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소비자경제부 차장
이명박 정부 내내 ‘돌아온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들)’들에게 밀려 상대적으로 한직에 있을 때도 그의 중용을 기대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들어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정되자 고개를 갸우뚱하던 많은 사람이 곧이어 조 수석 인선이 발표되자 “참 다행이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런 조 수석에게 아킬레스의 뒤꿈치 같은 약점이 있다. 마키아벨리적 인물이 넘쳐나는 관가에서는 드물게 대단히 친절하고 솔직하며 학구적이란 점이다. 이런 특징은 좌파정부 때에도 반대의견을 가진 언론인 등과 사석에서 만나 진솔하게 문제점을 토론하며 대안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미덕으로 작용했다.
4월 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준금리 인하를 놓고 청와대와 기재부가 인하 쪽,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동결 쪽에 서서 팽팽히 맞설 때 조 수석은 “한은이 금리를 내려주면 더 좋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역시 너무 길고 친절하게 보충설명을 한 게 탈이었다.
그렇다 해도 조 수석과 현 부총리에게 최근 사태의 책임을 모두 돌리는 건 문제가 있다. ‘정무감각 부족’을 비판할 수 있지만 이들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대선공약에 맞춰 복지 지출을 5년간 135조 원 늘리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 세출 구조조정으로 목돈을 마련해야 하지만 어느 쪽도 현실이 만만치 않다. 증세가 금기어가 된 상황에서 세율 인상 등은 꿈도 못 꾸는데 경기가 안 좋아 상반기에 걷힌 세금은 지난해보다 6.3%나 줄었다. 남은 길은 비과세·감면이라도 줄여 중산층 이상의 세금을 더 걷는 것 정도다.
현 경제팀에 떨어진 미션을 보면 군대 고참이 신병에게 장난삼아 시키는 PX 심부름이 떠오른다. 1000원짜리 한 장을 주면서 “소주 3병과 맥주 5병, 새우깡 세 봉지, 오징어 네 마리를 사오라”는 식이다. 게다가 주변 누구에게 부담을 줘 돈을 1000원 이상으로 불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조건까지 붙어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창조적인 관료도 답을 찾기 어렵다. 몇 번을 원점(原點)으로 돌아가 재고해도 조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걸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부자들 세금을 올리자고 했다”며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의 주장도 세금을 더 내란 얘기에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없긴 마찬가지다.
박중현 소비자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