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뢰하는 강한 개성이 드러나는 마스크와 탄탄한 연기력으로 스크린 조연으로 각광받아왔다. 이제 새로운 기운을 얻기 위해 자신의 연기 ‘고향’인 대학로 무대에 서는 그는 네 살배기 아들과 계곡을 찾고 싶다며 웃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1인극 ‘품바’로 돌아온 개성파 배우 김뢰하
살인의 추억·음란서생·괴물…
한때 ‘악역 전문배우’
최근 매너리즘에 빠졌다고나 할까…
30년 이어온 품바로 재충전
다음엔 살인마 영화 ‘몬스터’
그리고 다시 대학로…
나의 에너지원이니까요
배우 김뢰하(48)는 한때 악역 전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영화에서 주로 개성 강한 인물들을 연기해온 탓이었다. 그 시작은 2003년 출연한 영화 ‘살인의 추억’. 그 뒤 ‘달콤한 인생’, ‘음란서생’, ‘괴물’ 등으로 ‘악역’의 명성을 이었다.
“엔진이 달궈졌을 때 쭉 나갔어야 했는데.(웃음) 10년 전만 해도 악역을 주로 맡는 배우는 드물었으니까. 이젠 다들 잘 하잖아.”
김뢰하는 하나의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호흡을 한 번 쉰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출연 작품수를 줄인 것도 온전한 그의 선택. 한때 봉준호, 김지운 등 인기 감독들과 자주 작업했지만 최근 3∼4년 사이 출연 편수를 줄였다. 2년 전 송강호와 함께 했던 ‘푸른 소금’이 상업영화의 마지막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쌓인다. 매너리즘에 빠진다고 할까. 해온 대로 기존의 내 이미지가 반복되고 또 소비되고…. 그러다 문득 ‘아직 인생의 절반도 못 온 것 같은데 벌써 지치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
에너지가 필요했다. 김뢰하가 8월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상상아트홀 블루에서 공연하는 1인극 ‘품바’를 선택해 무대에 오르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어릴 땐 굶으면서 연극을 했다. 기를 쓰면서. 그동안 제법 큰 영화도, 연극도 해봤다. 흥행이 되더라도 심신이 지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연극 처음 하던 때가 떠올랐다. ‘품바’는 꾀를 부리면 안 되는 작품이다. 그래서 택했다.”
김뢰하가 ‘품바’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선배와 동료들은 ‘왜 하느냐’고 물어왔다. 100분 동안 혼자 연기하며 14명의 캐릭터까지 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답은 간단했다.
“‘품바’가 30년 넘게 이어온 힘이 있다. 근현대사 속에서 인간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지닌 힘이다.”
김뢰하는 연극배우 박윤경과 결혼해 슬하에 네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마흔이 훌쩍 넘어 얻은 ‘귀한’ 아들. 휴일이면 아들과 손잡고 야구장을 찾는 ‘열혈 두산 팬’이지만 두 달 동안 꼼짝없이 무대에 서야 하는 탓에 당분간 ‘바쁜 아빠’의 처지다.
‘품바’가 끝나면 김뢰하는 영화 ‘몬스터’로 연말 관객과 다시 만난다. 연쇄살인마를 향한 여자의 복수를 그린 스릴러. 김뢰하는 살인마의 형 역을 맡고 이민기, 김고은과 호흡을 맞췄다. ‘몬스터’가 개봉할 즈음 또 다른 연극 무대에 설 계획도 세웠다. 아직 결심을 굳힌 건 아니지만 올해는 대학로를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열정으로 연극에 처음 덤벼들었을 땐 경주마 같았다.(웃음) 눈가리개를 하고 앞으로만 달리는. 지금은 눈가리개를 떼고 다양한 걸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다. 물론 결핍도 있다. 하지만 내 연기는 그 결핍에서 나온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