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청년이었던 아버지가 100년 전에 이곳 도쿄 한복판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쳤던 곳에 서 있으니 마음이 뭉클하네요.”
‘2.8 독립선언’을 이끈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11명 중 한 명이었던 백관수의 차남인 백순 박사는 9일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재일본 한국YMCA회관 2층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에 걸린 백관수의 사진을 한참 바라보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백 박사는 이날 YMCA에서 열린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아버지가 2.8 독립선언 후 감옥에 갇혀 1년 동안 쓴 한시를 한국어와 영어로 번역해 ‘동유록(東幽錄)’이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묶어 발표했다. ‘동유록’은 도쿄 감옥에서 지은 시라는 의미다.
백 박사는 “2.8 독립선언 100주년을 앞두고 선친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이 유품으로 갖고 있던 아버지의 한시를 번역하는 일이었다”면서 “꼬박 2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그는 “동유록은 ‘봄’을 기다렸던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정녕 때는 2월이건만 봄 기운 아직도 어이 더딘가?”
백 박사는 “선친이 살아계셨으면 지금 130살”이라면서 “통일이 되지 않은 한국을 보면서 아직 봄은 안 왔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메이지(明治)대학교 법학부를 다녔던 백관수는 ‘2.8 독립선언’을 주도했으며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박사는 “내가 국민(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납북돼 2.8 독립선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두 가지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1919년 2월 7일 밤 독립선언의 대표자들이 아버지 하숙집 방에 모여 논의하는데 똑똑 하는 문소리가 나서 모두 들켰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 하숙집 아주머니가 ‘청년들이 뭐하는지 모르겠지만 먹으라’면서 떡을 가져왔다고 한다.”
”또 하나는 독립선언을 한 뒤 감옥에 갖히자 일본인 여자 대학생들이 감옥 앞에서 데모를 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이 자기 나라를 위해서 한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했다는 것이다.”
백 박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대와 웨스트버지니아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연방 노동부 소속 선임학자로 28년간 근무했다.
이번에 일본을 처음 방문했다는 백 박사는 이후 한국에 가 아버지 묘소에 시집을 바칠 것이라고 했다. 백 박사는 “선친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6.25 전쟁 이틀만인 1950년 6월 27일 납북됐는데 어머니가 통일되면 모셔오자면서 고창에 빈묘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있다”고 말했다.
【도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