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과의 전쟁’ 벌이는 문화재청 사범단속반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이 30일 경남 통영시 안정사에서 도난당한 불상을 회수하고 있다. 한 반장은 “단속반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다같이 문화재를 지키는 파수꾼이 됐으면 한다”며 “적극적인 신고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화재 도난 범죄를 신고한 국민에겐 최고 2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문화재청 제공
영하의 날씨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얼굴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2016년 1월 충남 태안군 당암포구 앞바다에는 배 위에서 생활하며 바닷속을 하염없이 뒤지는 이들이 있었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38)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진들. 이곳에서 85점의 고려, 조선시대 도자류를 훔쳤다가 붙잡힌 도굴꾼들에게 정보를 입수한 직후였다.
망망대해에서 1주일을 탐색한 끝에 그물에 도자기 1점이 걸려들었다. 1000여 년 전 제작된 고려청자가 훼손 없이 원형 그대로 올라왔다. 당암포구는 좁은 해역에 유속이 빨라 각종 해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2주간의 수색을 거쳐 수사팀이 건져 올린 유물은 20여 점. 도굴꾼들이 이미 가져간 85점을 회수한 것과 더불어 100여 점의 문화재가 다시 안전하게 돌아왔다.
“힘겹게 입수한 첩보를 바탕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허탕 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죠. 그런데 바다에서 청자를 건져 내니 머리카락이 삐쭉 설 만큼 짜릿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 최근 회수한 주요 도난 문화재들. 어사 박문수 집안인 고령 박씨 종중의 간찰과 충남 태안군 당암포구 앞바다에서 회수한 고려청자(위 사진부터). 문화재청 제공
1990년대까지 화제를 끌었던 뉴스 중 하나는 이른바 ‘대도(大盜)’로 불리는 전문 도굴꾼의 범죄 소식이었다. 2000년대 들어 주요 문화재 시설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는 등 안전조치가 강화됐지만 도굴꾼들의 범죄도 덩달아 지능화됐다. 철저한 분업화 팀 조직과 함께 비신고 문화재만 털어가는 신종 수법이 나타난 것. 당암포구 사건에서도 5명의 도굴꾼이 절취책, 판매책, 자금팀 등으로 나눠 문화재를 훔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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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 최근 회수한 주요 도난 문화재인 경남 통영시 안정사의 ‘삼세불도’.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보호법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인 10년을 채웠다고 생각해 간찰을 판매하려다 덜미가 잡혔죠. 2007년부터 선의취득 배제 조항을 신설해 실질적으로 공소시효를 무제한 연장했습니다. 문화재 안전을 위해서는 개인이 보관하는 것보다는 기관에 위탁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8년간 단속반원으로 활동하며 수백 건의 문화재를 회수한 한 반장에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상주본)의 회수다. 소유자인 배익기 씨(55)가 2008년 공개한 이후 현재까지 국가에 귀속시키지 않고 있는 상태다. 배 씨는 29일 국정감사에서 “1000억 원을 주더라도 내놓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가지보(無價之寶)’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안전입니다. 수십 번, 수백 번 협의를 해서라도 반드시 국민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죠.”
대전=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