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6월 9일

“일제를 탄핵하라!” 언론‧집회 자유를 지키려는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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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은 우리 언론계에 도전과 응전이 집중된 시기였습니다. 도전은 말할 것도 없이 4월에 박춘금이 앞장선 친일단체 각파유지연맹의 동아일보 임원들 폭행‧협박이었죠(2월 23일자 ‘친일파를 원숭이에 빗댔다며 동아일보 임원들 몰매’ 참조). 항일 논조에 일제가 압수 삭제 같은 탄압을 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친일파들이 직접 권총 들고 주먹질까지 해댄 것인 만큼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우리 언론계 전체가 관권과 폭력 앞에서 눈치를 보며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위기였죠.

우리 민족은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회단체들이 마치 내 일처럼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죠.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가 언론뿐만 아니라 집회까지 마구잡이로 금지한 탓이었습니다. 이 무렵 조선노농총동맹과 조선청년총동맹이 조직돼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려 했죠. 그러나 일제는 두 단체가 창립총회를 마치자마자 치안에 해롭다며 모든 집회를 불허했습니다. 이는 오히려 일제 탄압에 저항하는 눈 뭉치가 점점 커질 계기를 준 셈이었죠.


이 해 6월 7일 언론 종교 사상 법조 학생 여성 교육 등 각 분야 31개 단체의 대표 100여명이 ‘언론‧집회 압박 탄핵회’를 만들었습니다. 사회주의 성향의 조선노농총동맹과 조선청년총동맹이 앞장서자 조선변호사협회가 가세하고 동아 시대 조선일보의 3개 신문사도 참여하는 등 좌우를 가리지 않고 손을 맞잡았죠. 3‧1운동 이후 국제회의에 독립을 호소했으나 아무 소득이 없어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던 우리에게 다시 구심점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항거와 효과’ 사설에서 ‘언론‧집회에 대한 압박은 곧 사상에 대한 압박이요 사상에 대한 압박은 곧 사회발전에 대한 압박이며 인류향상에 대한 압박이다···미친 자의 칼 아래서 항거가 어렵다 말라. 흐르는 피가 마침내 그 (칼)날을 꺾을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기세를 몰아 탄핵회는 일제의 언론‧집회 탄압사례를 조사해 6월 20일 대대적인 탄핵대회를 열기로 했죠. 평화적인 대회를 통해 일제 문화정치의 실체를 폭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두 손 놓고 있을 일제가 아니었죠. 당일에 대회를 금지했습니다. 이유는 ‘치안 불안과 보안법 위반’. 게다가 실행위원 5명을 구속하고 미처 금지된 사실을 모르고 모여든 인파를 해산시키려고 기마경찰까지 동원했죠. 동아일보는 ‘당시의 광경은 참으로 살기가 넘치는 참담한 지경’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래도 탄핵회는 포기하지 않았죠. 제2차 대표회의를 열어 실행위원을 새로 뽑고 △7월 20일 탄핵대회와 시위운동 개최 △언론‧집회 탄압 사실의 세계 선포 △언론‧집회의 자유를 위해 굳은 단결로 최선을 다해 노력 등 3개항을 결의했습니다.

이 대표회의에서는 이 해 1월 1일~6월 20일의 언론‧집회 탄압 실태도 보고됐죠. 압수는 △일간지 동아일보 15회, 조선일보 13회, 시대일보 9회 △주간지 조선지광 7회 △월간지 개벽 3회였습니다. 집회 금지는 3월 1일~6월 20일 경성에서만 13건이었다니까 전체로는 훨씬 더 많았겠죠. 특히 원산노동회는 ‘5월 1일 ‘메이데이’ 기념강연도 금지! 원유회 즉 소풍도 금지! 집행위원 4명의 산책 겸 점심 나들이에는 형사 7명이 미행!‘을 당했답니다.


그러나 한 달 간 준비한 탄핵대회는 열리지 못했습니다. ‘사정에 의해 당분간 중단하고 추후 다시 발표함’이라는 짧은 안내문만 신문에 실렸죠. 당초 일제의 언론‧집회 압살에 대한 저항은 4월 민중대회 개최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민중대회가 금지되자 두 달 뒤 탄핵대회를 열려고 했지만 또 금지됐고 다시 열려던 탄핵대회는 석연찮게 무산된 것이었죠. 동아일보는 6월 ‘탄핵대회 금지’ 사설에서 ‘금지하니 그칠 밖에 없다. 금지뿐이랴. 검속까지 했다. 우리가 무슨 실력으로 이를 받지 않으랴마는 당국의 무도 무리함은 갈수록 폭로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일제가 탄압할수록 허울뿐인 문화정치의 실상을 드러낼 뿐이라고 지적한 것이죠.

이진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3월 02일
『言論集會壓迫彈劾會(언론집회압박탄핵회)』
당국의 무지한 압박이 만들어 준 새로운 모임
두 가지 결의를 목표로 최후까지 분투할 작뎡


警官(경관) 監視下(감시하)에 三十一個(31개) 團體(단체) 奮起(분기)
언론집회에 관한 당국의 태도가 최근에 이르러는 더욱더욱 심하야 『언론집회의 자유』를 주엇다는 소위 『문화정치』의 근본정신도 업서지리만큼 너무도 압박이 심하야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긔보한 바와 가치 서울에 잇는 각 사상단톄와 언론긔관을 모다 망라하야 대중의 우렁찬 여론으로써 당국의 반성을 촉진식히는 동시에 오랫동안 소리 업시 잠잠하고 느른하든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긔를 던지고저 각 단톄의 대표자들이 모히어 가장 온건한 구톄 방침을 협의 결뎡하게 되얏다.

雲集(운집)한 百餘代表(100여대표)
벽두에 명칭문뎨를 토의


언론집회에 압박이 너무도 심한 당국의 태도에 대한 구톄뎍 방침을 강구하려는 각 단톄의 모임은 예뎡과 가치 재작일 오후 세 시부터 시내 수표뎡 조선교육협회(朝鮮敎育協會) 안에서 설흔한 단뎨의 대표자 백여명이 모히어 십여명 경관의 살긔 가득한 감시 하에서 개최되엿는데 위선 벽두에 한신교(韓愼敎)씨의 간단한 취지 설명과 함께 개회사가 잇슨 후 의사를 순서 잇게 진행하기 위하야 림시석댱으로 서뎡희(徐廷禧)씨와 림시서긔 신일용(辛日鎔)씨를 선거한 후 즉시 본회의에 들어가 먼저 이번 모임의 이름을 짓기로 하야 혹은 재경단톄련합회(在京團體聯合會)이니 혹은 언론옹호회(言論擁護會)이니 혹은 언론집회압박탄핵회(言論集會壓迫彈劾會)이니 하야 자못 의론이 분분하다가 마참내 대다수의 의견을 조차 언론집회압박탄핵회라는 일홈을 짓게 되얏더라.

决議條項(결의조항)
두 가지를 결의


작년 가을 관동진재 이후에 당국자의 언론압박이 엇더하얏든 것을 참고로 군중에게 알리기 위하야 각 단톄 관계자의 간단한 경과보고가 잇서 지난번에 로농총동맹에서 여섯 사람이 모히여 집행위원회를 하다가 두말 업시 종로서에 구금되엿든 사실을 비롯하야 서울청년회와 밋 기타 단톄의 보고가 잇스려 하얏스나 그것은 그 당시마다 임의 신문지상에 보고되엿섯슴으로 특히 시간을 절약하자는 의미로 회의를 진행하야 위선 우리의 실행할 사업의 대톄 방침을 뎡할 필요가 잇슴으로 이 자리에서 발긔칙(發起側)으로부터 특별한 복안이 업는 이상에는 새로히 위원을 선뎡하야 방침에 대한 결의 초안을 작성하게 되엿는데 피선된 제씨와 결의문은 아래와 갓더라.

▲金炳魯(김병로) ▲李廷允(이정윤) ▲韓愼敎(한신교) ▲權五卨(권오설) ▲金燦(김찬)


◇决(결) 議(의) 文(문)

一(1)、우리는 言論(언론) 及(급) 集會(집회)에 對(대)한 當局(당국)의 無理(무리)한 壓迫(압박)을 鞏固(공고)한 結束(결속)으로써 積極的(적극적) 抗拒(항거)할 일.
一(2)、言論(언론) 及(급) 集會(집회)의 壓迫(압박)에 對(대)한 抗拒方法(항거방법)은 實行委員(실행위원)에게 一任(일임)할 일.

滿塲可决(만장가결)
실행위원으로
열세 명을 선거



위원의 보고가 잇슴애 만장일치로써 그 결의문 전부를 통과식힌 후에 또다시 실행위원을 선거하게 되매 선거방법에 대하야 또한 여러 가지 의론이 만앗섯스나 특히 이것은 각 방면의 사람을 망라하야 신중히 처리할 필요가 잇다 하야 좌긔 오씨의 뎐형위원을 먼저 선거하얏스며
▲李英(이영) ▲徐廷禧(서정희) ▲金炳魯(김병로) ▲辛日鎔(신일용) ▲姜宅鎭(강택진)
이 뎐형위원들의 호천(互薦)으로써 실행위원(實行委員) 십삼명을 선거한 뒤에 동 여섯시반경에 이르러 무사히 폐회하얏다는데 금번에 피선된 실행위원의 씨명과 밋 참가된 각 단톄는 다음과갓더라.

◇實行委員(실행위원)


▲徐廷禧(서정희) ▲韓愼敎(한신교) ▲李鍾天(이종천) ▲尹洪烈(윤홍렬) ▲安在鴻(안재홍) ▲李鳳洙(이봉수) ▲車相瓚(차상찬) ▲金炳魯(김병로) ▲金弼秀(김필수) ▲申明均(신명균) ▲金鳳國(김봉국) ▲李鍾麟(이종린) ▲李仁(이인)


◇參加團體(참가단체)


▲朝鮮勞農總同盟(조선노농총동맹) ▲朝鮮靑年總同盟(조선청년총동맹) ▲辯護士協會(변호사협회) ▲新興靑年同盟(신흥청년동맹) ▲新思想硏究會(신사상연구회) ▲無産者同盟會(무산자동맹회) ▲開闢社(개벽사) ▲基督敎靑年會聯合會(기독교청년회연합회) ▲天道敎靑年黨社(천도교청년당사) ▲朝鮮之光社(조선지광사) ▲民友會(민우회) ▲新生活社(신생활사) ▲朝鮮女性同友會(조선여성동우회) ▲勞働大會(노동대회) ▲勞働共濟會(노동공제회) ▲朝鮮敎育協會(조선교육협회) ▲朝鮮女子靑年會(조선여자청년회) ▲朝鮮學生會(조선학생회) ▲佛敎靑年會(불교청년회) ▲天道敎維新靑年會(천도교유신청년회) ▲焰群社(염군사) ▲苦學生갈돕會(고학생갈돕회) ▲女子苦學生相助會(여자고학생상조회) ▲建設社(건설사) ▲民衆社(민중사) ▲朝鮮經濟會(조선경제회) ▲女子敎育協會(여자교육협회) ▲衡平社革新同盟(형평사혁신동맹) ▲時代日報社(시대일보사) ▲朝鮮日報社(조선일보사) ▲東亞日報社(동아일보사)


『언론‧집회 압박 탄핵회』
당국의 무지한 압박이 만들어 준 새로운 모임
두 가지 결의를 목표로 최후까지 분투할 작정
경관 감시 아래 31개 단체가 분기

언론‧집회에 관한 당국의 태도가 최근에 이르러는 더욱더욱 심하여 『언론‧집회의 자유』를 주었다는 소위 『문화정치』의 근본정신도 없어질 만큼 너무도 탄압이 심하여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이미 보도한 것과 같이 서울에 있는 각 사상단체와 언론기관을 모두 망라하여 대중의 우렁찬 여론으로써 당국의 반성을 촉진시키는 동시에 오랫동안 소리 없이 잠잠하고 느른하던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기를 던지기 위해 각 단체의 대표자들이 모여 가장 온건한 구체적 방침을 협의 결정하게 되었다.

구름같이 모여든 100여 명의 대표
초반에 명칭 문제를 토의

언론‧집회에 탄압이 너무도 심한 당국의 태도에 대한 구체적 방침을 강구하려는 각 단체의 모임은 예정과 같이 전날 오후 3시부터 시내 수표정 조선교육협회 안에서 31개 단체의 대표자 100여 명이 모여 10여 명 경찰의 살기 가득한 감시 아래 개최되었다. 우선 초반에 한신교 씨의 간단한 취지 설명과 함께 개회사가 있은 후 의사를 순서 있게 진행하기 위하여 임시의장으로 서정희 씨와 임시서기 신일용 씨를 선출한 후 즉시 본회의에 들어갔다. 먼저 이번 모임의 이름을 짓기로 하여 혹은 재경단체연합회니 혹은 언론옹호회니 혹은 언론집회압박탄핵회니 하여 자못 의논이 분분하다가 마침내 대다수의 의견을 좇아 언론집회압박탄핵회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결의사항
두 가지를 결의

지난해 가을 간토대지진 이후에 당국자의 언론 탄압이 어떠했는지를 참고로 대중에게 알리기 위하여 각 단체 관계자의 간단한 경과보고가 있었다. 지난번에 노농총동맹에서 6명이 모여 집행위원회를 하다가 두말 없이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었던 사실을 비롯하여 서울청년회와 기타 단체의 보고가 있으려 하였으나 그것은 그때마다 이미 신문지상에 보도되었으므로 특히 시간을 절약하자는 의미로 회의를 진행하였다. 우선 우리의 실행할 사업의 대체적 방침을 정할 필요가 있음으로 이 자리에서 발기자 측으로부터 특별한 복안이 없는 이상에는 새로 위원을 선출하여 방침에 대한 결의 초안을 작성하게 되었다. 뽑힌 여러분과 결의문을 아래와 같다.

▲김병로 ▲이정윤 ▲한신교 ▲권오설 ▲김찬

◇결의문

1. 우리는 언론 급 집회에 대한 당국의 무리한 압박을 공고한 결속으로써 적극적으로 항의할 일
2. 언론과 집회의 탄압에 대한 항거방법은 실행위원에게 일임할 일

만장일치
실행위원으로
13명을 선출


위원의 보고가 있자 만장일치로 그 결의문 전부를 통과시킨 후 또다시 실행위원을 선출하게 되자 선거방법에 대하여 또한 여러 가지 의논이 많았으나 특히 이것은 각 방면의 사람을 망라하여 신중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 하여 아래 5명의 전형위원을 먼저 선출하였다.

▲이영 ▲서정희 ▲김병로 ▲신일용 ▲강택진

이 전형위원들이 돌아가며 추천해 실행위원 13명을 선출한 뒤 이날 6시 30분경이 되어 무사히 폐회하였다. 이번에 뽑힌 실행위원들의 이름과 참가한 단체는 다음과 같다.

◇실행위원

▲서정희 ▲한신교 ▲이종천 ▲윤홍렬 ▲안재홍 ▲이봉수 ▲차상찬 ▲김병로 ▲김필수 ▲신명균 ▲김봉국 ▲이종린 ▲이인

◇참가단체

▲조선노농총동맹 ▲조선청년총동맹 ▲변호사협회 ▲신흥청년동맹 ▲신사상연구회 ▲무산자동맹회 ▲개벽사 ▲기독교청년회연합회 ▲천도교청년당사 ▲조선지광사 ▲민우회 ▲신생활사 ▲조선여성동우회 ▲노동대회 ▲노동공제회 ▲조선교육협회 ▲조선여자청년회 ▲조선학생회 ▲불교청년회 ▲천도교유신청년회 ▲염군사 ▲고학생갈돕회 ▲여자고학생상조회 ▲건설사 ▲민중사 ▲조선경제회 ▲여자교육협회 ▲형평사혁신동맹 ▲시대일보사 ▲조선일보사 ▲東亞日報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