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7월 25일

“총독정치는 악당 보호정치” 호통 친 기자 징역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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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신문’도 몇 안 되지만, 100년을 이어온 신문 고정코너는 더욱 보기 힘듭니다. 독자가 외면하면, 수시로 단행하는 지면개편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동아일보에는 ‘100년 코너’가 두 개나 있습니다. 일전에 소개했던 ‘휴지통’과 오늘 전해드릴 ‘횡설수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횡설수설은 지령(紙齡·창간 이후 발행한 호수) 100호 기념호인 1920년 7월 25일자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사실 지령 100호는 7월 11일자였습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그때 큰 홍수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수재민을 구호하는 데 ‘올인’하다시피 했을 뿐 아니라 시간당 2만4000장을 찍어내는 최신 윤전기 설치공사도 한창이어서 100호 기념호 발행을 2주일 미뤘던 겁니다.

‘횡설수설’이란 낱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흔히 ‘조리도, 순서도 없이 지껄이는 말’로 알고 있지만, 본래는 ‘가로(橫) 세로(竪) 다방면으로 논설을 펴 깨우침’이란 뜻이었습니다. 횡설수설 코너 아이디어를 내고 초창기 직접 집필까지 맡았던 편집국장 이상협은 첫 회에서 횡설수설의 다른 뜻을 번갈아 사용했습니다.

첫 문장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횡설수설에 불과할 것이다’에서는 ‘조리 없는 말’이라는 의미로, 검열당국을 의식해 “무슨 얘길 하더라도 횡설수설하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연막을 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뒤에는 곧바로 ‘어떻다고 인정만 하면 제 몇 조에 의해··· 신문지를 산더미같이 경찰서로 잡아간다’며 날을 세우죠. 신문지법을 앞세워 삭제, 압수, 정간, 폐간을 일삼으며 언론에 재갈을 물린 총독부를 정면으로 공격한 겁니다. 한참 동안 비판을 계속한 뒤에는 ‘오늘은 동아일보 100일을 맞는 날이니··· 횡설수설은 잠깐 참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좋아할지는 알 수 없지만···’이라면서 횡설수설을 본래 뜻(논설을 펴 깨우친다는)대로 사용합니다.

이처럼 횡설수설은 자유분방한 문장과 번득이는 촌철살인으로 동아일보를 대표하는 칼럼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기에는 풍자와 해학을 곁들인 단평 위주였는데 점차 일제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이 많아졌고, 이에 비례해 총독부의 탄압도 거세졌습니다.

1922년 9월 16일자를 보죠. 이날 2면에 실린 횡설수설은 일본 잡지 ‘동방시론’에 ‘일선(日鮮) 융화는 불가능하다. 민족자결주의가 대세여서 조선 독립은 당연하며, 이는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이익’이라는 요지의 논문이 실렸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총독부는 조선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을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고 비하하는데, 이 논문의 저자 같이 조선독립에 동조하는 일본 사람도 ‘불령 일본인’이라 부르라고 다그쳐 압수조치를 당합니다.

1926년 8월 22일자 횡설수설은 더 큰 필화를 입었습니다. 기사가 압수된 것은 물론, 필자인 최원순 논설반 기자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개월 판결을 받았습니다. 동아일보가 그 해 3월 5일자에 러시아 국제농민회본부가 보낸 ‘3·1운동 7주년 기념 축전’을 실어 정간을 당하고 송진우 주필, 김철중 발행인 겸 편집인이 기소된 것을 비판했기 때문이죠. 횡설수설을 단골로 집필한 최원순은 ‘주의자는 검거, 언론기관은 정지 아니면 금지, 집회와 단체는 위압, 그래도 간판만은 문화정치’라고 부당함을 부르짖었습니다. 이어 ‘조선인을 이롭게 하는 인사는 박해하면서 조선인을 해치는 놈들은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총독정치는 악당 보호정치’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최원순은 동아일보 입사 전인 1919년 ‘도쿄 2·8독립선언’의 주역이었고, 그 이듬해에는 유학생 순회강연단의 강사로 활약했습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橫說竪說(횡설수설)

▲題(제)하야 曰(왈), 橫說竪說(횡설수설)이라. 題(제)가 이믜 如是(여시)하니 勇將之下(용장지하)에 無弱卒(무 약졸)이 아니오, 弱將之下(약장지하)에 無勇卒(무 용졸)로 橫說竪說(횡설수설)의 題下(제하)에는 千言萬語(천언만어)가 橫說竪說(횡설수설)에 不過(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正理直論(정리직론)이라고 自信(자신)이 堅固(견고)한 言論(언론)도 걸풋하면 片言隻字(편언척자)이라도 『엇더하다 認定(인정)만 하시면』 第(제) 몃 條(조)에 依(의)하야 千金(천금)을 消(소)하고 赤誠(적성)을 盡(진)하야 艱辛(간신)히 印機(인기)에서 떠러지는 新聞紙(신문지)를 山(산)더미가치 시러서 警察署(경찰서)로 잡아가는 車輪(차륜)에는 『言論自由(언론자유)』라는 鍍金(도금) 廣告板(광고판)이 殘骸(잔해)도 업시 慘酷(참혹)하게 蹂躪(유린)되는 이 판인데


▲더구나 無條理(무조리) 無順序(무순서)한 橫說竪說(횡설수설)이야 다시 말할 것 잇나까때 잘못 하다가는 讀者(독자)는 一張(일장)을 보기도 전에 『너 좀 가만히 잇거라』하고 쌍거풀 눈을 자처 뜨시는 무서웁고 지긋지긋한 光景(광경)을 보기가 쉬웁지마는 橫說竪說(횡설수설)은 도로혀 이러한 곳에 그 價値(가치)가 업스라는 法(법)도 업지.


▲이런 말을 작고 하다가는 정말 橫說竪說(횡설수설)은 한 마듸도 못하고 잡혀갈는지도 其(기) 亦(역) 難測(난측)이오. 兼(겸)하야 今日(금일)은 우리 東亞日報(동아일보)가 百(백)날을 잡히는 날이오. 橫說竪說(횡설수설)도 呱呱(고고)의 聲(성)을 發(발)하는 때닛가 구태여 속 傷(상)하는 말이야 하야 무엇하리. 아무리 橫說子(횡설자)이라도 『謹祝(근축) 東亞日報(동아일보) 一百號(일백호) 紀念(기념)』이라는 嚴肅(엄숙)한 祝辭(축사)만을 올리고 橫說竪說(횡설수설)은 잠간 참지 아니할 수 업다. 누가 조와할는지는 알 수 업스나.
횡설수설


▲제목을 지어 이르기를 횡설수설이다. 제목이 이미 이와 같으니 ‘용장 아래 약졸 없다’가 아니요, ‘약한 장수 아래 용감한 부하 없다’로, 횡설수설 제목 아래에서는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횡설수설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이치, 곧은 논평이라고 자신만만한 언론도 걸핏하면 한 두 마디 짧은 글이라도 ‘어떻다 인정만 하시면’ 제 몇 조에 따라 많은 비용을 들이고 참 정성을 다해 간신히 인쇄기에서 떨어지는 신문지를 산더미 같이 실어 경찰서로 압수해가는 자동차 바퀴에 ‘언론자유’라는 도금 광고판마저 잔해도 없이 참혹하게 유린되는 판인데


▲더구나 조리 없고 순서도 없는 횡설수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나. 잘못하다간 독자는 한 장을 보기도 전에 “너 좀 가만 있거라”하고 쌍꺼풀눈을 짓쳐 뜨는 무섭고 지긋지긋한 광경을 보기 쉽겠지만, 횡설수설은 도리어 이런 곳에 그 가치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이런 말을 자꾸 하다간 정말 횡설수설은 한 마디도 못하고 잡혀갈 지도 그 역시 내다보기 어렵다. 아울러 오늘은 우리 동아일보가 100일을 맞는 날이다. 횡설수설도 첫 울음소리를 내는 때이니 일부러 속상하는 말이야 해서 무엇 할 것인가. 아무리 횡설수설 필자라 해도 ‘근축 동아일보 100호 기념’이라는 엄숙한 축사만 올리고 횡설수설은 잠깐 참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좋아할지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