라며 증오하는 것은 오직 ‘욕심’을 알고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을 대하여 하는 것이니 의를 잡고 도를 위하여 학을 연구하며 부를 쌓으면 어떻게 하늘과 사람의 한 용사가 아니겠는가. 이제 나는 사리에 어두운 종교인의 편견을 깨뜨리며 예전부터 내려온 나쁜 관습을 물리쳐 새로운 의미의 실업이 일어나며 과학이 진보하기를 바라니 조선민중은 스스로 살펴야 한다. 지식 없이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으며 재력 없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지를. 목적이 크면 준비 역시 커야 한다. 곧장 가지 말고 에둘러 가서 욕속부달의 위험을 피해야 한다. 미국 의원단 스몰 단장은 출발할 때를 맞아 무한한 감개와 감격한 태도로 본보를 통해 조선청년에게 전하기를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강산 속에서 자라난 활발한 조선청년의 앞날을 나는 낙관······합니다. 대개 한 나라는 많은 사회의 모임이고 한 사회는 한 사람의 모임입니다. 모든 성공과 모든 행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분투와 노력에 있고 그 분투와 노력의 근본은 교육에 있으니 나는 무엇보다도 조선사람에게는 그저 ‘잘 배우고 잘 힘쓰라’는 말을 두고 갑니다”라고 하였다.

조선청년의 앞날을 낙관하는 도리는 무엇인가. 헐스먼 의원과 같이 그 향상의 활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활기를 잘못된 방향으로 낭비하면 어떻게 희망이 있겠는가만 조선청년은 이제 광명을 보고 정의와 인도로 인류의 옹호자가 되기를 자임한다. 결국 정의가 승리를 얻을 것은 하늘의 이치에 비추어 당연한 일이고 또 명백한 일이다. 그러므로 공허한 속에서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낙관한다. 오직 정의를 실현하여 사회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약속하는 방법은 개개인의 완성으로써 근본을 만드는 것이다. 교육을 높이 부르짖고 노력을 권고하는 까닭이니 말은 서로 달라도 그 뜻은 헐스먼 의원과 같다. 나는 그 간절한 충고를 감사하는 동시에 충심의 기쁨을 스스로 누르지 못하겠다. 대개 나는 조선민족을 위하여 문화운동자가 되며 운명개척자가 되어 정의와 인도를 옹호하고자 한다. 멀리서 온 귀빈의 말이 귀하다. 내가 다시 그 말을 들어 독자에게 전하는 까닭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